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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신과 함께 09화

원탁의 기사

by Letter B





낮은 천장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그 날 걸음을 옮기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전장에서 패배한다는 것이 그런 것일까?

예고된 것처럼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만큼은 다르다. 그 움직임에 흐뜨러짐이 없다.

걸음 모양새, 작은 몸놀림마저도 확신에 차 있었다.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는 그들이 우연을 벗 삼아 거리로 나섰을 확률을 세어 보았다.

물론 지금 막 떠오른 생각은 아닙니다만,

나는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면 두 손을 번쩍 들어 항복의 의사를 내비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정적인 누아르 -


막이 올랐다. 나는 걸음을 옮기다가는 그 정적인 움직임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 위를 뒤엎고 있는 우아한 배려는 금방이라도 몸이 어지러이 스러질 정도로 장엄하게 다가섰다.

전염병이 도시를 점령했을 무렵 '벗어나려면, 행동하라!'와 같은 국민 구호를 외면한 까닭이다.

나는 불명확하다는 사유로 영 입에 맞지 않는 캔 음료를 손에 들고 같은 걸음을 옮긴다.

나는 그러한 사유로 싸구려가 됐다.

하늘이 너무 높다.


누아르는 느릿한 일장을 이루었다. 한 치의 양보도 내어 보이지 않을 셈이다.

앞서가는 이는 냄새를 잘 맡는 졸보이다.

나는 이제는 꽤 수를 읽으면서도 빠져나갈 궁리를 하지 않는다.

일종의 반항이다. 나는 입에 대지 않은 캔을 흔들어 보인다. 알아들을 리 없다.

나는 배턴을 주고받으며 달리는 경기의 긴 레이스를 완주한 완고한 선수의 헹가래를 거부한다.


우리는 멸시당했다. 너와 같은 사상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나는 정체성이 확립된 이들의 완고함을 떠올린다.


4885는 사람을 죽였다니까요, 기억하시겠어요?


낮은 천장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무기력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패전한 이는 누구인가.

나는 정확한 진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비어있는 자리를 향해 말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노력이 가상하여 입에 맞지 않는 음료를 가까이 입술로 가져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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