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 가얏고 Mar 13. 2022

콩나물 먹은 지가 얼마나 됐더라?

독일 콩은 왜 나물이 되지 못할까?


향수병이 울컥하고 올라올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현대사 첫 강의가 온라인으로 있는 날이라 토요일이지만, 일찍 일어났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콩나물국 냄새가 났다. 마늘 맛과 더불어 고춧가루를 풀어서 칼칼한 맛이 날 거 같은, 스치고 지나간 냄새였지만 맛까지 느껴지는 구체적인 냄새였다.


‘누가 콩나물국을 끓이는 건가?’


우리 집인가? 옆집인가? 콩나물국 끓여주던 엄마 생각까지. 순간 내가 콩나물이 귀한 뮌헨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집엔 나 말고 요리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콩나물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이곳에서 어떻게 콩나물국 냄새가 났을까? 어젯밤에 뭘 먹었더라? 어떤 음식 냄새가 밤새 갇혀 있다가 새벽에 이런 칼칼한 콩나물국을 떠오르게 했을까?


아삭아삭한 식감이 좋아서 콩나물을 참 좋아했다. 조림, 무침, 요리법에 상관없이 다 좋지만, 지금은 칼칼한 콩나물국이 먹고 싶다. 7살 때 뜨거운 콩나물국에 허벅지를 덴 적이 있다. 쳐다보기도 싫을 수 있을 텐데, 병원 치료 덕에 흉터가 없어서인지 콩나물국이 여전히 좋다.


계란 노른자가 들어간 전주 콩나물국밥도 생각난다. 2019년 여름에 전주 가서 먹었는데 그게 마지막으로 먹은 건가?  


간장 넣고 볶은 경상도식 콩나물 볶음과 멸치 넣고 조린 것도 색달라서 좋아했다. 콩나물 잔뜩 넣고 만든 콩나물찜도 생각난다. 이건 좀 사치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어렸을 때도 매운 아귀찜을 콩나물 때문에 좋아했었다. 이번엔 그것도 못 먹었네.


콩나물 잡채, 콩나물 들어간 쫄면 등등. 각종 콩나물 요리가 줄줄이 사탕처럼 연결돼서 떠오르더니 향수병이 울컥하고 올라온다.


상상 속에서 각종 콩나물 요리를 다 먹었네. 혼자 콩나물 잔치를 벌였으니 난 이제 배가 부른 거야? 아니면 더 고파진 거야?  살 수만 있다면 당장 사 와서 만들어 먹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이렇게 좋아하는데, 못 먹은 지 꽤 된다.  숙주나물이 흔한 싱가포르에서도 콩나물은 귀했다. 한국에서만 먹는 건가?  한국 떠난 20여 년 동안 '가뭄에 콩 나듯' 먹어서인지 얼마나 좋아하는지조차 잊고 있었다. 잊어버린 첫사랑이 피어오르듯 다시 생각나는 나의 콩나물 사랑!



콩나물 키우기에 다시 도전해볼까?!


안 해본 건 아니다. 다 실패했다. 콩나물 키우는 게 쉽지 않았다. 싱가포르에선 더운 날씨 때문에 물이 썩기 일쑤였다. 뮌헨에서는 콩나물시루 대용으로 쓸만한 마땅한 그릇이 없어서 계속 실패했었다.


인터넷에 나온 내용을 보고 생수병에 구멍을 내서 사용하기도 했었고 플라스틱 통에 구멍을 내서 사용한 적도 있었는데 다 실패했었다. 콩나물은 어두운 곳에서 키워야 해서 싱크대 밑에 넣어두면 좋다고 했다.  


싱크대 밑에 넣어두니 자꾸 잊어버리게 되고 물을 자주 못 갈아주니 금방 썩었다. 집에서 콩나물 키우기를 포기했다가 얼마 전에 다시 도전했었다. 키우는 방법을 동영상으로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뮌헨은 싱가포르와 달리 숙주나물도 귀하다는 것도 동기부여가 되었다.  


집에 망가진 샐러드 탈수기를 콩나물시루로 사용하기로 했다. 싱크대 밑에보다 지하실( Keller)을 이용하기로 했다. 어둡고 선선해서 키우기에 최적이었다. 물은 석회를 걸러낸 정수한 물을 줬다.  


숙주는 가늘긴 했지만, 쑥쑥 잘 자랐다. 농작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콩은 계속 실패했다. 발아될 조짐조차 보이질 않고 그냥 썩어버렸다.


숙주나물 키울 때 고추도 키워보려고 직접 씨앗을 채취해서 심었었다. 그걸 SNS에 포스팅을 했었는데, 어느 지인께서 요즘은 고추씨를 유전자 조작하기 때문에 먹는 거엔 지장이 없지만 자라지 않는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베를린 사는 지인은 숙주가 자란 사진을 보고 자긴 계속 실패했는데 ‘그게 자라던가요?’ 하며 신기해하던 게 생각났다.

매일매일 쑥쑥 자라는 숙주나물


싱가포르에서 가져온 녹두는 숙주나물로 잘 자랐는데, 콩은 독일에서 샀기 때문에 안 자라는 건가? 독일 콩도 유전자 조작을 한 건가?


유기농 콩은 성공할 줄 알았는데 역시 실패였다. 유기농은 유전자 조작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아시아 마트에서 사 온 콩도 독일산이었는지 실패했다. 정말 유전자 조작을 한 걸까?


아시는 분 답변 좀^^


결국 콩 때문에 콩나물 키우기는 포기했다. 이번에 한국에서 콩을 사 왔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을 못 했다. 다음에 한국 가면 콩을 사 와야겠다.



난 왜 이리도 먹는 거에 약한 건지. ( https://brunch.co.kr/@jinseon/50)

한국 다녀온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콩나물에 울컥해졌다!

아~~~ 한국 가고 싶어라~~~!!




이전 12화 아픈 팔의 수난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