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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도설 May 24. 2024

마르게리타의 사랑할 결심

마르게리따 피자

충무로 심 선생의 스튜디오 A실.


"피자도우에 포크로 자국을 열 번쯤 내보세요. 너무 많이 찍어도 나중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항상 기억할 것은 우리는 '먹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만든다는 것' 을 잊지 마세요."


지혜는 조 별로 네 명씩 이뤄진 수강생들에게 샐러드용 포크 크기보다 조금 더 큰 스테이크용 포크를 나누어 준다.


연수는 B 실에서 8인용 식탁에 포인세티아와 차렌시아빨간 열매로 플라워 장식을 하는 중이다. 식탁 옆에 은색의 오너먼트를 두른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져 있다.


심 선생이 "포크로 왜 찍으라고 하는 걸까?" 묻자, 한 수강생이 선뜻 "공갈빵 되지 말라고요." 수강생들은 동시에 웃는다. "집에 갈 때 저 수강생한테 피자랑, 케이크 싸주어야겠다." 심 선생의 칭찬으로 스튜디오 분위기는 활기를 띤다.


"자, 카메라가 피자를 잡을 때, 삼각스페치로 피자 한 조각을 뜨면서 치즈가 같이 쫙, 최대한 길게 많이 올라와야 하는데, 어떻게 한 것일까?"


지혜는 오븐에서 막 꺼낸 두 판의 피자를 세팅해 놓고, 연수를 부른다.


한 판은 지혜가, 한 판은 연수가 피자 한 조각을 떠 본다. 치즈가 동시에 딸려 올라오는 듯하더니 한 판은 이내 곧 사그라들고 다른 한 판의 피자는 쭈욱 치즈가 끌어 올라오면서 침을 삼키게 한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크리스마스이브인데, 이 차이는 어떤 방법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다음 시간까지 생각해 올 것 이상." 수강생들은 너도나도 수다스럽게 스튜디오를 나선다. 크리스마스이브. 캐럴은 서울을 하나로 묶고 있었다.


소공동 지하 롯데백화점 입구. 6시 30분.

그이가 30분째 오지 않고 있다.


그이는 오늘 휴무였는데 지혜는 좌우로 주변을 보다가 저기서 그이가 뛰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떠올렸다.


 '첫날의 부산함이다.'

그이를 산만하게 보이게 하는 움직임.


"많이 기다렸지. 우선 올라가자"

그이는 백화점이 아닌 롯데호텔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로 지혜를 이끈다.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들이 많아 아무것도 묻지 못하는 상황이다. 가장 꼭대기 층에서 내려 지혜의 손을 잡고 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했다.


앤틱한 웨인스코팅의 장식이 중세 시대 귀족들이 앉아 홍차를 마셨을 것 같은 식당. 우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입구다.


"죄송합니다. 예약 시간에서 20분이 넘었기에 대기자분께 좌석을 드렸습니다. 예약 시에 양해 사항임을 전달해 드렸습니다."

그이는 시간에 늦은 본인 잘못이라며, 지혜의 손을 잡고 1층으로 다시 내려간다. 그이가 데려오고 싶어 한 곳.


우아한 식당.


"아! 미안해, 저기에서 꼭 저녁을 사주고 싶었는데, 할 수 없다. 우리 대학로 가자"  

지혜가 괜찮다고 말하기도 전에 그이는 택시를 잡는다.


지혜는 "이런 날은 막혀서 그냥 지하철 타요. 오빠" 그이는 또 눈주름을 짓는다.


"막혀도 저 불빛들이 보이잖아, 사람들도 보이고, 이런 날은 막혀도 재미있고, 즐거운 거야"  

종각 방향으로 1킬로쯤 가다 택시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지혜와 그이는 지하철로 이동한다.

"크리스마스에는 이렇게 같이 두르는 거야"

그이는 빨간색 목도리를 지혜에게 둘러준다.

그이도 빨간 목도리를 둘렀다.


혜화역 방송통신대 방향으로 나와서 마로니에 공원을 가로질러 골목으로 그이는 지혜를 이끈다. 담쟁이덩굴이 온 벽을 둘러싼 어느 벽돌집 앞에서 그이가 들어가자고 한다.


<디마떼오> 이탈리아 화덕피자 집.


그이는 마르게리타 피자와 와인 한 잔씩을 주문한다.

지혜는 첫 마르게리타 피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심플하고, 단정한 피자.


지혜 앞에 그이가 내놓은 티파니 시그니처 연하늘색 상자.


"이건 프러포즈는 아니야.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반지는 아니고, 목걸이로 샀어. 크리스마스이브에 같이 있어서 너무 좋고, 고마워."  

지혜는 "식당을 두 곳이나 예약해 둔 거예요?"

그이는 "응, 늦어서 미안해, 언제나 유비무환의 정신을 갖고 있잖아"  


"동생 선물 사준다고 나갔다가 이 녀석이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진땀을 빼서 그래서 늦었어."

지혜는 "바로 찾은 거예요?"

"응, 바로 찾았어, 걱정 안 해도 돼. 지혜는"

그이는 여동생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

오늘이 두 번째쯤 되는 것 같다.


그이는 피자를 크게 한 조각 떠준다.

"오늘 피자 수업했는데, 오빠 이 치즈가 더 많이 올라오게 하는 방법 알아요?"

"글쎄, 치즈를 많이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 한 조각 뜰 곳의 도우만 미리 선을 그어서 점선으로 두어요. 그러면 나머지 원 부분의 치즈가 같이 딸려 올라오거든요"


그이는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가 얼굴에 피어오른다.


그이를 만났던 첫날 보름달 같던 입맞춤 이후,

그이는 지혜에게 6개월간은 손만 잡겠노라며 스스로 다짐을 하였건만, 지혜가 그 다짐을 깬다.


크리스마스이브 오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것은 다 따라 하면서 행복하다는 그이의 말에 구름에 달 가듯 먼저 입을 깊게 맞추었다.

지혜 뺨에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두 사람은 두 사람에게 가장 행복한 날이었음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이는 물방울 목걸이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 그날 다운증후군 여동생을 찾느라, 그이의 뺨에서 흐르던 땀방울 같은 목걸이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


지혜는 마르게리타 피자의 싱싱함과 심플한 맛이 주는 담백함을 몰랐다.

함께 있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한 그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디마떼오> 2층 타원형 하얀색 천장을 같이 바라보면서도 지혜는 몰랐다.

그이가 모짜렐라 치즈처럼 하얀 밤을 지혜와 오랜동안 함께 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음을 몰랐다.


그이가 오로지 그이로서만 보이고 싶었음을.





photo : 2024.05.23.

또띠야로 만든 마르게리타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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