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100일 만에 학원 등록
맘카페에는 심심찮게 이런 글들이 올라온다
'남편이 임신 선물 사준다는 데 뭘 사면 좋을까요?'
'출산 선물 무엇을 받을까요?'
'다들 조리원 예산 어느 정도로 잡으셨나요?'
남편도 어디선가 이런 분위기를 들었는지,
무엇이 갖고 싶은지 묻곤 했다.
하지만 나는 아껴두기로 했다. 다 합치면 꽤나 큰돈인데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아껴둔 예산으로 난, 출산 후 100일 만에 로스쿨 준비반에 등록했다. 인강을 들을까, 학원을 다닐까 고민하다가 결국 현장 강의를 선택했다. 반지를 살까 가방을 살까 고민할 때와는 다르게 망설임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결정은 단순한 학업 선택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투자이자, 학창 시절의 결핍을 채우려는 시도였던 것 같다.
우리 집은 가난하진 않았지만 유복하다고 하긴 힘들었다. 아버지는 외벌이셨고, 어머니는 전업주부로 집을 돌보셨다. 외식은 일주일에 한 번, 돼지고기 목살을 주로 먹었다. 가끔은 소고기를 먹을 때도 있었지만, 항상 가성비 좋은 한 판 짜리 정육식당을 찾아가는 것이 익숙했다. 그땐 그런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님은 연년생 남매의 교육비가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나 보다. 우리는 서울에서 경기도의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외식도 점차 줄어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던 것이 한 달에 한 번도 겨우 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가족들이 서로 바빠서가 아닌 것쯤은 아는 나이였다.
부모님은 책과 교육비만큼은 아끼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소비를 제한하셨다. 친구들이 쉽게 누리는 것들을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부모님이 그렇게까지 절약하시는 이유를 어릴 땐 몰랐다. 하지만 점점 성장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우리 집은 그렇게 여유롭진 않구나.' 이 깨달음은 나를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원하는 회사에 빠르게 취업했다. 당시에도 나름 취업난이 심각했기에,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기뻤다. 무엇보다도 내가 스스로 돈을 번다는 것이 가장 기뻤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소위 ‘사짜’ 직업을 위한 공부를 이어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내 안에 아직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돈을 벌고,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는 현실이 늘 앞에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지금, 나는 또다시 여유롭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나는 로스쿨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임신 선물, 출산 선물, 조리원 비용 등을 최대한 아끼며 학원 등록비로 쾌척했다. 남들처럼 아이에게만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내 안의 23살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네가 원하던 공부를 해봐!"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친구들이 말했다.
"이제 우리가 아니라 아이한테 투자해야 하지 않아? 난 내가 잘 되는 것보다 아이가 더 잘 됐으면 좋겠어."
나는 웃으며 맞장구를 쳤지만, 속으로는 갸우뚱했다.
'나는 아직도 나에게 투자하고 싶어. 하고 싶은 것이 많아. 뭐지? 나만 그런 건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도 나 자신을 위한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물론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오히려 나는 나 자신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이에게 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다. 부모가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도 도전하는 삶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지난 세월 동안 부모님의 희생 속에서 쌓아온 결핍과 갈망을 이제는 내가 채우고 싶었다. 어린 시절 느꼈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 온 삶이었고, 이제 그 과정의 일부로 나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내가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는 말에 크게 놀라진 않았다. 남편이 시차출근제로 일찍 출근하고 바로 퇴근해 집에 도착하면 나는 곧장 학원으로 향하기로 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뒤 집에 돌아와 아기를 재우고 나머지 공부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계획처럼 보였다.
당시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