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시대가 바뀌어야 한다고 외쳤다.
인간이라는 생물이 진화한 과정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고, 그렇게 목청 높였다.
문화란 것이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이 습득하는 모든 능력과 습관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총체를 가리킨다고 정의하였을 때 그들의 주장에 대해 나는 납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정의된 '상식'이라는 범위에 대하여 그들은 어떻게 분류하고 있는가.
좀 더 논의해 보자면 상식이란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에 해당한다.
밤낮 안 가리고 수를 안 쓰니 그런 게 혼종이지
에이, 요즘 혼종은 다르다니까
그 원숭이 놈이 문제죠 뭐.
금방이라도 기진맥진할 듯 보이는 얼굴이 발그랗게 물든 소녀는 허공을 응시한 채 답했다.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마음을 훔치는 반인반수(半人半獸)가 현실에 존재한다 한들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들을 위한 문건을 수도 없이 작성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고양된 전문 지식에 대해 문건으로 넘어서지 않는 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의학적 신뢰도가 없는 형 이상학적 사고에 대한 맹신을 포용하려다 소녀는 하루 종일 저린 다리를 꼼지락거리며 마음을 달래야만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며 팔을 들어 보이던 소녀는 불호령처럼 떨어지는 호통에 그만 입을 다문다.
상식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여기 한 예를 들어보자. 손을 써서 먹는 것은 식습관의 한 문화에 해당한다. 그러나 손을 깨끗이 하지 않는 이상 균이 옮아 병에 걸리기 쉽다. 세간의 처방처럼 비닐장갑의 컬러가 문제인가? 그들은 모두가 손을 써야만 선진 문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녀는 이해할 수 없다고 답한다.
어째서 '모두'인가?
소녀는 원숭이를 이뻐한 것을 몹시 분통해했다.
습격한 놈들 - 그러니까 원숭이 떼를 두고 신진 문화에 갇힌 상식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하여 반드시 알려야만 했다. 게다가 그들은 우리가 21세기 정보화 시대의 산물이라는 걸 잊기라도 한 걸까? 그들은 좀 더 당연한 것들을 의심해야 한다. 문을 두드려야 한다. 그들은 선구자인 동시에 희생양이다. 그러나 그들이 채택한 이론에 반비례하는 행동으로는 도저히 생존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굴복이라는 대안만이 우리가 선택한 미래인가?
소녀는 도저히 그들이 선진 문물을 이끌어갈 미래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소설에서나 볼 법한 원숭이를 둘러메고 평생을 살아갈 순 없었다.
살아남는 놈이 몇이나 되겠어요?
순종정도 군요.
소설처럼 흩어져간 그 찬란한 반란을 소녀는 몇 번이나 곱씹었다.
더 이상 얽매여 있을 시간이 없다.
그들의 주장처럼 우리에겐 걸맞는 진화가 필요했다.
산물은 살아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