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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그 아프고도 이상한 감각에 대하여

by 지언 방혜린

통증은 누구에게나 피하고 싶은, 고통스럽고 무서운 상황이지.

그런데 아프다는 건 과연 단순히 몸이 느끼는 물리적인 자극일까,

아니면 마음이 반응하는 정신적인 감각의 감정일까?


어떤 사람은 주사 한 대의 따끔함조차 두려워 못 견디고 회피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걱정하는 큰 통증도 묵묵히 견뎌내기도 한다. 그걸 보면 통증이란 게 단순히 자극의 강도만으로 설명되진 않는 것 같아. 아마도 몸과 마음이 동시에 겪는 감각일지도 몰라.


얼마 전엔 엄마의 각막이 또 찢어졌어. ‘반복각막 짓무름증’이라는 병 때문인데, 이 병은 한 번 생기면 쉽게 낫지 않고 몇 년, 아니 아마도 평생 엄마를 괴롭게 할지도 모르겠네. 한 번씩 이렇게 각막이 찢어지면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무너질 만큼 아프고 힘이 들지만 그렇다고 길게는 한 달도 넘게 걸리는 치료와 회복과정 동안 한탄만 하며 살 수는 없겠지?


각막이 찢어진 눈의 통증을 표현해 보자면 눈 안을 끊임없이 날카로운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이라고 말하면 느낌이 어떤지 설명이 될까? 눈을 뜰 수도 감을 수도 없고, 눈물이 멈추지 않고 귀까지 먹먹해지며 온몸에 소름이 돋아 숨조차 쉬기 어려워지는 느낌이야. 눈이 아프지만, 결국은 온몸이 통증에 사로잡혀 머리도, 마음도 함께 고통받는다는 생각이 들었어.


의학적으로 ‘통증(pain)’은 실제적이거나 잠재적인 조직 손상과 연관된, 불쾌한 감각적·감정적 경험(주1)이라고 해. 통증은 우리가 위험 상황을 인지하고 회피하게 도와주는 보호기제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 통증의 기억이 깊어지면, 아직 오지 않은 고통에 대한 걱정으로 삶 전체가 갉아먹히는 경우도 생기지.


엄마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단다. 예민해서 소화도 잘 안 되고, 잘 체하고, 두통 특히 편두통이 심해서 응급실을 찾는 날도 많았어. 체격도 작고, 체력도 약하고, 면역력도 떨어져서,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늘 나 스스로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약한 사람', '아픈 사람'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것 같아.


우리 몸에서 통증을 느끼지 않는 부위는 손발톱과 머리카락뿐이라고 하더라. 정말 손발톱과 머리카락을 제외하고는 온몸을 돌아가며 아팠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지긋지긋한 느낌이 들기도 해. 그래서인지 누군가 특히 가족이 "아프다"는 말만 들어도 마치 엄마가 아픈 것처럼 마음이 쓰이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던 것 같아. ‘통증’이라는 감각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엄마는 아프지 않은 순간조차 아픈 사람으로 살았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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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을까. 그 마음이 엄마에게서 끝나지 않고 너희들을 키우는 동안 더 깊어졌단다. 너희들을 키우면서도 매사에 조심하고, 혹시나 다칠까 봐, 병들까 봐, 열이 날까 봐, 밤새 뒤척이며 너희 이마를 짚어보던 시간들이 떠오른단다. 너희들은 그 누구보다도 잔병치레하나 없이 튼튼하게 잘 자라주었는데도 말이야.

매 순간 마음을 졸이며 지냈단다. 마치 통증 민감증환자처럼, 늘 노심초사했어. 지금 돌아보면, 그런 걱정들이 오히려 너희에게 불필요한 불안감을 준 건 아닐까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참 이상하지. 실제로 아팠던 시간보다, ‘아플까 봐’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시간이 훨씬 많았던 것 같아.


그렇다면, 정말 아팠던 시간보다 '아플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더 무서운 걸까?

우리는 종종 현실보다 상상 속의 고통에 더 크게 짓눌리는지도 몰라.

아직 오지 않은 통증을 미리 떠올리며 불안을 키우고, 상처받을까 두려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도 하지.

육체의 고통보다, 그것을 기다리는 마음의 고통이 더 깊고 오래 지속되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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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엄마에게도, 통증이 전혀 두렵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어. 바로 너희를 낳을 때의 진통. 산통이라고 한단다. 한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출산의 고통은 “몸의 모든 뼈를 부러뜨린 채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이라고 했대. 고통지수 0에서 10 중, 9에 해당하는 극심한 고통이라고도 하더구나. 엄마도 그 말을 듣고 무서웠지만, 막상 진통이 시작되었을 땐 이상하게도 그런 두려움은 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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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0분 간격으로 진통이 왔는데, 통증이 밀려올 때는 정말 죽을 만큼 아팠다가도, 통증이 가라앉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멀쩡했지. 그때 엄마 머릿속에 계속 맴돌던 생각은 이거였어.

'이 고통은 끝이 있다는 것.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아픔이고 아기가 나오면 끝난다.'

그래서 속으로 계속 주문을 외웠지. “빨리 잘하자. 잘해서 빨리 끝내자.” 그 마음이었는지, 너희는 생각보다 무척 빨리, 세상에 나왔단다. 특히 아들은 진통 시작 30분 만에 무통주사도 없이 자연분만으로 태어났지.

신기하게도 그때의 진통은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아.

통증에 약했던 엄마가, 너희를 낳을 땐 그렇게 강해졌다는 게 믿어지니?

기대와 기쁨, 그리고 너희를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이 아픔보다 더 컸기 때문일 거야.


언젠가 암환자의 투병기를 들은적이 있어.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최고 강도의 진통제를 써도 버티기 힘든 통증이 계속된대. 피부가 갈라지고, 입안이 헐고, 뼛속까지 쑤시고, 잠조차 못 자는 날들.

그런데 그런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어떤 환자들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소리 내 웃었다고 하더구나.

“그 웃음이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환자의 얼굴엔 어쩐지 고요한 힘이 느껴졌어. 통증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 웃음이 통증을 잠시 물러나게 한 거겠지.

그 웃음 하나가 약보다 나았다는 말이지.


그 모습을 보며 엄마는 이렇게 생각했어. 통증은 단순한 물리적 자극이 아니라, 때로는 마음과 연결된 감각이라는 걸. 그렇기에 고통은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조절할 수도 있고, 스스로 다르게 받아들여 제어할 수도 있다는 걸 말이야.


사랑하는 아이야.


엄마는 오랫동안 통증을 피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단다. 이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 통증은 우리를 괴롭히지만,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존재 같아. “멈추어라”, “살펴보아라”,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하고 묻는 거야.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아프지 않고 살 수는 없단다.

그렇기에 ‘아프지 않게 사는 법’을 고민하기보다는, ‘아플 때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

때론 피할 수 없는 통증 속에서도 일상은 계속되고, 삶은 멈추지 않으니까.

통증과 함께 걸어가는 법, 두려움 속에서도 숨을 고르고 다시 일어서는 법.

그런 걸 배워가는 게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 아닐까?


다음번엔 통증의 종류에 대해서 또 통증과 함께 어떻게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줄께.


(주1) 네이버,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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