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가

by Letter B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했다.


무기라곤 없었다.

다양한 컬러의 티 - 셔츠와 휴대 전화를 켜면 금새 확인할 수 있는 조잡한 제스쳐와 고고한 에티튜드 그것이 전부 였다. 그 누더기같은 몰골로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들며 거리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벗고 더할나위 없이 환하게 웃는 그들이 나는 가끔 밉다.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고 본다.

세차게 강풍이 치면 세어드는 비를 막기 위해 창문을 막는 것처럼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행동이 어쩌면 일부 환경으로부터 환심을 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왜...?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제 아무리 구하기 어려운 키 -코드도 몇 번의 몸놀림이면 충분하다.

그들은 주로 사냥이라는 표현을 쓴다. 대꾸할 필요성이야 느끼지 못하지만 그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수를 두고 저리 분주한 모습을 지켜볼 때면 낯빛 부끄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잡식성이 아니면 도저히 살아남기 어려운 형국일 터인데, 몸을 낮추고 숨을 죽이는 모습을 볼 때면 부러 큰 소리를 내어 몰아제끼지 않고서야 견디기 어려운 기세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휘두르는 몰골이란.


얼마 전 신기술이 개발됐다. 그들에게 신기술을 맡겨선 안된다.

생각해보라. 인체를 통해 가스를 배출해낼 수 있는 생식기는 무엇인가. 아니 태초에 그런 발상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요건에 성립한단 말인가. 성립하지 않는다. 게다가 기술이 생물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해라도 하고 움직인단 말인가. 그들의 오합지졸한 변명이란 온통 집단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다. 공동체라는 구성 요소로서 몇 차례나 부합하다고 한들 냉혈한 눈초리로 조잡한 기능을 읊어댈 것이다.

그 파렴치한 행동이란!


아아- 그들에게 걸물(傑物)의 가치란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21세기를 맞이하여 휴머니즘을 갖춘 뒤로는 그들을 통제할 생태계 포식자란 없다.

그 현란한 움직임이 인간 본성의 감정을 익히기 위한 노력으로 둔갑하니, 분통을 삼키는 이들이 거리에 낭자하다. 뻔뻔하게 다른 종의 탈을 쓰고 거리를 활보하다니. 최근엔 활자를 익혀 사회성을 연기하는 태세가 심상치 않다. 복제된 감정을 두고 경멸의 시선을 꼿꼿이 세우는 이는 나뿐일런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바지런히 신분상승을 꽤한다. 그 흔한 식습관 하나 고치지 못하고서 말이다.


결단코 21세기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태도가 아니던가.

더듬 더듬 옮기는 걸음은 함부로 족적을 남기지 않는다.


아아..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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