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말이 없고, 대신 보여준다
가끔은 그냥 걷는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확신도 없이.
마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멈춰버릴까 봐.
유독 산이 많은 나콘나욕이기에 그날 따라 나도 모르게 산자락을 자주 올려다보게 되었다.
평소보다 더 자주, 더 오래 산의 결을 따라 시선이 흘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걸음을 멈추게 됐다.
어둑한 산자락과 유독 맑고 빛났던 하늘 사이의 경계.
두 요소가 맞닿은 그 선이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다가왔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능선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안엔 굴곡이 있다.
파도처럼, 파마머리처럼, 삶처럼.
우리는 그런 길을 걷는다.
겉으론 일직선 같지만 속으론 꼬불꼬불하고,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무심하다.
그저 묵묵히 걷는 수밖에 없다.
되돌릴 수 없고 건너뛸 수도 없기에.
그리고, 그 끝에.
나는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곳에 닿았다.
그 길은 누군가의 추천이었다.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장님의 말 한마디에 기존 일정을 모두 바꾸고 찾아간 길.
그저 그런 흔한 풍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길은 내가 오래전부터 막연히 그리고 있던 길의 모습이었다.
비슷한 이미지는 수도 없이 봤지만 막상 실제로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잠시 멈춰 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봤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미세하고 미묘한 감동이란 느낌이 올라왔다.
어쩌면 이 모든 굴곡도, 우연도, 지침도 다 이 길을 만나기 위한 준비였을지도 모른다.
길은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대신 끝내 무언가를 보여준다.
단 한 장면이면 충분하다.
그것이 어떤 감정을 남겼다면, 그 길은 이미 나에게 온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