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는 소설 속 옷을 입는다.
나로서야 결말이 정해져 있는 이야기에 구태여라고 선을 그어본다.
그것은 흡사 도시에 막 상경한 할머니에게 왜 촌스런 바지를 입고 다니냐와 같이 무척이나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어떤 표정으로 인사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게 된다.
이렇다 할 언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언젠가 만났었던 가요?
하나 둘 거리를 종횡한다.
나는 남아있는 페이지를 잠시나마 뒤적여 본다.
나는 묻지 않는다.
인사를 건네는 일은 그들의 시스템을 파괴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녀들은 삶을 지탱하는 법을 알기라도 한단 말인가.
보름달이 높이 뜬 날이면 목청 높여 어릴 적에나 들었던 유행가를 읊는 이도 있다.
그런 밤은 기이하게도 모든 것이 살아있다.
이제는 흔적도 찾기 어려운 그녀를 향해 나는 아직도 묻는다.
그 날의 생존에 대해 아직 유효기간이 남아있는지 말이다.
진심을 따져 묻는 것도 난감한 정갈한 단발을 향해 말이다.
어긋나 버린 시공간 속에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머물고 있다.
나는 타자기를 두드리다 그만 이야기에 합류하지 못했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닿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사연이 얽힌 모든 이들을 힘껏 소설 속으로 밀어 넣었다.
여기가 어디인가요?
이제 글감이라곤 여겨지기 어려울 만큼 움직임은 단순하다.
나는 역시 사람에 대해 이렇게 쓰는 것이 맞느냐고 문을 두드려 본다.
가시지 않는 습지의 강한 햇살이 이제 창 너머에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 곯아빠진 괴짜의 시선으로 헤세까지 가긴 무리겠군.
쏟아지는 잠에도 개운하지 않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다 매일 입던 후줄근한 트레이닝 복을 꺼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