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아유타야 | 1
아유타야는 익숙한 이름이다.
나에게도, 수많은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방콕에서 가까워서 자주 들렀던 곳이고,
늘 짧게 다녀가는 원데이 투어가 익숙한 곳.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어쩐지, 이번엔 이곳에 머물러야겠다는 직관이 들었다.
그 감정을 따라 처음으로 2박 3일의 출사를 결정했다.
낯익은 곳이지만, 느껴짐은 달랐다.
역시 장소는 스쳐지나가는 게 아니라 스며들어야 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곳의 온도와 결이 조금씩 느껴졌다.
첫 일정은 방파인 여름별궁 옆 작은 섬에서 시작했다.
예전 스냅사진 작업할 때 몇 번 찾았던 곳이다.
여름별궁도 좋지만, 그 옆 짜오프라야강 위 작은 섬에 있는 사원 하나가 늘 마음을 끌었다.
왓 니웻 탐마쁘라왓 라차워라위한(Wat Niwet Thammaprawat Ratchaworawihan)
여긴 정말 독특하다.
곤돌라를 타고 강을 건너야만 닿을 수 있는 곳.
라마 5세 시절 도입된 곤돌라가 운행 중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곤돌라의 느낌이 아닌 나무 외관으로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주다 보니
그 자체로도 여행의 묘미가 된다.
1878년 완성된 이 사원은 들어서게 되면 누구나 놀란다.
사원인데, 외관은 마치 유럽의 고딕풍 교회 같다.
실제로 라마 5세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던 시기에 이탈리아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긴 사원으로,
태국 내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양식을 가진 불교사원이다.
내부엔 여느 사원처럼 불상이 놓여 있지만, 스테인드글라스 창 너머로 들어오는 빛은
사원을 ‘신성’보다 ‘아름다움’으로 기억하게 한다.
사진 찍기 좋은 장소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이 작은 섬 안에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늘 그렇다.
이후 숙소로 돌아와 가볍게 저녁을 먹고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둘째 날은 숙소를 옮겼다.
처음 날은 올드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는데, 이 날부터는 올드타운 근처로 자리잡았다.
아들이 낮잠에 들었을 때 혼자 카메라를 메고 밖으로 나왔다.
왓 풋타이싸완 사원 (Wat Phutthaisawan)
이곳은 1353년, 아유타야를 건국한 우통 왕(라마티보디 1세)이 왕궁을 짓기 전에 임시 거처로 사용한 곳으로,
아유타야 왕조 초기의 역사적 흔적이 남아있는 사원이다.
짜오프라야 강 건너편에 위치해 있어서 올드타운에서 늘 멀리 바라만 보던 장소였다.
직접 가보니, 마치 다른 시대로 들어선 기분이었다.
입구엔 역대 왕들의 동상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그 뒤엔 아유타야의 상징 같은 하얀 탑(프랑 프라탓)이 우뚝 서 있다.
그리고 그 너머, 안쪽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현대의 사원 느낌은 입구에만 있다.
안쪽에 들어가 어떤 오래된 문을 통과했다.
그때 정확히 내가 받았던 느낌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마냥
정말 아유타야 시대에 온 거 같은 착각을 순간 불러일으켰다.
아유타야 시대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듯했다.
마치 한 사원 안에 두 개의 시대가 공존하는 느낌.
입체적인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꽤 많은 사진을 찍었다.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고, 어느 각도에서든 시간의 결이 드러나는 장소.
숙소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선셋 타임에 맞춰 마지막 사원을 찾았다.
왓 차이왓타나람(Wat Chaiwatthanaram)
몇 년 전 아유타야 선셋 투어의 마지막 코스로 와봤던 사원이다.
1630년, 프라사트 통 왕 통치의 첫 번째 사원으로
그 지역에 있는 그의 어머니의 거주지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
이곳은 특히 태국인들 사이에서 태국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는 명소로 유명한데,
이번엔 와이프와 아들도 처음으로 전통의상을 입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선셋의 빛 아래, 오래된 사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입구 메인 건물이 보수 중이라 살짝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그 너머로 비치는 빛과 그림자는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머무는 시간만큼, 사람은 그 장소에 스며든다.
아유타야는 익숙했지만, 이번엔 천천히 와닿았다.
내가 좋아하는 감정은 늘 그렇다.
금방은 안 온다.
서서히, 조용히, 그러나 깊게 온다.
그리고 그게,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