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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림(心林)

어둠을 지나 맑아진 마음의 길

by 강라마

낯선 사원에 닿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빽빽한 대나무가 하늘을 가린 길이 펼쳐졌다.

햇빛 한 점 스며들기 어려운 짙은 녹음은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묵직한 어둠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외부의 소음마저 삼켜버린 듯한 그곳은, 오직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소리만이 가득했다.

이 터널을 지나면 나쁜 기운이 사라지고 좋은 에너지가 가득 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흥미로운 전설쯤으로 여겼다.

나콘나욕_흑백-2.JPG <심림(心林):1>. 2025.06 | Thailand_Nakhon Nayok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그러나 한 발 한 발 대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을수록,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빽빽한 줄기들이 만들어내는 수직의 공간감,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빛과 그림자의 조화는 마치 다른 차원으로 들어서는 문 같았다.

길의 끝을 향해 갈수록, 신기하게도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맑음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답답했던 마음속 한켠이 서서히 걷히고, 불필요한 생각들이 바람에 실려 사라지는 듯했다.

나콘나욕_흑백-422.jpg <심림(心林):2>. 2025.06 | Thailand_Nakhon Nayok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나콘나욕_흑백-7.JPG <심림(心林):3>. 2025.06 | Thailand_Nakhon Nayok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이곳이 정말 나쁜 것을 흘려보내고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단순한 전설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왔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나를 둘러싼 공기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면의 감각이 뚜렷하게 변해 있었다.

온몸의 세포가 새롭게 깨어난 듯한 개운함,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되고 정화된 듯한 맑음을 느꼈다.

대나무 숲이 만든 그 길은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통로가 아니었다.

낯선 시선으로 마주한 그 숲은 외부의 풍경을 넘어, 지나야만 하는 감정의 통로였다.

그곳에서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스스로를 비우고 다시 채우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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