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구나!
텅 빈 광장과 여유로운 거리.
북적이는 로마가 아닌
베니스보다 더 텅 빈 로마.
이번 3박 4일간의 로마 일정은 꽤 여유로운 편이었다.
도착 첫날은 특별한 계획없이 호텔에서 쉬려 했었다. 이번이 로마에 처음 온 것도 아니고, 베니스와 아레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지라 살짝 지쳐있기도 했었다. 언덕 위의 호텔이라 전망이 좋아서 방에서 쉬고 싶었다. 그러나 저녁을 호텔 라운지에서 해결하려 했던 처음 계획이 깨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다.
결국 점심은 호텔 라운지에서 제공하는 과자류로 허기를 채웠고, 저녁은 밀라노에 사는 이탈리안 친구가 알려준 곳으로 급하게 예약했다. 이곳은 다음 날 가려했던 곳이다. 스페인 계단(Spanish Steps)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은 로마에 올 때마다 꼭 들르는 곳이다. 이곳은 현지인들에게도 오랫동안 인기있는 맛집이라 예약은 필수다. 예전에 그냥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식당 근처에는 주차하기가 힘들 듯하여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걷기로 했다.
미인은 무죄?!!
방에서 휴식을 취한 뒤,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이었다. 시내에 들어서니 차도 많아졌다. 잔뜩 멋을 부린 여인 2명이 무단횡단을 한다. 왕복 4차선의 도로를 무단 횡단하면서도 뛰거나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당당하다. 심지어 폰을 들여다보며 여유롭게 걷는데, 달리던 차들은 경적조차 울리지 않고 멈춰 선다. 마치 그들의 횡단에 방해될까 봐, 편하게 건널 수 있게끔 예의를 갖추고 기다리는 모습이다. 심지어 남편조차도 여느 때와는 달리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주차 후, 나 혼자 조금 뒤처져서 걷고 있었다. 멋지게 차려입은 신사 2명이 반대편에서 걸어오다가 나와 마주치니, 멋진 미소와 함께 'Buonasera'라고 저녁 인사를 하며 길을 내준다. 우와~~ 무단 횡단하던 그 미녀 2명과 동등해진 기분이 들었다. 이탈리아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친절하다더니 미녀가 아녀도 이런 대접을 받는구나!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로마의 거리엔 어쩜 이리도 멋쟁이들이 많을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들이 생글거리며 인사까지 해 주니 더 좋았다. 뮌헨 거리에도 멋쟁이들이 있지만 로마처럼 색상이 화려하진 않다. 날씨의 영향도 있을 거다. 여름이라 해도 비가 오면 온도가 뚝 떨어지는 독일은 검은색 계열의 바람막이 재킷이 흔한 패션이다.
로마에는 이쁜 가게도 많고 맛집도 많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명소가 많아서 살아보고 싶다.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는 로마가 아닌, 지금처럼 사람이 없는 로마라면 한번 살아보고 싶다. 한가한 로마에 살면서 멋진 유적지들을 여유롭게 둘러본다면 참 좋겠다. 트레비 분수와 스페니쉬 계단 그리고 시내 거리에도 사람이 없었다. 관광객이 없으니 집시도 없었고 소매치기도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그들도 타격이 크겠지만, 그들이 없으니 우리는 편히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저녁을 먹고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을 지나 스페인 계단을 올라갔다.
스페인 계단(Spanish Steps),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계단에 앉아 젤라토를 먹었던 장소로 더 유명하다. 17세기 중엽에 스페인 대사관이 생기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프랑스인들이 지은 이름이란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스페인 계단을 중심으로 아래는 스페인 광장, 계단 위는 프랑스 광장이다. 프랑스 광장에는 프랑스인이 지은 프랑스 성당(삼위일체 성당, Trinità dei Monti)이 있다.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 정도의 젊은 남녀 3명이 계단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여자 한 명이 사진 모델이 되어 텀블링도 하고 고난도 물구나무서기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거다. 아마 이들도 코로나로 인해 한산해진 곳을 사진에 담아 SNS에 올리려나 보다. 텅 빈 계단 위에서 마음에 들 때까지 여러 번 찍는다. 코로나가 종식된 후, '이런 때가 있었단다'하며 추억을 되짚어 볼 날이 곧 오겠지.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 젤라토를 먹는 사람들로 언제나 붐볐던 계단이었다.
사람들이 마시다 흘린 와인과 커피, 추잉껌 등으로 훼손이 심해져서 2019년부터 엄격한 문화재 보호 규칙이 시행되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젤라토뿐 아니라 모든 음식을 먹는 행위는 금지되었고, 계단에 앉거나 눕는 것도 금지되었다. 어길 때 벌금이 부과된다는 기사도 읽은 적이 있다. 그 정도로 늘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던 곳이 보호 규칙이 시행된 1년 후엔 코로나로 텅 비었다.
계단을 다 오르고 나서야 계단에 잠시 앉아 볼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람이 없어도 계단에 앉아있으면 벌금을 물까? 궁금했지만, 시도해보진 않았다. 사람이 없으니 딱히 앉아 있고 싶단 생각도 안 들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도 즐겁지 않지만 너무 없어도 흥미가 떨어진다. 뭐든 적당한 경쟁이 있어야 더 흥미로워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