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랏차부리 | 1
이번 태국 전국 출사의 행선지는 태국 랏차부리다.
태국의 서부에 위치한 랏차부리(Ratchaburi)는 방콕에서 약 80km정도 떨어져 있으며,
매끌롱(Mae Klong) 강변에 자리한 역사 깊은 도시이다.
이 지역은 약 1,000년 전 드바라바티(Dvaravati) 시대부터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라마 1세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또한 다양한 자연경관과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가는 체력이다.
첫째 날, 나는 태국 랏차부리 주 팍 토(Pak Tho) 지역에 위치한 Heaven Valley(หุบผาสวรรค์)로 출사를 나섰다.
Heaven Valley(หุบผาสวรรค์)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마치 또 다른 세상에 발을 디딘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찾은 날은 쨍한 날씨라기보다는 살짝 흐린 날씨였다.
그래서 그런지, 좀 더 신비로운 분위기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입구부터 많은 원숭이들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생각지 못한 동물과의 만남이라, 조금은 몽환적이었다고 표현해야 할까?
약간의 두려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이곳에 대해 조금 소개해 보자면, 태국의 많은 특별한 공간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기본적으로 자연 속에 자리한 문화 관광지로, 독특하게도 다양한 종교의 신앙과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물론 태국은 대부분 불교이긴 하나,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599개의 계단을 오르면, 불교, 기독교, 힌두교의 상징적인 조형물을 만날 수 있으며,
정상에서는 랏차부리의 아름다운 전경을 360도로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출사를 위해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은 원래 1983년, 태국의 주술사이자 세계 평화 사절인
수차트 고살키티웡(Suchart Kosolkitiwong)에 의해 설립된 종교적 장소였다고 한다.
그는 다양한 종교의 신앙을 한데 모아 세계 평화를 촉진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불교, 기독교, 힌두교 등 여러 종교의 건축물과 조형물을 조성했다.
하지만 이후 그의 활동이 정치 및 보안 문제와 얽히면서 논란이 되었고,
결국 이곳은 폐쇄된 후 국유화되었다. 현재 Heaven Valley는 등산과 관광 명소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곳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 중 하나는 산 정상에 위치한 예수 그리스도의 동상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그리스도 구속자 동상을 연상시키는 이 조형물은
불교와 힌두교의 상징적인 조형물들과 함께 종교적 조화와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이곳을 오르면서 나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사진가에게도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셔터를 누를 힘만으로는 좋은 사진을 얻기 힘들다는 걸, 이번 출사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소 운동을 소홀히 한 탓에, 몇 계단 오르기도 전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 정도 높이를 만만하게 본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중간중간 멈춰서 숨을 돌릴 때마다, 그 자리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힘겹지만 의미 있는 걸음을 이어갔다.
산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저 멀리 이어지는 산등선, 그리고 빨강과 파랑의 원색이 유난히 눈에 띄던 지붕들.
익숙한 듯 낯선 그 마을 풍경 속에서,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각기 다른 종교의 흔적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은 마치 시간이 빚어낸 한 편의 이야기 같았다.
신앙의 색깔을 떠나,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평온함을 선물하는 듯했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만, 이곳의 공기는 완전히 달랐다.
높이 올라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시야가 탁 트였고, 마음도 그만큼 가벼워졌다.
그렇게, 첫째 날이 저물어 갔다.
둘째 날, 아침. 어제의 흐린 날씨가 무색할 만큼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
나는 오후에 랏차부리 시내에서 약 8km 떨어진 Hin Khao Ngu Park(อุทยานหินเขางู)로 향했다.
이곳은 원래 석회암 채석장이었으나, 지금은 자연과 사람이 함께 숨 쉬는 공간이 되었다.
멀리서 바라본 협곡은 거대한 바위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물에 비친 절벽은 마치 또 하나의 세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곳의 이름은 ‘뱀 산’이라는 뜻을 가진다.
과거에는 실제로 많은 뱀이 서식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원숭이들이 이곳의 새로운 주인이 된 듯했다.
바위 곳곳에 자리를 잡고 앉거나,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는 모습이 묘하게 익숙했다.
서로의 거리를 가늠하듯, 나는 천천히 셔터를 눌렀다.
걷는 내내, 이곳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높이 솟은 바위산은 오랜 세월을 지나왔을 것이다.
바람에 깎이고, 물에 닳으며 천천히 변해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마치 오랜 시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마음처럼.
협곡을 따라 걸으며, 나는 몇 번이고 발걸음을 멈췄다.
바위와 물, 하늘과 빛이 어우러지는 그 순간들을 오래도록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