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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Sep 06. 2023

4인가족 원룸살이

불행한 사람 중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거야 Ep.5


“길어봤자 이주 정도 살 건데 그냥 애들 학교랑 유치원 가깝고 싼데 예약하자.”


한 달 전에 이렇게 나불거린 내 입주둥아리를 꿰매고 싶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 일정이 조금 어그러지면서 집이 빌 때까지 지낼 곳이 필요했다. 서울에서 조금 더 있다가 제주 집이 비워지면 오는 방법도 있었지만, 첫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둘째 아이의 유치원 입학식을 맞춰서 3월 초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택시를 타고,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택시를 타고, 다시 탁송한 우리 자동차를 찾아 타고 한 달 동안 지낼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5살짜리 둘째가 오열했다.


“으앙. 엄마 무서워..”


분명 사진으로 봤을 때는 이러지 않았다. 훨씬 넓어 보였고, 훨씬 깔끔해 보였는데. 이상하다. 거실 겸 주방과 방을 나누는 반투명의 문이 하나 있는 투룸을 가장한 원룸이다. 우는 둘째 아이에게 사탕을 쥐여주고 인터넷을 연결해 홈페이지 예약 때 봤던 사진을 다시 꺼내본다.


“오빠! 사진이 이렇게 나오려면, 집주인님이 아마 여기, 집 모서리에서 바닥에 옆 드려서 하늘을 향해 사선으로 사진을 찍은 것 같아. 이렇게, 바로 이 자세로 말이야”


엉덩이를 내밀고 바닥에 납작 몸을 숙여 이 집을 다시 한번 보니, 집주인님이 적어도 사기를 친 건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해졌다. 아담한 주방도 사진 그대 로고, 조금은 산만한 사선 무늬가 있는 연두색 벽지도 사진 그대 로고, 작은 나무 침대와, 하얀 침구류도 사진에서 봤던 그대로인데 왜 깔끔해 보이지 않을까? 하고 사진과 실제의 집을 여러 번 번갈아 보다가 알아냈다.


냄새 때문이었다. 싱크대에서 아주 은은하게 올라오는 하수구 냄새와, 안방 한쪽 벽면과 천장을 구석을 뒤덮은 곰팡이 자국에서 나는 냄새 때문이었다. 침대를 살짝 밀어보니 창문 쪽 한쪽 면이 곰팡이가 가득했다.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게 있는데, 나는 성격이 유순하다. 싸우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다만 공격성이 제로에 가까운 남편과 살다 보니 점점 쌈닭이 되어갈 뿐이다.



꼬끼오 꼬꼬꼬!!!!!!!!!!!!!!!!!!!!



“여보, 여기 집주인 전화번호 줘봐.”


“사장님. 614호 오늘부터 거주하는 단기 거주자인데요. 곰팡이가 너무 심하네요.”


사장님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제주도의 모든 집은 ‘원래’ 곰팡이 천지라고, 한 달 살이 하실 거면 어 가든 곰팡이는 각오하셔야 한다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사장님 저희 한 달 살이가 아니고, 이사 일정 때문에 잠깐 사는 제주도민이에요."


목소리가 한풀 꺾인 사장님과 몇 차례도 옥신각신 말이 이어졌고, 결국은 백번 양보해서 내가 청소할 테니 청소비를 받는 선에서 정리가 되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이사할 집의 이전 거주자가 빠지고, 도배장판, 자잘한 인테리어 공사, 입주청소까지 일정을 잡다 보니 여기서 한 달 넘게 살게 되었다. 나 자신도 모르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재미있다. 내가 이렇게나 잔소리가 많은 사람인 줄 몰랐다.


“얘들아 가만히 좀 앉아있자. 정신 사납다.”

“여보 수건은 두 번 써서 빨자. 건조기가 없잖아.”


