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way to Frankfurt now.
오늘은 뮌헨에서 ICE(기차)를 타기도 전에 기차가 연착됐다. 처음에는 20분 연착이라고 했다. 기차시간이 다가와도 기차가 안 오고 도착시간이 지나서야 5분이 더 늦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점점 5분씩 늘어나더니 결국 50분이나 늦었다. 처음부터 1시간 늦는다고 했더라면 덜 힘들었을까?
기차시간을 놓칠까 봐 일찍 가있는 바람에 한 시간도 넘게 플랫폼에서 서서 기다렸다. 지난 1월에도 프랑크푸르트를 갈 때 1시간이나 연착됐던 적이 있다.
그땐 기차 안에서 기다렸기에 크게 힘들진 않았었다. 이번엔 기차가 아예 오지를 않아서 밖에서 기다렸더니 다리도 아프고 너무 추웠다. 봄이긴 하지만 여전히 새벽공기는 찼다. 밖에서 기다리긴 처음이다. 차 안에서 마시려고 포장해 온 따뜻한 커피잔 덕분에 손은 따뜻했지만 커피는 다 식어버렸다.
사람들이 가끔씩 물어봤다.
‘독일 좋아요? 싱가포르랑 독일 중에 어디가 더 좋아요?’ 얼마 전까지는 독일이 더 좋다고 했었다. ‘독일은 불편한데 좋아요^^ 참 희한하죠?’ 그게 내 대답이었다.
독일이 좋다기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내가 속해 있는 환경이 좋은 걸 수도 있다. 어쨌든 난 당장엔 독일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좀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마음이 좀 바뀌었다.
남편이 출장 중이라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Tram과 U-Bahn) 중앙역(Hauptbahnhof)까지 왔다. 독일은 전철도 믿을 수가 없다. 기차 연착은 다반사이고 기차역까지 가는 동안 지하철이 시간 맞춰 잘 도착할까도 불안했다. 멀쩡하게 잘 갔던 길이 돌아올 땐 폐쇄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어젯밤 자기 전에 체크해 보니 다음 주 월요일부터 전국적으로 모든 대중교통이 파업을 한다는 안내문이 있었다.(U-Bahn, S-Bahn, 버스, Tram)
난 일요일에 뮌헨으로 돌아오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잠을 청했다.
살짝 선잠이 들었을 때 전화가 왔다. 워싱턴 DC로 출장 간 남편이었다. 일요일에 뮌헨으로 돌아오는 일정인데, 루프탄자 항공이 파업을 해서 월요일에나 올 수 있다고 한다.(결국 파업 때문에 화요일에 돌아왔다) 그래서 나를 역에서 픽업해 줄 수가 없다고 한다.
또 파업이야?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파업이 없어서 좋았구먼. 선잠 들었다가 깼더니 잠도 다 달아났다.
원래부터 독일에 평생 살 생각은 없었지만, 생각보다는 이곳을 빨리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택시도 비싸고 그 비싼 택시조차도 콜(예약)을 하거나 택시 정류장으로 가야만 탈 수 있다. 아무리 연금제도 좋고 복지혜택이 좋을지는 몰라도 나이 들면 돌아다니기 편해야 하는 거 아닌가?
독일이 아니라면 어디가 좋을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만큼이나 공기 좋고 치안 좋고 여행 가기 좋은 곳이 또 없다. 여긴 이래서 안 되고 저긴 저래서 안되고….. 잠이 안 오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눈을 붙이고 일어나서 기차역까지는 무사히 왔는데, 기차가 50분이나 연착된 거다.
드디어 기차가 왔다. 자리에 가서 여행 가방 안에 들어있는 소지품 몇 가지를 꺼내고 선반에 올릴 생각이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짐 올리는 걸 도와줄까 하고 누가 물어본다. 옆자리도 아니고 사선으로 앞자리에 앉은 분인데, 마치 보그 잡지에서 툭 튀어나온 모델 같았다. 멋지신 분이 친절하기까지!!!
눈이 마주친 것도 아녔고 등을 돌리고 있었는데, 먼저 일어나서 도와주겠다고 하신 거다. 처음에는 가방 속에 소지품을 꺼내야 하기에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몇 가지 소지품을 꺼낸 후 짐을 선반에 올리려고 하니 살짝 무거웠다. 게다가 내가 그분의 선의를 거절하니 살짝 무안해하시는 거 같아서 도와달라고 부탁드렸다.
자리에 앉으니 드디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비가 내리긴 했지만, 창밖의 아름다운 독일은 전원 풍경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당장이라도 독일을 떠나고 싶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 아름다운 시골풍경과 친절함이 다시 내 발목을 잡는구나. 여기서 좀만 더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