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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心像)

낯선 새벽, 마주한 내면의 풍경

by 강라마
칸차나부리-2025-05-29-24(1).jpg <심상(心像):1>. 2025.05 | Thailand_Kanchana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새벽 어스름이 걷히기 전,

칸차나부리의 작은 마을은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야행성인 내게 이른 아침은 언제나 낯설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이 시간에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차가운 공기는, 왠지 모를 경건한 기대를 품게 했다.


탁발, 그 숭고한 행렬에 동참하기 위함이었다.

한 십 년 전,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처음 탁발을 보았다.

새벽마다 길게 이어지는 승려들의 행렬과 조용히 쌀을 올리던 사람들.

경건함 속에 관광지의 연출이 겹쳐 있던 그곳의 기억을 더듬었다.

이곳, 칸차나부리는 달랐다.

행렬은 짧았고, 스님의 수도 많지 않았다.

처음엔 소박한 규모에 아쉬움이 스쳤지만, 이내 나는 본질에 집중하기로 했다.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묵묵히 제 길을 따르고 있었다.

그 순간, 나의 시선은 행렬의 가장 앞에 서 계신 한 스님에게 고정되었다.

사진을 찍는 내내, 이상하게 그분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이유를 곱씹게 된 건, 훗날 사진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내 셔터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분의 표정이었다.


탁발은 단지 음식을 받는 행위가 아니다.

'의지하여 빌어먹다'는 의미처럼, 그 자체가 수행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길을 걸으며 다른 이들의 자비에 의지한다.

그 안에는 자존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낮추는 훈련의 시간이 담겨 있다.

뒤따르던 다른 스님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그분만의 특별함.

시주를 받는 매 순간, 그분은 결코 감사함을 잊지 않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작은 쌀 한 숟갈을 받으면서도 마치 보물을 받은 듯한 진심이 느껴지는 얼굴.

억지로 만든 표정이 아닌, 수행의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따스한 감응이었다.


이 마을의 탁발은 단순히 종교적 의식을 넘어선다.

주체는 태국 불교가 아닌, 미얀마에서 넘어온 몬족 공동체.

그들은 태국 안에서도 또 다른 주변부다.

산을 넘고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이 매일 새벽, 이 골목을 걸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들에게 탁발은 하루하루가 작은 기도이자, 삶의 연속이었다.

그날 아침의 행렬은, 단순히 낯선 풍경을 넘어 마을과 사람들,

그리고 수행과 마음의 태도가 묵직하게 겹쳐지는 장면이었다.

무언가를 애써 외치지 않아도 충분히 전해지는 것들.

특히 맨 앞에 선 그 스님의 미소는, 수행이 얼굴을 가졌다면 아마 이런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도 결국 이런 순간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익숙한 경계를 벗어나, 한 걸음 더 다가가 보는 일.

그러다 이런 장면을 마주하면, 잠깐 멈추게 된다.

멈춰서 바라보고, 묻지도 않았던 내 마음을 다시 읽는다.

그 순간, 나의 마음에 그려진 심상은 낯선 새벽의 고요 속에 깊이 새겨졌다.

칸차나부리-2025-05-29-58(1).jpg <심상(心像):2>. 2025.05 | Thailand_Kanchana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칸차나부리-2025-05-29-103(1).jpg <심상(心像):3>. 2025.05 | Thailand_Kanchana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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