아이들에게 뭘 먹고 싶냐고 내가 먼저 물어놓고선 고등어는 냄새 때문에 안돼, 삼겹살은 기름 튀어서 안돼. 결국은 그저께 한 솥 끓어둔 카레를 내밀면 아이들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이 집이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여기에 살면서 진정한 해방이란 무엇인지. 나는 배웠다. 안방 창문을 열면 바로 맞은편 1층에 ‘해방’이라는 술집이 있다.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회사에서 해방되어 나온 남자들과, 이 고통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해방되어 달콤한 세상에 들어간 남녀도 술이 잔뜩 취해서 나오곤 한다. 어제 아침에는 두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와 유치원을 차례로 데려다주는 길이었는데, 어젯밤 해방된 아저씨가 아직도 해방돼서 해방 술집 앞에 누워서 자고 계셨다. 5살 둘째는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어? 아저씨 일어나세요. 유치원 들어가면 5살부터는 낮잠 안 자는 건데.”


잠자는 아저씨를 마저 자장자장 재우고 유치원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노란 간판의 컴포즈 커피가 있다. 이른 아침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해서 나가는 사람들이 북적이는데, 요즘 한글 읽기에 재미를 붙인 첫째 아이는 “컴포즈 커피. 푸짐하게! 든든하게! 신선하게!”라는 문구를 꼭 큰소리로 읽으며 그곳을 지나간다. 5살 둘째도 꼭 한마디 거두는데 매일매일 멘트가 다르다. 오늘의 멘트는 이랬다


“용감하게! 씩씩하게! 똥 싸게!”


룰루~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아침에 알람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5시 정각이면 1층 클린하우스에 청소차가 도착한다. 윙~~~~ 기계음과 플라스틱이 촤르르르르 쏟아지는 소리, 삑삑삑 청소차가 후진하는 소리가 날 때쯤이면 눈이 떠지는데, 가끔은 너무 피곤해서 일어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런 날도 5실 15분경 청소 아저씨의 찰진 욕에는 번쩍 눈이 떠지고 만다.


“어떤 놈이 분리수거를 이따위로!!!!!!!!!!!!!!!!!!!!!!!!!!!!!!!!”


굿모닝이다.


 위층에는 아이유를 좋아하는 아저씨가 혼자 사신다. 왜 혼자 산다고 결론은 내었냐 하면, 새벽 6시에 큰소리로 음악을 틀고 목욕하는 건 아이가 있는 집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요~~~~~~오빠가~~~~~~~좋은 걸~~~~~~~~~~어떻게~~~" 아이유의 좋은 날을 들으며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한다. 오늘 아침 선곡은 특히 마음에 들었는데, 제목이 생각 안 나서 한참 애가 타다가 네이버 음악 검색으로 찾아냈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낼께여오오오오오" 아이유의 밤 편지다.


근처 마트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고구마를 사 왔다가, 아차! 오븐이 없구나. 알게 되었다. 가지고 온 냄비 중에서 가장 큰 냄비는 고작 고구마 세 개가 겨우 들어갔기 때문에 한 시간에 걸쳐 두 차례 고구마를 삶고 나니, 우리 집은 세상에서 가장 아담한 한증막이 되었다. 료칸을 즐기고 싶으신 분들 멀리 일본 가지 마시고 저희 집으로 오세요.


내일이면 이사 간다. 이사 갈 갈 집은 첫째가 다니는 학교와 가깝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아파트 단지 작은 공원에 난데없이 세워져 있는 작은 돌덩이다. 거기에는 파란 글씨로 이렇게 쓰여있다.


“끊임없이 도전하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마치 성경 혹은 팔만대장경의 한 구절을 새겨 넣은 것 같은 위엄에 마음 한구석이 웅장해진다. 꿈을 향해 오늘도 이렇게 달려간다.







조각난 행복들을 긁어모아 나는 지금의 커다란 행복을 일구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의 행복을 이렇게 나누다 보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잠깐 깜빡하고 있던 작고 소중한 나의 행복'을 기억해 낼 수 있지 않을까_



다섯 번째 작은 행복

home, my sweet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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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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