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였던 것이 뿌리가 될 때
나무는 늘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
가지를 뻗고, 잎을 틔우고, 시간을 따라 변화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나무들은 다르다.
땅 위로만 자라지 않고,
공중으로 뻗어 나가며,
심지어 스스로를 다시 다른 곳에 고정시키기도 한다.
마치 자신만의 방식으로 흐름을 타고 떠다니는 듯한 모습이다.
걸음을 멈춘 곳에서 마주한 나무는 그중에서도 유독 특별했다.
굵고 단단한 뿌리는 땅을 깊이 움켜쥐고 있었지만,
그 위로 뻗어 나온 가지는 다시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오랜 시간 땅으로 내려온 가지는 결국 그곳에 닿아, 마치 뿌리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나무가 새로운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라, 가지가 뿌리로 변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마치 한곳에 머무르는 대신, 스스로 또 다른 길을 만든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잠시 그 앞에 서서 생각했다.
저 나무가 만약 한곳에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갔다면 어땠을까?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젖어가며, 자연의 흐름 속에서 견디고 버티는 것이 나무의 숙명이지만,
이렇게 가지가 내려와 땅에 닿고, 또다시 뿌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면,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 나무는 정해진 틀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뿌리가 아닌 가지를 통해서라도, 스스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아간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은 하나의 장소에서, 하나의 삶의 방식 속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늘 무언가를 넘어서고 새로운 흐름을 타며 살아간다.
그들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끝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며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물에 떠 있는 병을 보았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병은 완전히 가라앉지도, 완전히 떠오르지도 않은 채 흐름을 따라 움직였다.
강물의 속도에 맞춰 흘러가며 때로는 멈추기도 하고, 다시금 떠내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부유하는 병을 보며 느꼈던 감정이, 이 나무를 바라보며 다시 떠올랐다.
결국 우리는 모두 유영하는 존재가 아닐까?
완전히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그 자체로 존재하는 방식.
내 삶을 돌아본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정착하는 삶보다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물살을 거스르기보다,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한곳에 뿌리를 내리는 것만이 삶의 방식이 아니듯,
떠다니는 삶 역시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것은 불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롭다.
경계를 넘나들며 떠다니는 삶.
그것이야말로 나의 방식이다.
나무는 땅과 하늘을 이어가며 자란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서 유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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