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동:動)
문득 네가 어릴 적 키우던 장수풍뎅이가 생각났어.
우유갑 안의 흙더미 속 아무리 들여다봐도 보이지 않던 유충.
움직임도 없는 그 애벌레를 엄마는 사실 죽은 줄 알았어.
움직이지 않는 생명은 살아 있는 건지 아닌지, 그걸 알 수 없었거든. 그래서 네가 학교에 가고 나면 몰래 버려야 하나 생각도 했었단다.
그리고 어느 밤, 조용하던 네 방 안이 장수풍뎅이 ‘날갯짓’ 소리로 가득 찼을 때, 그 아이는 그동안 조용히, 하지만 분명히 ‘살아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지. 그 소리가 어찌나 강렬하던지 마치 “나 여기 있어요! 살아 있어요!” 하고 외치는 것처럼 느껴졌단다. 숨겨졌던 생명이 격렬하게 존재를 알리는 순간이었지. 살아 있다는 건 그렇게, 움직이는 거야.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외치지 않아도, 생명은 가만히 있지 않아.
엄마는 네가 배 속에 있을 때 느꼈던 첫 번째 태동을 아직도 잊지 못해. 그 기억은 장수풍뎅이 소리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선명하단다. 아주 미세한 떨림으로 내 안에서 움직이던 너. 처음엔 ‘기분 탓인가?’ 했지만, 분명히 ‘움직임’이었어. 그 움직임이 계속됐고, 조금씩 강해졌고, 그게 곧 ‘네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어. 급기야는 엄마 갈비뼈 바로 밑으로 선명한 니 발자국이 찍혀서 엄마가 손바닥으로 니 발바닥을 밀어내며 너와 힘겨루기를 하기도 했단다. 그 후로도 막달동안 엄마는 너의 움직임으로 네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어.
이렇게 모든 생명은 끊임없이 움직임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단다. 꽃잎도 피기 전엔 조용히 부풀고, 나뭇잎도 떨어지기 전엔 미세하게 떨리고, 아이도 자라면서 좁은 배 속에서도 발을 뻗지.
어떤 공간에 살아있는 생명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확연히 달라. 집에 화분하나, 꽃 한 송이, 고양이 한 마리 있고 없고는 공간의 숨결을 바꾸지. 그런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이 주는 것이 바로 ‘기척’이란다. 매일 조금씩 피어나다 어느 순간 지는 꽃의 모습, 날마다 자라나는 화분의 잎의 크기, 햇빛 쪽으로 더 크게 자라 있는 아주 느린 움직임, 어제 깎아 준 것 같은데 어느새 또 북실북실 자라난 고양이 털과 날카로운 손톱.
살아있는 것들이 주는 ‘기척’은 말도 없고 소리도 없지만 작고 반복적인 변화들이 그 존재만으로도 공간을 채우며 ‘살아있다’라고 말해주지. ‘있다’고 느껴지는 미묘한 움직임이나 존재감.
생명이란 그렇게 우리의 일상 속에서 조용히 말을 걸고 있는 거야.
생명은 이렇듯 끊임없는 움직임(동:動)이란다.
한자 움직일 동자를 보면 '動자는 重(무거울 중) 자와 力(힘 력) 자가 결합한 모습이야. 重자는 보따리를 메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으로 ‘무겁다’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무거운 보따리를 맨 사람을 그린 重자에 力자가 결합한 動자는 보따리를 옮기기 위해 힘을 쓴다는 뜻을 표현한 것'(주1)이래.
생명을 유지한다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은 아니야. 그래도 우린 꿋꿋이 살아내잖니? 살아내려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애를 쓰며 움직여야만 한다니 말이야.
운동(運動) 몸이나 물체를 움직이는 일. 또는 어떤 목적을 위한 사회적 활동.
감동(感動) 어떤 일이나 말, 행동 등에 마음이 움직여 깊은 인상을 받음.
진동(振動) 떨리거나 흔들리는 움직임.
행동(行動) 생각이나 감정을 실제로 옮긴 움직임.
이동(移動) 장소나 위치를 바꿈.
활동(活動) 생기 있게 움직이거나 살아 있는 듯한 움직임. 또는 일함.
