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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Aug 23. 2023

내 글이 별로라는 악플을 읽은 날  

불행한 사람 중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거야

아침 4시 50분에 알람을 듣고 일어났다. 자기 계발서에서 어떤 행동이든 100일 정도만 이어가면 몸에 습관이 되어서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움직인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한 건 벌써 3년이 넘어가는데 그것 참 이상하지. 오늘 아침도 알람소리를 듣고는 “조금 더 잘까?” 고민한다. 알람을 꺼버린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이런 고민을 하다가 깜빡 눈이 감겼는데 다시 한번 4시 55분 알람이 울린다. (5분 뒤에 알람 하나를 더 설정해 둔 어제의 나를 칭찬한다. 역시 나는 나를 잘 안다.)     


몸을 질질 끌며 일으켜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마신다. 조금 잠이 깨고 나면 그래도 이 시간에 일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두 아이도 자고 있고, 남편도 자고 있고, 집안일도 잠들어 있는 이 시간이 내가 유일하게 이 집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이다.      


“자 이제 이 귀한 아침 시간을 알차게 채워나가 볼까.”     


사람이 가장 의욕적이 여지는 새해 1월 1일. 불타는 열정을 녹여내서 만들어낸 나만의 모닝 루틴이 있긴 하지만, 루틴을 모두 다 지키는 날은 1월 1일부터 오늘 8월 23일까지 딱 4번 있었던 것 같다. 급하게 처리해야 될 일이 있어서 네이버 메일에 들어가서 후다다다닥 문서를 보내고, 이제 모닝 루틴을 시작해 보려 한다. 어이쿠, 네이버 초록 검색창만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하겠다.      


'<우리 가족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검색 클릭'


밤사이 올라온 새로운 서평은 없나, 눈을 뜨자마자 에고를 서치 해본다. 도서 한줄평에 반가운 새 글이 올라와 클릭.


 “친구가 강추해서 읽어봤는데, 저는 별로. 사실 저도 부모님이 이 정도는 섭섭한 일이 있거든요, 근데 이렇게 까지 화낼 일인지.”     


“네 독자님 우선 책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가 다른 방법으로 책을 받아들일 수 있지요.”라고 마음속으로 대댓글을 달아본다. 난 괜찮다. 정말 괜찮다. 모두가 다른 방법으로 책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정말 진심이다. 진짜 진심이다. 그런데 왜일까 아침부터 맥주가 마시고 싶다.      


책을 두어 장 읽으면 첫째 아이가 잠에서 깬다. 익숙한 듯 내가 앉아있는 거실 소파에 같이 눕는다.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중학교 운동장에서 트랙을 달리고 있는 아빠를 확인하는 게 첫째 아이의 하루 시작 루틴이다. 그러고는 책장에서 만화책을 가져와 읽는다.  

    

“하준이도 책 읽으려고? 재미있어?”     

아이가 내심 기특해서 말을 거니 아이가 대답한다.      


“아~ 엄마 책 읽고 있을 때 말 걸면 기분 안 좋아 보여서 나도 그냥 읽는 거야.”     


“(뜨끔) 하하 하하하 아아 아니야. 하하”     


둘째 아이까지 일어나면 간단한 아침을 준비한다. 어제 집 앞 빵집에서 사 온 빵을 우유와 함께 내어준다. 땀범벅이 되어 헉헉 거리는 남편이 “하준이 민준이 깨났어~”하고 들어온다. 씻고 옷을 갈아입은 남편이 가장 먼저 출근하고, 8시 20분이 되면 초등학생 첫째 아이가 가방을 메고 등교한다.     


“다녀오겠습니다.”     

올해 초에 제주도로 이사 오면서 이래저래 걱정이 많았는데, 오늘 점심시간에 친구랑 같이 종이접기를 하기로 했다면서 종이를 한 움큼 챙겨가는 아이를 보면 안도감이 든다. 둘째 아이는 아직 엄마손이 필요하다. 씻기고 옷을 챙겨주고, 준비물을 챙기고, 9시 12분까지 아파트 정문에서 노란 버스를 태워 보낸다.  

    

아이들과 남편을 모두 보내고 나면 제일 먼저 글을 쓴다. 매일 오전 A4 두장정도의 글을 쓴다. 어떤 날은 꽤 괜찮은 글이 나오기도 하고, 오늘처럼 다 쓰고 나서 바로 지워버리고 싶은 글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은 한 시간 운동하기. 우리 동네 멋진 산책길을 한 시간 정도 걷는다. 가장 중요한 글쓰기와 운동을 마치고 나면 나머지 하루 일과는 설렁설렁 보낸다. 빨래를 돌리고, 바닥을 한번 쓸고, 나무 화분들에 차례대로 물을 준다. 아이들이 있을 때 물을 주면 “엄마 엄마 나도 해볼래.”라면서 나무들이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물을 마셔야 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없을 때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밥을 먹는다. 어제저녁 만들어 둔 된장국이랑, 어제 먹다 남은 불고기 조금이랑 꺼내서 밥을 먹으면 어느새 초등학교 1학년 첫째 아들이 돌아올 시간이다. 거실 책상에 앉아 끄적끄적 숙제를 도와주고 나면 둘째의 하원시간. 노란 버스창문에 아이가 웃고 있다. 오늘 유치원 만들기 시간에 만든 노란색 종이 왕관을 쓰고 내린다.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시들어가는 당근 하나, 베란다에 방치 중인 양파, 애호박 반쪽 그리고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돼지고기가 보여서 카레를 만든다. 남편이 돌아오고 함께 앉아 저녁을 먹는다.  씻기 싫다는 둘째 아이를 달래 씻긴다. 남편이 아이들을 씻기는 사이 나는 설거지를 한다. 아직 머리를 덜 말린 아이들이 거실식탁에 앉아 아빠와 보드게임을 하고 있고 나는 냉장고에 둔 멜론을 썰어 온다. 문득 그냥 생각이 나서 양가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본다. 별일 없다고 한다.    

  

이불을 펴고 눕는다. 더위가 한풀 꺾였는지 선풍기만 틀어도 그럭저럭 괜찮다. 잠들기 전에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나씩 해준다. 즉석에서 지어내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도 아이들은 뭐가 좋은지 깔깔 웃는다. 오늘의 이야기는 용감한 두 형제가 바닷속 괴물을 무찌르러 가는 이야기.      


선풍기 바람이 솔솔.

잠이 솔솔 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다.


적당히 부지런했고, 적당히 게으름을 피웠다.

어느 정도는 속상했고, 또 어느 정도 웃었다.

엄청나게 기쁜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무척이나 슬픈 일이 있지도 않았고,

가족 중에 아픈 사람도 없고 

그냥 이렇게 지나가는 하루다     


아마 이렇게 글로 기록해두지 않았다면 오늘 하루는

영원히 기억되지 않을 날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늘 이 평범한 하루에

완벽한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더 많이, 더 오래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조각난 행복들을 긁어모아 나는 지금의 커다란 행복을 일구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의 행복을 이렇게 나누다 보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잠깐 깜빡하고 있던 작고 소중한 나의 행복'을 기억해 낼 수 있지 않을까_



세 번째 작은 행복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그저 그런 하루  



제10회 브런치 대상 당선작  

<우리 가족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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