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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착(境着)

무의식이 멈춰 세운 순간

by 강라마

기차는 오지 않았다.
철제 차단봉은 올라가 있었고,

차량들도 사람들도 그 사실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무심히 길을 건넜다.

나도 그들처럼 그저 지나칠 수 있었지만,
어느새 나는 선로 위에 서 있었다.


기찻길을 걷는 경험은 의외로 흔하지 않았다.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걷고 싶어도 걷지 못하는 길.
그 순간의 드문 기회를, 내 몸은 먼저 알아차린 듯했다.

한 걸음씩 걷다가 건널목 중간쯤에서 멈춰 섰다.


그곳은 마치 선과 선 사이, 경계선에 놓인 자리 같았다.
기차가 오지 않아도 빨리 지나가야 할 것 같은
본능적인 긴장감이 고개를 들었다.
어디선가 달려올지도 모를 무게감.
실제의 위험 여부와는 별개로
이 선로 위는 ‘멈춤’이라는 행위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도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두려움과 매혹이 정확히 반반씩
내 안에서 균형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나는 낡은 기차를 좋아한다.
태국에서 여전히 운행 중인 오래된 기차들.
시간이 스며 있는 그 외형과 분위기가 사진으로 담기에 너무도 좋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
그 길 위에 서 있는 순간만큼은 기차라는 존재가
낭만이 아닌 위협처럼 느껴졌다.


그곳에서 나는 잠시,
이동과 정지 사이,
일상과 예외 사이에 놓여 있었다.
그날의 사진 한 장은
그 균형 위에 겨우 남겨진 증거였다.

-2025-05-10-2.JPG <경착(境着)>. 2025.04 | Thailand_C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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