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다리, 나를 건너다
아유타야에 여러 번 다녀왔다.
익숙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주.
하지만 그 익숙함이라는 말엔 언제나 조금의 거리감이 있었다.
늘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며 표면만 훑고 지나갔고,
그 너머엔 어떤 세계가 있는지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엔 달랐다.
정확히는, 다른 종류의 끌림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다리 하나.
인터넷에서는 볼 것도 없다,
굳이 찾아갈 필요 없다는 말들이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다리를 꼭 한번 건너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런 끌림이 오히려 더 진지하게 나를 움직인다.
이름도 특이한 연필숲다리.
아유타야 대학교 안에 있다는 정보만 가지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막상 도착해보니 공사 중인 구간이 많아, 들어선 곳이 맞긴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에 고시대의 다리가 있을 리 없다는 의심.
지도에 찍힌 위치를 따라 걷다 보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조용한 길로 접어들었다.
어쩌면, 그 순간부터 다른 시간으로의 전환이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
숲이 깊어지고, 빛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눈앞에 그 다리가 나타났다.
작고 단단한 아치형의 돌다리. 연못 같은 내천을 가로지르며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처럼.
나는 한참을 그 다리 앞에서 서성였다.
건너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본 시간.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숨을 골랐다.
찍기 위해 간 것이었지만, 왠지 이곳만은 쉽게 셔터를 누르고 싶지 않았다.
카메라가 아니라 내 눈으로 먼저 담고 싶은 장면이 있었다.
이 오래된 다리는, 아마도 오랜 시간 많은 것들을 품어왔을 것이다.
짐을 든 사람들, 서두르는 발걸음, 가벼운 대화, 무거운 마음.
그것들이 시간 속에서 쌓여 지금의 다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단지 돌로만 된 구조물이 아니라, 이야기로 다져진 형태.
그래서일까.
그 다리는 나에게 어떤 위로처럼 다가왔다.
나는 때때로 마음이 쉽게 흔들린다.
작고 사소한 일에도 중심이 무너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나를 지탱해줄 무언가를 애타게 찾게 된다.
이번 여행에서 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 다리였다.
고요하게, 묵묵하게,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다리를 건너며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해졌고, 왠지 모르게 "괜찮다"는 말이 떠올랐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결국 기록이고, 기록은 곧 감정의 흔적이다.
이번엔 유독 그 감정이 나를 향해 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프레임이 아니라, 내가 나를 들여다보기 위한 창.
그렇게 셔터를 눌렀다.
다리를 통과하는 빛, 어둠 속에서 반사되는 물빛, 뿌리처럼 얽힌 땅 위의 그림자들.
전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여행지에서 만난 풍경이 아니라, 삶의 한 조각을 다시 만난 듯한 기분.
그저 오래된 다리 하나였을 뿐인데, 나는 그 다리에서 나를 읽고 있었다.
오래된 구조물에 깃든 감정들이 나의 결을 따라 들어왔다.
연필숲다리는 더 이상 그냥 지나치는 장소가 아니다.
나에게는, 삶의 조용한 밀물처럼 다가온 시간이었다.
조급함을 멈추고, 목적 없이 걷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 속에서, 나는 조금 단단해졌다.
이번 이야기는 그렇게, 평범한 다리 위에서 시작된 나의 작은 성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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