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로(旅路)

길은 말이 없고, 대신 보여준다

by 강라마

가끔은 그냥 걷는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확신도 없이.
마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멈춰버릴까 봐.

유독 산이 많은 나콘나욕이기에 그날 따라 나도 모르게 산자락을 자주 올려다보게 되었다.
평소보다 더 자주, 더 오래 산의 결을 따라 시선이 흘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걸음을 멈추게 됐다.

어둑한 산자락과 유독 맑고 빛났던 하늘 사이의 경계.
두 요소가 맞닿은 그 선이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다가왔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능선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안엔 굴곡이 있다.
파도처럼, 파마머리처럼, 삶처럼.

우리는 그런 길을 걷는다.
겉으론 일직선 같지만 속으론 꼬불꼬불하고,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무심하다.
그저 묵묵히 걷는 수밖에 없다.
되돌릴 수 없고 건너뛸 수도 없기에.

나콘나욕_3-34.jpg <여로(旅路):1>. 2025.06 | Thailand_Nakhon Nayok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그리고, 그 끝에.

나는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곳에 닿았다.
그 길은 누군가의 추천이었다.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장님의 말 한마디에 기존 일정을 모두 바꾸고 찾아간 길.

그저 그런 흔한 풍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길은 내가 오래전부터 막연히 그리고 있던 길의 모습이었다.
비슷한 이미지는 수도 없이 봤지만 막상 실제로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잠시 멈춰 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봤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미세하고 미묘한 감동이란 느낌이 올라왔다.

어쩌면 이 모든 굴곡도, 우연도, 지침도 다 이 길을 만나기 위한 준비였을지도 모른다.

길은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대신 끝내 무언가를 보여준다.

단 한 장면이면 충분하다.
그것이 어떤 감정을 남겼다면, 그 길은 이미 나에게 온 길이다.

나콘나욕_3-186.JPG <여로(旅路):2>. 2025.06 | Thailand_Nakhon Nayok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keyword
이전 21화상생(相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