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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Mar 22. 2022

엄마의 춤바람


엄마가 말을 하면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하게 된다. ‘학을 뗀다’라는 표현을 처음 들었을 때 이거다 싶었다. 나는 엄마의 직설화법에 학을 뗐다. 종종 엄마의 말에 웃게 될 때가 있었다. 빙그레 짓게 되는 웃음이 아니고 푹! 하고 웃게 되었다. 밥을 먹다가 캑! 하고 웃게 되었다.


그날은 샤브샤브를 먹었다. 당시 남자친구, 지금의 남편을 엄마에게 처음 소개해 주는 자리였다. 나랑 오빠, 그리고 친언니. 우리 셋은 이미 한편이었고, 엄마를 설득시키기 위한 자리였다. 남편과 나는 동성동본이라 어른들이 결혼을 반대했다. 긴장한 남편이 화장실에 간 사이 엄마는 말했다.


"예의 바르고 인상도 좋고 뭐 괜찮은게. 겐디 춤춘덴 허지 않아시냐? 춤추는 사람 못쓴다게"

(통역: 예의 바르고 인상도 좋고 괜찮네. 그런데 춤춘다고 하지 않았니? 춤추는 사람은 안된다)


나는 샤브샤브 칼국수를 먹다가 웃음이 터져서 면발이 콧구멍으로 나올 뻔했다. 엄마가 남편의 취미생활인 스윙 댄스를 문제 삼은 것이다.


엄마가 춤바람이 난건 내가 초등학생일 때쯤이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치마를 입기 시작했고, 살색 스타킹을 신기 시작했다.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스타킹이 내려오지 않게 하려고 10원짜리 동전을 스타킹 끝에 돌돌 말아 신었다. 화장까지 예쁘게 하면 엄마는 아줌마 중에 외모 상위 10%였다. 그렇게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춤을 배우러 다녔다.


어느 날 엄마와 아빠가 크게 싸웠다. 싸움이 크다 작다의 기준은 물건을 던지느냐 안 던지냐이다. 크게 싸우는 날은 물건을 던졌다. 그날 아빠는 집에 있는 물건을 모두 집어 던졌다. 아빠는 국민학교 시절에 피구선수였다고 한다. 던지는 족족 다 작살이 났다. 난 유리 조각이 무서워서 동네 어귀에 나가 있었는데 앞집 문 앞에서도 엄마·아빠 싸우는 소리가 들려서 창피했다. 동네 어른들이 나에게 제발 말을 걸지 않기를 바랬다. 말을 걸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울어 봤자 다시 저 집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그날 이후로 엄마는 치마를 입지 않았다. 바지만 입었다. 엄마가 바지를 입고 나가면 나는 마음이 놓였다.


원투 쓰리앤포 원투 쓰리앤포 도무지 상상되지를 않는다.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 봐도 자가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 엄마가 생닭을 탁탁 자르거나 10킬로짜리 귤 상자를 척척 나르는 모습만 나에게 익숙했다. 나는 어쩌면 엄마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자주 이모와 통화했다. 두 살 어린 유일한 자매와 자주 통화 했다. 소파 옆에 쭈그려 앉아 거실 전화기를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이모와 통화를 시작하면 나는 거실 책장에서 책을 하나 들고 멀찍이 앉았다. 그렇게 책을 읽는 척하면서 이야기를 엿들었다. 엄마는 우리에게 하지 않는 말을 이모에게는 모두 했다. 엄마는 그냥 나도 숨 좀 쉬고 싶었다고 했다. 자기도 매일 술 마시러 다니니까 나도 이제 취미생활을 하나 하고 싶었다고 했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29살에 결혼한 나는 세 살 터울의 아들을 둘 낳았다. 육아가 버겁고 힘들 때면 나는 책을 읽었다. 책 속에 남자 주인공과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책 속에서 아주 먼 곳으로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여행을 떠나버리기도 했다.


그럴때면 나는 자주 나의 엄마, 정자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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