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차 거부하는 로마 택시

콜로세움

by 뮌헨 가얏고


로마에 도착한 셋째 날,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인 콜로세움에 갔었다. 역시 온라인 사전 예약만 가능했다. 서로 마주하고 있는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Foro Romano)를 함께 볼 수 있는 통합입장권을 예약했다. 전날 택시를 못 잡아 무척 고생했기에 이날은 차를 가지고 움직이기로 했다.


바티칸 시국 근처 곳곳에는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차량 통행을 막아놨고, 문 연 가게도 별로 없었다. 나의 첫 로마 여행을 떠올려 보면, 이 거리에는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레스토랑으로 빼곡했었다. 팁을 바라는 웨이터가 무언의 압박을 가하듯 곁에 서서 동전을 계속 흔들어 댔는데, 상당히 불편하고 불쾌했던 적이 있었다. 그랬던 곳이 이번엔 마땅히 점심 먹을 곳조차 찾기 힘든, 텅 빈 거리로 변해 있었다.


결국 택시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가서 레스토랑을 찾아보기로 했다. 차량 통제 때문에 택시를 타려면, 땡볕 아래를 한참 동안 걸어 나와야만 했었다.


승차 거부하는 택시

코로나로 인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탓에 수많은 택시가 택시 정류장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우리를 태워주는 택시는 단 한 대도 없었다. 승차 거부를 당할 때마다 하나씩 알게 된 로마의 방역지침은 꽤 까다로웠다. 5인승 일반 택시는 승객 3명만 탑승할 수 있고 마스크 착용은 필수였다. 조수석엔 승객이 앉을 수 없고,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는 플라스틱 벽이 설치되어 있다. 우리는 4명이라 7인승 이상의 큰 택시만 가능했는데, 아무리 둘러보고 기다려 봐도 그런 택시는 없었다. 택시 정류장에 늘어선 긴 택시 줄이 우리에겐 그냥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그 방역지침은 우버 택시도 예외는 아녔다. 도로 곳곳이 차단되어 겨우 만난 우버 기사 아저씨도 우리를 태울 수가 없다고 했다. 아저씨는 여기까지 와서 괜찮다고 그냥 돌아갔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허탕 치게 해서 죄송한 마음이 컸다. 전날 쉽게 우버택시를 탈 수 있었던 건, 바티칸 박물관 입장 시간에 맞추려고 제일 빨리 올 수 있는 차를 예약한 게 9인승이었던 거다. 별문제 없이 이용했던 지라 정확한 방역지침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관광객이 많은 곳인 만큼 낯선 사람과의 접촉이 많은 택시 기사는 슈퍼 전파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가 확산하는 걸 사전에 막으려면 택시 기사를 보호하는 것이 현명한 방침이란 생각은 들었지만, 우린 너무 힘들었다. 덥고 갈증 나고 배까지 고픈 데다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결국 택시 잡기는 포기했다. 바티칸 시국 근처에서 간단하게 허기를 채우고 판테온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콜로세움으로 가는 길, 도로가 텅 비었다.


주차할 곳이 없을까 봐 걱정했었는데, 가까운 곳에 주차할 공간을 찾았고 무료였다. 게다가 점심 먹기 위해 예약한 레스토랑과도 가까웠다.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차를 가져오길 정말 잘했다.

가장 성수기인 여름인데도 텅 빈 도로. 사람도 없고 차도 거의 없다.


유로 5센트에도 들어가 있는
콜로세움


웅장한 외형과 잔혹한 역사가 있는 콜로세움은 유럽 건축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건축물이자, 이탈리아의 유로 주화 5센트 뒷면에도 새겨져 있을 만큼 로마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5년간 독일에 살았지만, 나라별 유로 주화의 디자인이 다르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특히 5센트 이하의 동전을 쓸 일도 없다 보니 구경조차 쉽지 않았고 유심히 살펴본 적도 없었다. 다음 여행 때는 각 나라의 동전을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2013년 3월말. 이때는 밖에서 사진만 찍었었다. 저 인파 속으로 유모차를 끌고 다닐 엄두도 안났었지만, 아이들이 어려서 큰 흥미를 느낄 수 없을 거로 생각했었다.
2020년 7월 4일. 사전 예약한 사람들만 있어서 제법 한산했다. 거리 두기를 하며 각자의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 역시, 시간 별로 제한된 인원만 입장할 수 있었다. 매번 로마에 올 때마다 엄청난 인파에 구경할 엄두조차 못 냈었는데, 관광객으로선 사람이 많지 않아서 정말 좋았다. 모든 관광지에선 깐깐한 열 체크와 손 소독은 기본이었고 사람들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일방통행으로 다녀야 했다.




