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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Aug 09. 2023

왜 사이비는 꼭 나에게 말을 걸까?

불행한 사람 중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거야 ep.1

 내 인생의 난제 중 하나는 “왜 사이비는 꼭 나에게 말을 걸까?”이다. 한 번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그들은 보통 남과 여가 한 쌍이 되어서 길을 걷는다.  단체에서 복장 가이드라인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대체로 분위기가 비슷하다. 여자는 머리를 하나로 묶고, 조금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고, 남자는 꼭 옆가방을 멘다. 결코 연인으로는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 48센티미터 정도 서로 거리를 두고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걸어온다.


 “제발 그냥 지나가라, 제발 좀...”


아무리 주문을 외워봐도 그들의 레이더망에 언제나 걸려든다.     


“잠시 말씀 좀 묻겠습니다.”     


영혼이 맑다면서 칭찬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제사를 지내서 조상의 한을 좀 풀어야 한다고 반 협박으로 훅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도를 아시나요?" 두괄식으로 묻는 분은 신사다. 무슨 성격 검사를 무료로 해주겠다고 센터로 가자며 팔을 잡힌 적도 있었다.   


아, 내가 표적이 되는 이유에 관해

한 가지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기는 한데..     


나는 언제나 땅을 보면서 걷는다.  백 원짜리 동전을 줍는 일은 예삿일이다. 지갑을 줍는 일도 몇 번이나 있었다. 언뜻 봐도 오만 원짜리가 몇 장이나 삐져나와있는 뚱뚱한 아저씨 지갑을 경찰서에 가져다준 적도 있고, 비를 잔뜩 맞고 우는 표정을 하고 있는 주민등록증을 빨간 우체통에 들여놓은 일도 두 번있었다.    

  

그냥 지나치면서 마음이 조금은 안타까울 때도 있다. 손바닥만 한 분홍색 아이의 신발 한 짝이나, 가죽장갑 한 짝, 아직 반쯤은 들어있는 담뱃갑, 놀이터 바닥에서 비를 맞고 있는 초등학생 남자아이의 외투 등이 그렇다.     


내가 발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언제나 숙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작은 곤충을 발견했을 때다. 보도블록 사이를 아슬아슬 기어가는 콩벌레, 비 오는 어제 놀러 나왔다가 해비치는 오늘 길 잃은 지렁이, 하천이 범람하면서 물웅덩이에 갇혀버린 어린 물고기들을 보면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인다. 작고 미끌거리고 때로는 차갑고 간질간질한 작은 것들에 손을 뻗는다.      


하루는 남편과 산책길을 걷고 있었다. 첫째 아이가 고맙습니다 라는 말 대신에 ‘고마고마’라는 말을 어디서 배워와서 어감이 참 재밌다는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다. 바닥에 지렁이가 한 마리 산책길 쪽으로 기어 오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지렁이를 획하고 들어 나무 밑으로 옮겨 주었다.


남편은 날 보며 묻는다.      


“너 말이야.... 혹시.. 뱀도 손으로 잡니?”     


내가 행복은 느끼는 작은 것들에 대해서 글을 쓰자면 어쩔 수 없이 남편에 대해 써야 한다. 브런치 대상을 받고 이미 조회수가 10000을 넘은 글에서 그가 (좋게) 등장하기 때문에, 또 남편에 대해 좋은 글을 쓰면 그의 장점만 거대하게 미화되어 누군가의 상상 속에는 ‘박보검 외모에 성격까지 스윗한 제주도 남자’가 될 것 같지만, 뭐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정도만 말해둔다. 게다가 우리의 결혼생활이 션과 혜영처럼 큰소리 한번 안 난다고 오해할까 싶기도 하다. 우리는 결혼 7년 차이고 아직도 싸운다. 어제저녁 맥주를 마시고 카스 맥주캔을 치웠네 안 치웠네, 난 치웠고 니가 마신게 곰표아니냐네 뭐냐네, 그럼 땅콩껍질은 치웠네 안치웠네, 난 땅콩을 한알밖에 안먹었네. (휴) 지겹게 투닥거린다. 하지만 그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남편은 퇴근하고 들어오면 언제나 넥타이를 풀면서 묻는다     


“오늘 무슨 일 없었어?”     


오늘 무슨 일 없었냐며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있다. 오늘 아침까지도 투닥거렸지만, 그래도 결국은 각자의 하루를 보내고 같은 집에 들어와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남편이 아이들을 씻기는 동안 나는 설거지를 한다. 결혼을 하고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게 되었다.  수직이동은 아니지만, 수평이동을 했달까.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나는 땡볕아래 지렁이를 보면 가만히 멈춰 서서 허리를 숙이게 된다. 지렁이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지 파악하지 못하겠지만, 등허리가 타들어가는 땡볕에서 갑자기 시원한 흙더미 속에 휙 하고 떨어졌을 것이다. 내가 결혼을 통해서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되었듯이.      


나에게 다정히 말을 걸던 사이비를 한 번이라도 따라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쯤 나도 길거리에서 머리를 하나로 묶고, 어두운 옷을 입고 “혹시 말씀 좀 묻겠습니다.”하고 말을 걸고 있을까? 아니면 작고 어두운 골방에서 연꽃잎을 접고 있지는 않을까. 어쨌든 그들을 따라갔으면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산책길을 아슬아슬 기어가던 지렁이가 난데없이 뜨거운 땡볕아래 뚝하니 떨어진 상상을 한다.     


내가 쓴 글에 달린 악플이 머릿속에 뱅뱅 돌아가는 날

다섯 살짜리 아이가 유독 말을 안 듣는 날

우리 동네 골목에서 환상적인 짬뽕집을 발견한 날

엄마랑 전화로 싸운 날

아무런 이유 없이 기분이 좋은 날

몸살기운이 있어서 컨디션이 엉망인 날     

같이 글을 써보자는 제안을 받은 날


그런 날 나에게는 ‘오늘 무슨 일 없었어"라고 묻는 남편이 있다.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기억해 뒀다가 말해줄 사람이 있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기억해 뒀다가  쏟아낼 사람이 있다. 그는 넥타이를 풀며 나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조각난 행복들을 긁어모아 나는 지금의 커다란 행복을 일구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의 행복을 이렇게 나누다 보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잠깐 깜빡하고 있던 작고 소중한 나의 행복'을 기억해 낼 수 있지 않을까_


첫 번째 작은 행복

“오늘 무슨 일 없었어?”라고 묻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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