brunch

부유(浮游)

머무르지 않는 아름다움

by 강라마

물 위에 떠 있는 병.
반쯤 가라앉았지만 끝내 물속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완전히 뜨지도, 완전히 가라앉지도 못한 채
그저 물결에 따라 움직이며 경계를 맴돈다.

출사 중 걸어가다 내천에 버려진 병을 발견하고

처음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 사람을 탓하였지만

잠시 그 배경상황을 지우고,

다시 바라보았다.

조금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마치 이 병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쓰레기로 버려진 한 물건의 개념이 아닌, 하나의 흘러가는 존재로서 느껴졌다.


내가 있는 곳은 분명 지구의 어딘가지만,
그 어딘가라는 말은 늘 모호하다.
길을 알고, 사람들과 대화하며 살아가지만,
언제나 ‘우리’가 아닌 ‘누군가’로 남아 있는 느낌.

이런 상태를 흔히 외로움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균형에 가까운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바닥에 닿지 않기에 묶이지 않고,
완전히 뜨지 않기에 흐름을 잃지 않는 상태.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음으로써 얻게 되는 또 다른 자유.

JHK-2025-02-06-29_bk 3.jpg <부유(浮游)>. 2025.02 | Thailand_NonThaburi | Copyright © JeongHeon

거리를 걷다 보면 가끔 모든 풍경이 살짝 비현실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조금 멀리서 들리는 듯하고,
나는 그 사이를 비껴 선 채 바라보고 있는 느낌.
그렇다고 완전히 단절된 것도, 온전히 속한 것도 아닌 애매한 자리.


우연히 마주치는 얼굴들, 스쳐 가는 풍경들 속에서

서로 다르지만 결국 같은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

절대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일 뿐.
각자의 자리에서 떠 있고,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존재들.

부유(浮游)하는 병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병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리고 어디로 흘러갈까?
어쩌면 나도 같다.
지금은 여기에 있지만, 언젠가 다른 곳으로 흘러갈 것이다.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따라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의 방식이고, 살아가는 태도다.


keyword
이전 01화프롤로그<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