동정(動情) 남의 처지에 마음이 움직여 동정심을 느낌.
동요(動搖) 마음이나 상황이 흔들림. 또는 안정되지 않음.
동작(動作) 몸의 움직임이나 행동.
충동(衝動) 감정적으로 갑작스레 치밀어 올라 행동을 자극하는 마음.
어때? 살아있음은 생각보다 많은 움직임이지? 우리 삶의 수많은 단어에 '움직임(동)'이 들어 있어. 그럼에도 우리는 때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어”,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라고 느끼기도 해. 하지만 너는 네 안에서 매일 조금씩 움직이고 있어.
저 수많은 ‘동’들처럼 슬퍼했다가 웃고, 망설였다가 다짐하고, 흔들리면서도 결국 다시 네 자리로 돌아와 너의 존재를 확인하지. 그 모든 움직임이야말로 네가 살아 있다는 증거란다.
얼마 전에 엄마는 ‘은둔형 외톨이, 중년이 된 청년들’에 대해 조명한 충격적인 방송을 보았어.
대한민국 청년 100중 5명은 고립, 은둔 상태에 놓여있다. 마음의 빗장을 걸고 웅크린 사람들.
방안에 숨어 들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죽은 듯 살아있는 산 송장 같은 사람들. 방 안에서 나올 수 없는 이유는 다양했지만, 그들 마음속에는 공통적으로 좌절과 불안이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다. 20대에 스스로를 가둔 채 은둔생활을 20년째 하고 있는 40대 자식을 일을 하며 부양하는 70대 노모는 “내 새끼가 이렇게 될지는 생각도 못 했다. 한집에 살아도 서로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지경”이라고 말한다. 방송은 한국이 고립, 은둔에 최적화된 나라이고, 한국에 사는 중년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주2)
엄마는 저 방송을 보고 끔찍했어.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 많은 생명들이 살아 있는 척하며 조용히 죽어가고 있어. 또 죽는 듯이 살아가기도 하지. 숨을 쉬고 일상을 반복하지만, 눈빛은 텅 비고 마음은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단다. 인간의 무감각, 사회의 시스템, 그리고 무의식적 소비의 잔혹성에 숨겨져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내면은 이미 꺼져버린 촛불처럼 위태롭게 생명을 이어가는 이들이 많아. 언제 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불안한 상태로 말이지.
외로이 TV만 바라보는 노인들
꿈을 포기한 채 반복되는 일상 속 청춘들
철창 속에서 살아 있는 듯 죽어가는 동물들
학교폭력으로 마음이 꺼져버린 아이들
폭력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가정의 피해자들
질문조차 잊은 채 살아가는 도시의 사람들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생명 없는 육신 안에 갇힌 가엾은 영혼’(주3)으로 진정한 생명이나 자유를 잃고, 억눌린 채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지.
살아는 있지만, 진짜 살아있는 게 아닌 상태. 아슬아슬하게 버티다 끝내 끈을 놓아버리는 이들도 많단다.
참 안타깝고 가슴 아픈 현실이야.
생명은 어쩌면 더럽고, 불편하고, 끈질긴 것일지도 모르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고, 삶의 의미를 찾고, 나답게 살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지. 바로 그 애씀 속에 생명의 진짜 의미가 있어. 그래서 생명은 더없이 아름답고 가치 있게 되는 것이란다.
세상은 빠르게 달리고, 멈춘 것 같은 사람은 실패자처럼 여겨지기도 해.
하지만 그건 생명을 품고 사는 긴 여정의 단편일 뿐이란다.
땅속에서의 기다림, 배 속에서의 태동처럼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생명은 분명히 움직이고 있어.
그러니 조급해하지 마.
너는 지금도 살아 있고, 그 살아 있음은 곧 ‘움직이고 있음’이라는 뜻이야.
천천히, 조용히, 하지만 반드시 너만의 리듬으로 움직이고 있는 너에게,
엄마는 오늘도 온 마음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단다.
오늘 하루쯤은 조금은 흔들려도 괜찮아.
그 흔들림이 너를 살아 있게 할 테니까.
다음엔 엄마 이야기를 좀 해줄게. 우리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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