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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선생님의 도시락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의 감사함

by 소향

담임 선생님의 종례가 끝나자 가방을 챙겨 부리나케 줄행랑을 쳤다. 운동장에서 기다리던 형들 서너 명 중에 한 명이 달아나는 나를 발견하고는 소리를 친다.

"야, 거기서." "빨리 잡아라"

그러나 달리기에 자신 있던 나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학교 뒤를 돌아 울타리 틈을 비집고 빠져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논둑을 지나 개울을 넘어 포장된 도로를 지나도록 쉬지 않고 달렸다. 15분 정도를 뛰었을까 따라오던 형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그제야 한숨을 돌린다.


3월의 봄바람이 불어오고, 아지랑이 피어나는 들녘에는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나른한 오후다. 저 멀리서 짝을 부르는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개구리울음소리에 살며시 찾아가니 저수지가 나온다. 이미 개구리 알이 사방에 검은깨를 뿌려 놓은 듯 즐비하다. 살며시 다가가 개구리 두 마리를 잡아 실로 각각 한쪽 다리를 묶어 줄다리기를 시킨다. 양쪽으로 뛰는 개구리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몇 번을 뛰더니 결국에는 덩치 큰 놈이 작은놈을 끌고 간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 싫증이 나자 가방을 메고 터덜 터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다 와갈 즈음 학교에서 쫓아왔던 형들의 모습이 우리 집 마당에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재빨리 머리를 숙이며 개울가로 숨어들었다. 숨죽여 가기만을 기다리며 형들이 하는 말을 귀 기울인다.


"아줌마, 소향이 집에 있어요?"

"아니, 아직 안 왔어. 무슨 일이야?"

"선생님이 소향이 데려오라고 하셨는데 하도 빨리 도망쳐서 여기까지 왔어요."

"선생님이 왜?"

"배구부에 들어오라고 하는데 말을 안 들어서요."

"소향이가 배구하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니니?"

"그렇긴 한데, 소향이 배구를 잘해서 선생님이 꼭 데려와야 한데요."


그랬다. 형들이 나를 쫓아온 것은 집단 괴롭힘이나 왕따라서가 아니라 나를 배구부에 넣으려는 선생님과 형들의 작전이었다. 배구부는 5~6학년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4학년인 나를 선생님이 눈여겨보시고 콕찝어 배구를 시키려고 안달이 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와 형들은 벌써 몇 번째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배구를 하기 싫었던 것은 4학년인 나에게 형들 틈에서 배구를 하라고 하는 게 싫었던 것이다. 도망 다니기를 여섯 번쯤 했을 때, 선생님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어머니를 찾아가셔서 나를 배구부에서 뛰게 해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선생님이 직접 찾아와서 하시는 부탁이라 거절을 못하시고 아들에게 말해주마 하고 돌려보내셨던 것이다.


그 후 선생님이 나를 몇 번 불러 배구부에 올 것을 종용했고, 선생님의 설득을 이기지 못한 나는 배구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배구부는 점심 식사 후 수업도 없이 배구장으로 모여 훈련을 시작했다. 배구부에 들어간 첫날부터 훈련은 만만치 않았다. 워밍업으로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스트레칭을 한 후에 체력훈련에 들어갔다. 토끼뜀이며, 오리걸음, 왕복 달리기 등등 입에 단내가 나서야 멈췄다. 그리고 나서야 본격적인 배구연습에 들어간다.


오후 수업을 빼먹는 것은 즐거움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수업을 못 들어서 다른 친구들이 배운 것을 못 배우는 건 싫었다. 나름대로 성적이 좋았던 나였기에 등수가 밀리는 게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배구부 훈련으로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얼굴은 까맣게 그을렸고, 허벅지는 날로 굵어졌으며, 매일같이 멍들어 있던 손목에는 더 이상 멍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배구부 생활은 그렇게 적응되어가고 있었다. 빼먹는 수업에 대한 불안은 그렇게 서서히 잊혀 가고 있었다.