콜로세움의 원래 이름은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Amphithearum Flavium)이다. 베스파시아누스가 로마의 황제가 되면서 플라비우스 왕조가 시작되었다. 평민 출신이었던 그는 황제로서 권력을 가지기 위해 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인기가 필요했었다. 콜로세움의 건립은 거대한 원형극장을 지어 시민들에게 각종 오락거리를 제공한다면, 그들의 지지와 인기는 단숨에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정치적 목적이 강했다.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은 폭군 네로 황제의 화려한 궁전이 있었던 자리에 지어졌다. 원래 시민들의 주거지였었는데, 대화재가 나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잿더미로 변해 버린 땅을 네로 황제가 몰수해 개인의 화려한 궁전을 지어버려서 시민들의 반발은 컸다. 그런 궁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시민을 위한 원형 경기장을 짓는다는 건, 그 땅을 다시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상징적인 의미이기도 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좋은 황제가 되기 위해 늘 노력했고, 항상 겸손하고 유머 감각도 풍부한 황제였다고 한다.


콜로세움이란 이름은 네로가 자신의 모습을 본떠 만든 거대한 동상(콜로서스 네로니스)에서 따왔다고 한다. 네로가 죽은 후 그 동상의 머리 부분만 바꿨는데, 태양모양의 왕관을 달았다고 해서 콜로서스 솔리스(거대한 태양신)라 불렀다. 콜로서스는 '거대한'이란 뜻으로, 여기에서 가져온 이름이 콜로세움이다. 콜로세움은 나중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현재 더 많이 알려지고 사용하는 이름이다.


콜로세움을 개장한 초기에는 이곳에 물을 채워 모의 해전극을 열었다. 노예나 범죄자들을 배에 태워서 한 편이 죽을 때까지 싸움을 벌였다. 6,500ℓ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물을 채우는 데는 고작 2~5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니 배수로가 얼마나 발달하였는지 짐작이 간다. 로마제국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인 수로 건설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우마키아(Naumachia)라 불리는 해전극은 원래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강이나 인공호수에서 행해졌던 모의 해상 전투였다. 언제나 인기가 많았던 경기였기에, 이를 축소해 콜로세움에서 행했지만 그 인기가 오래가진 못했다. 야외에서 하는 것보다 비용을 절감할 수는 있었지만, 웅장하진 않았기 때문에 점점 인기가 시들어져 갔다. 경비 보충에도 문제가 있다 보니 모의 해전극은 결국 사라졌다. 오히려 검투사들의 검투가 더 인기를 끌게 되면서 콜로세움은 현재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검투장으로 변했다. 왜 그들은 이런 잔혹한 경기에 열광했을까?


아치에 장식된 조각들은 네로의 개인 정원에 있었던 것을 그대로 옮겨서 모두가 감상할 수 있게끔 했다


해전극과 검투극 외에도 서커스 등 다양한 공연들이 있었고 이곳에서 사람들이 살기도 했다. 양복집, 정육점,치즈 만드는 가게까지 있었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그 당시 경기 관람 중에 스낵으로 먹고 남긴 조개껍데기와 뼛조각을 전시해 둔 것과 그 당시 살았던 쥐의 뼈까지 전시하고 있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


독일에 살면서 느낀 아시아와 유럽의 차이점은, 아시아는 최첨단을 추구하고 유럽은 전체가 민속촌이란 느낌이 들 정도로 개발되는 걸 반기지 않는다는 거다. 옛 것은 낡고 촌스러운 것이 아닌 거다. 다소 불편한 점은 있을 테지만 잘 다듬고 보존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내가 만난 이들은 그렇게 자기들의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남의 문화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많다. 우리만의 고유문화와 전통이 있다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외국 생활을 하면서 더 많이 느끼게 되고 자부심도 가지게 된다. 먹고 버린 스낵의 흔적과 쥐의 뼈조차 소중히 전시해 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때 먹었던 스낵과 쥐의 뼈


코로나로 콜로세움은 일부분만 개방했다. 콜로세움 내의 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는데 소나기가 쏟아졌다. 차 안에 두고 온 우산이 생각났다. 여름에 비 올 확률이 거의 없으니 비 올 걱정은 하지 말라는 여행 정보를 너무 믿었나 보다. 꼼짝없이 박물관에 갇혀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는데, 좀처럼 비는 그칠 생각을 안 했다. 그냥 포룸(Foro Romano, Roman Forum)으로 가기로 했다.


콜로세움 밖으로 나오는데, 우산을 팔고 있는 몇몇 방글라데시 행상인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우리가 입장할 때만 해도 물이랑 선풍기 같은, 더위를 피할 용품을 팔았는데, 어느새 그런 용품은 싹 사라지고 우산이랑 비옷을 팔고 있었다. 그들의 민첩성이 놀랍기도 했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찾아와 주는 친절한 서비스처럼 고맙게 느껴졌다. 단속 경찰팀이랑 숨바꼭질하듯 물건을 파는 그들, 결국 몇 명은 물건을 다 뺏기고 경찰차에 연행되어 갔다. 그런 모습을 보니, 이날만큼은 그들에게 더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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