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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꽃에 스며든 단상

by 지언 방혜린

엄마는 한동안 꽃을 사지 않았다. 거의 몇 년 동안은 꽃을 사는 걸 꺼렸었어.

그 이유는 단순했어. 지는 꽃의 모습이 처연했기 때문이야.

예쁘게 피어 있다가, 며칠 지나면 고개를 떨구고 시들어버리는 그 모습이 어느 순간 왠지 슬프고 애처로워 보였거든.


처음의 화려함과 향기로움, 환하게 웃던 꽃잎이 어느새 힘없이 사그라들 때면 마음이 덜컥 무거워졌단다.

마치 누군가의 뒷모습을 배웅하는 것처럼, 꽃잎 하나, 줄기 하나 버릴 때마다 힘들고 조심스러웠어.

그래서 아무도 몰랐겠지만 엄마 혼자 한동안 꽃과 거리 두기를 했단다. 꽃과 적당한 거리두기 코로나도 아니고 웃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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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엄마는 다시 꽃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어.

몇 년 전부터 화훼농가를 돕는 프로젝트를 통해 꽃을 구입하게 되었고, 꽃다발이 집안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니 역시나 좋더구나. 꽃 한 다발 들였을 뿐인데 눈으로는 기분이 환해지고, 마음으로는 숨이 트였어.

공간은 향기로워졌고, 시간은 평화로워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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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며칠을 행복하게 보내던 중, 요즘 더위에 꽃이 빨리 시들기 시작했다.

아쉽고 허전한 마음에 시들어 가는 꽃을 버리지 못하고 매일 사진으로 그 모습을 남겼단다.

그리고 오늘 무심코 식탁 위 꽃병을 들여다보니, 고개를 푹 숙인 꽃송이 아래에 까만 점들이 수북이 떨어져 있었어. 처음엔 벌레인 줄 알았어. 하지만 그것은 꽃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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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아이들은 마지막까지도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다 내어주고 가는구나.

그저 피었다가 시드는 게 끝인 줄 알았는데, 그 안에는 다음을 위한 준비, 생명의 씨앗이 있었던 거야.’


꽃은 자신의 마지막까지도 ‘씨앗’이라는 생명의 가능성을 남기고 있었다.

아무 저항도 없이, 고요히.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단지 화려한 색이나 향기 모양 때문만은 아니라고.

꽃이 진정 아름다운 건, 자신의 일을 온전히 다 해낸 존재의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꽃은 스스로를 선택할 수 없단다.

어느 땅에 뿌리내릴지, 어떤 색으로 필지, 어떤 모양으로 피어나 어떤 향기로 공간을 가득 채울지 얼마나 오래 살지 어떤 것도 자기가 정할 수 없지. 또 어디에서 어떻게 피어나 엄마의 손에 닿았는지 조차 모를 테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해 충실히 피어나고, 잠시라도 누군가에게 기쁨과 위로와 응원과 축하를 주며, 마지막엔 다음 생명을 위해 씨앗을 남기고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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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 그 꽃의 모습은 더 이상 처연하게 다가오지 않았어. 오히려 고요하고 단단하고 숭고했어.

엄마가 지는 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 건 처음이야. 그런데 오늘 그 모습마저 예쁘단 생각이 들었어.


삶도 그와 같지 않을까.

누구도 스스로의 조건을 완벽히 선택할 수는 없지만,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을 다 피워내고,

시간을 향기롭게 만들고, 머물렀던 공간에 좋은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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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좋아하는 배우 오드리햅번도 생각났어.

외모도 물론 꽃처럼 아름다웠지만 전쟁·기아·빈곤 지역의 아동들을 위한 봉사에 헌신했던 그녀의 삶은 외모보다 더 아름다워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단다.

그래서 엄마는 햅번의 전성기 배우로서의 모습도 좋았지만 봉사를 하던 나이 든 모습은 더 잊혀지지 않는단다. 그녀의 그런 모습이 귀감이 되어 또 다른 누군가는 그녀의 뒤를 따라 향기로운 삶을 살게 될 테지.

그 또한 존재가 다른 생명에 게영향을 충분히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어. 존재로써 씨앗이 된 것이지.


나는 너희들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엄마도 물론 마찬가지고.

화려함의 순간만을 좇기보다 자신의 몫을 다한 끝에 남는 깊이와 따뜻함, 그리고 다음 생을 위한 씨앗을 품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리고 니들이 충분히 그럴 거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는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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