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위한 용기를 주는 그림책 테라피(그림책 에세이)
노를 든 신부(오소리 글/그림)
2002년 여름, 대한민국이 한일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을 때, 저는 유럽에 있었습니다. 대학 생활의 마지막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4학년 여름방학에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가기로 한 것이지요. 친한 친구들과 함께 가고 싶었지만, 다들 취업 준비에 바빠서 같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여행을 포기해야 하나 생각하던 찰나, 우연히 인터넷으로 동반자를 모집해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코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저는 빠르게 동반자 3명을 모아서 함께 여행 계획을 세우고 준비한 뒤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그때 유럽에서 보냈던 50일은 지금까지도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생전 처음 가보는 유럽의 예쁜 도시들과 그곳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사람들, 그리고 재미있던 사건들은 아직도 떠올리기만 하면 행복한 웃음을 짓게 합니다.
만약, 2002년 여름에 함께 갈 친구가 없어서 배낭여행을 포기했다면 이런 추억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여행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으니까요. 여행의 계획 단계에서 약간의 고비가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 덕분에 정말 소중한 추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배낭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졸업 후 일을 시작했을 때도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 저만의 계획을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제 첫 직장이 보수가 적고 일과 삶의 균형을 포기해야 할 만큼 강도가 센 곳이었는데요. 저는 그곳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장 늦게 퇴근하는 직원이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을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은 강한 의지 때문에 늦게 퇴근하는 일은 전혀 힘들지 않았지요.
그림책 <노를 든 신부>의 주인공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진취적인 여성입니다. 신부는 부모님께서 선물해 주신 노 하나와 드레스를 입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인생을 설계해 나갑니다.
먼저 신부는 노 하나를 들고 바닷가로 나갑니다. 그곳에서 신부는 자신에게 새롭고 멋진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노 하나만 들고 있는 신부를 반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부는 바닷가를 떠나 산으로 올라갑니다. 그곳에서는 신부의 노가 몇 개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신부를 반겼지요. 하지만 이번엔 신부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그곳을 나옵니다.
처음엔 노 하나로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신부는 그 하나의 노를 가지고서 자신이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일들을 해냅니다. 늪에 빠진 사냥꾼을 구해내고, 과일을 따고, 요리를 하고, 커다란 곰과 격투를 벌이지요.
그러면서 자신이 야구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멋지게 야구 선수로서 계약을 따내며 자신이 원하는 나라로 떠납니다. 불완전해 보이는 노 하나 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둘 이뤄나가는 신부의 모습을 보면서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신부는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굳은 심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가고 꿈도 이뤄내지요.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생각이 있기에 가능한 행동일 것입니다.
<노를 든 신부>는 제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그림책입니다. 아이들에게 꿈이나 자존감과 관련한 그림책을 읽어줄 때 우선순위에 있는 책이지요.
새로운 야구팀으로 신부를 데려가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비행기를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저는 앞으로 또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들이 신부의 삶에 펼쳐질까 하는 기대감에 마치 제 일처럼 마음이 설레었답니다.
☘ 추천 연령대
초등 전학년
☘ 함께 보면 좋은 책
치킨 마스크 (우쓰기 미호 글/그림)
대장 토끼는 나다운게 좋아 (큐라이스 글/그림)
시몬의 꿈 (루스 마리나 발타사르 글/그림)
메이시의 거울 (애덤 치치오 글/게어티 자케 그림)
빨강 머리 토리 (채정택 글/ 윤영철 그림)
난 나의 춤을 춰
(다비드 칼리 글/ 클로틸드 들라크루아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