토요일에는 4시간 수업만 있었기에 배구부는 수업에 빠지고 훈련만 했다. 그날도 아침부터 배구장에서 기합소리와 파이팅을 외치며 점심이 다 되도록 훈련을 했다. 온몸에 땀범벅이 되어 뛰어다니던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배구감독 선생님을 찾아오셨다. 두 분이 말씀을 나누시고는 감독 선생님이 나를 부르신다. 담임선생님한테 가보라고 하시며 다른 형들을 가르치러 가셨다. 저 멀리 벤치에 앉아 계시는 담임선생님이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으신다. "소향아, 이리 와!" "여기 앉아." 담임선생님이 옆자리를 권하며 말씀하신다. "내가 소향이 주려고 도시락 싸왔어."


보자기에 싸인 도시락을 내쪽으로 쭈욱 내민다. 도시락을 따라 담임 선생님의 향긋한 냄새가 바람을 일으키며 밀려왔다. 그 향기에 나도 모르게 머뭇거리자 담임선생님은 보자기를 풀러 도시락을 꺼내 뚜껑을 열어젖히며 먹어보라고 권한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숟가락을 받아 쥐고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었다. 대놓고 바라보지는 못했지만 선생님은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웃고 계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위기는 다소 어색했지만 이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나는 은근히 바랬던 것 같다.

도시락을 다 먹고 나자, 선생님은 나에게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

"소향아, 네가 배구를 하고 있지만 공부를 게을리하면 안 돼."

"너는 지금까지 공부를 잘 해왔으니까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틈나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면 좋겠어."

"혹시 배구를 안 하게 되더라도 다시 공부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게 좋아."

"나는 소향이가 잘하니까 공부를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 약속할 수 있겠어?"


나는 다른 댓구를 할 수 없어 "네"라는 대답만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내손을 꼭 잡으시고는 "힘들지만 잘 이겨내고, 뭐든 열심히 하면 좋겠어." "그리고, 공부하다가 모르면 언제든지 찾아와. 내가 가르쳐줄게." 하셨다. 선생님은 몇 번을 다짐을 받고 나서야 "선생님이 소향이를 항상 지켜볼 거야. 알았지?" 하시며 그 자리를 떠나셨다.


이미 점심시간이 되어 다들 식사하러 자리를 비운 배구장에서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선생님의 미소와 선생님한테서 나는 향긋한 냄새, 그리고 나를 잡은 손이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나를 지켜보겠다는 그 말씀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 후로도 선생님은 다른 친구들 몰래 나를 찾아오셨고, 이것 저것 신경 써 주시면서 관심을 주셨다. 아마도 친구들과는 다르게 형들과 똑같은 훈련을 받으며 생활하는 내가 짠한 마음이 들어서 그러셨던 것 같다. 그래도 결혼도 하지 않은 선생님이 제자를 자식처럼 그렇게까지 챙기기 쉽지 않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살뜰하게 나를 챙겨주시던 선생님은 그해 1년만 근무하시고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다른 선생님들은 부임을 하면 2~3년 정도 근무를 했던 것 같은데 그 담임선생님은 짧은 1년의 굵은 기억을 남기고 떠나셨다.


몇 년 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었다. 나는 배구부의 해체로 더 이상 선수로 있을 수 없었고, 다른 학교로 전학할 수 도 없는 내 입장으로 배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때 담임선생님 덕분에 놓지 않았던 공부가 나를 살렸던 것 같다. 운동을 하면서도 꾸준히 상위권에 있었기에 배구를 그만둬도 공부에 지장은 없었던 것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편애와 관심으로 늪으로 빠질 수 도 있었을 내 유년은 담임 선생님으로 인하여 굽을 뻔했던 굴곡이 터널이 되어 잘 지나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혹시 담임선생님은 나를 위해 예비된 수호천사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코끝으로 밀려드는 진한 커피 향 뒤로 손 내밀며 웃어주는 선생님이 서 계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따라 유난히 선생님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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