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테온, 트레비 분수, 나보나 광장
2일째는 차 없이 시내를 돌아다녔다. 3번째 로마를 방문했지만, 판테온, 트레비 분수, 나보나 광장 등은 올 때마다 둘러보게 된다. 바티칸 시국에서 판테온으로 이동할 때 택시를 못 잡아 고생하긴 했지만, 판테온에서부터는 걸을 수 있는 거리에 볼거리가 집중되어 있어 걷는 재미가 솔솔 했다. 무료이고 예약할 필요도 없으니 부담도 없다. 단지 늘 인파에 치이던 곳이라 제대로 구경하기가 힘들었을 뿐이었다. 이번 여행의 최고 목표는 한적한 로마를 구경하는 것이니만큼 트레비 분수 같은 인기 명소는 절대 빠트릴 수가 없다. 판테온과 트레비 분수에서 사진을 찍고 나보라 광장에서 티타임을 가질 예정이다.
판테온(Pantheon)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란 뜻을 가진, 그리스어 판테이온에서 유래된 말로, 고대 로마제국 때 지어진 건물이다. 고대 로마 시대엔 신전이었던 이곳이 중세에 들어오면서 성당으로 바뀌었다. 고대 로마에 지어진 수많은 건물이 중세 초기에 들어오면서 약탈로 파괴되었지만, 교회의 보살핌 덕에 판테온은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고대 로마 건축물로 남아있다.
르네상스 이후에는 무덤으로도 사용되었는데, 라파엘로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왕 등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의 무덤이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판테온의 입구는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킨다. 폐허처럼 낡은 외관과 달리 실내는 깔끔하며 좀 더 현대적인 느낌이다. 뻥 뚫린 홀에 둥글게 원을 그리며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목을 뒤고 젖히고 천장을 쳐다보고 있다. 엄청난 규모로 지어진 돔(dome)의 천장 가운데 구멍으로 비추는 빛에 이끌려 모두 한참 동안 사진을 찍어댄다. 매번 느끼는 판테온의 변함없는 모습이다.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공학 기술이 발달한 고대 로마제국 시기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곳곳에 수로를 개설하여 사람들이 풍족하게 물을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건국 초기 로마 시민들은 테베레강이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와서 사용했다. 로마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테베레강의 물은 오염되기 시작했고, 깨끗한 우물의 물은 말라가게 되어 물 부족 현상이 일어났다. 곳곳으로 연결된 수로를 개설하면서 더 물을 길어 올 필요가 없었다. 공중목욕탕과 공중화장실이 발달하였고 모의 해전을 할 수 있었으며, 곳곳엔 분수대를 설치했다. 그래서 로마엔 분수가 아주 많다.
모든 분수는 예술가들이 디자인했기에 하나같이 다 아름답고 개성 있다. 예술가들의 창작열에 불타 디자인된 수많은 분수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분수는 단연코 트레비 분수이다. 트레비 분수를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로마를 찾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 덕에 더욱 유명해진 트레비 분수는 세 갈래 길이 합쳐진다고 해서 트레비 분수라는 설과 트레비움에 분수가 세워졌다고 해서 트레비란 설이 있다.
트레비 분수에 오면 꼭 하는 일이 있다. 영화 속 오드리 헵번처럼 다시 오기를 소망하며 동전 던지기이다. 동전을 한 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2번 던지면 사랑이 이뤄지고, 3면 던지면 그 사랑과 헤어진다는 설이 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얘기이다 보니 3번째 던지는 동전의 의미엔 어려운 일이 이뤄진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동전 던지기는 쉽지 않았다.
인기가 좋은 만큼 트레비 분수는 언제나 수많은 관광객에게 점령당해 있어서 사진 찍기조차 힘들던 곳이었다. 분수 구경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며 소매치기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렇게 던져진 동전은 로마에 엄청난 수입원이 된다고 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하루에 던져진 동전으로 얻는 수입이 3천 유로 정도로 한 해 수입은 대략 140만 유로(한화 17억 원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분수 안에 던져진 동전을 함부로 주웠다가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로마를 먹여 살리는 격이다. 우리나라 한류 열풍 덕에 수많은 외국 관광객이 한국에 방문하듯 나라의 이미지를 부각하기엔 문화와 예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관광객이 없으니 물을 빼서 지금은 트레비 분수가 말랐다는 기사를 며칠 전에 봤다. 작년 여름 우리가 갔을 땐 사람만 없었지 모든 게 일상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작년 여름에 여행을 갈 수 있었던 것도 운이 좋았다.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오전엔 바티칸 시국을, 오후엔 로마 시내를, 온종일 걸어 다녔더니 다리가 너무 아팠다. 더운 날씨에 갈증이 심해서 가져간 물도 다 마시고 없었다. 바로 쉬고 싶었지만 마지막 코스인 나보나 광장에서 여유롭게 쉬었다가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만든 원형 경기장이 있었던 자리에 만들어진 광장이다. 나보나 광장에는 무어인의 분수(Fontana del Moro), 넵툰의 분수(Fontana del Nettuno), 4대강 분수(Fontana dei Quattro Fiumi, Fountain of the Four Rivers)가 있다. 3개의 분수 중에서 가장 유명한 분수는 4대강 분수이다. 베르니니에 의해 제작된 이 분수는 4대륙에 있는 대표적인 강을 테마로 4명의 조각상은 각 대륙의 강을 상징한다.
유명한 로마의 아이스크림과 아이스커피를 파는 곳이 나보나 광장에 있다. 유럽에선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게 쉽지 않지만, 여긴 관광지여서 커피 메뉴에 아메리카노(Caffè americano)도 있고 냉커피(Caffè freddo)도 있다.
평소 자리조차 잡기 힘든 곳인데, 맨 앞의 명당자리를 독차지한 데다가 광장엔 사람도 없어서 4대강 분수를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행운까지 누렸다. 하루의 피로를 풀기에 최고였다.
로마엔 관광지와 더불어 집시들도 참 많았었다. 고대 로마인 복장을 하고 서 있는 사람도 있었고, 조각상처럼 분장하고 서 있는 사람, 악기 연주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들을 조심해야 한다. 함부로 같이 사진을 찍거나 몰래 찍었다가는 돈 달라고 끝까지 쫓아오는 경우가 생긴다. 첫 번째 로마 왔을 때, 집시 악단이 우리에게 와서 연주를 해줬다. 난 그들이 버스킹(거리공연)을 하는 건 줄 알았는데, 함께 사진을 찍고 나니 10유로를 달라고 했다. 우리를 에워싸고는 보내줄 기미가 없었다. 순간 무서웠던 추억이 있다.
코로나 이후 관광객이 없었고, 관광객이 없으니 집시나 거지, 소매치기도 없었다. 로마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이들은 로마 정부에도 큰 골칫거리였고 단속의 대상이었는데, 이번엔 어딜 가도 볼 수가 없었다. 그들도 최대 불황을 겪어야 했겠지만, 우린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