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기억
봄바람에 묻어오는 아카시아 꽃 향기가 넘실대는 봄이 되면 들에는 초록빛 넘실대는 물결들 사이로 빨갛게 익어가는 산딸기가 먹음직스럽다. 간혹 커다란 바위 위에 펼쳐진 산딸기는 흡사 양탄자를 펼쳐놓은 듯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산딸기가 익어가는 계절이 되면 가벼운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고 들로 나간다.
잘 익은 산딸기는 앵두알처럼 탱글탱글한 작은 알맹이들이 촘촘하게 이어져 먹음직스럽다. 산딸기의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맛에 계속 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잘 익은 산딸기를 골라 웬만큼 먹고 나면 그제야 바가지에 산딸기를 따서 담는다. 가끔 산딸기를 따다가 가시에 찔리기도 하지만 그 정도는 대수롭지 않았다. 바위에 펼쳐진 산딸기는 바위에 올라서서 따기 때문에 가시에 찔릴 위험이 그만큼 적었다. 그래서 그 자리는 인기가 정말 좋았다.
그렇게 모아 온 산딸기는 집에 두고 먹기도 하지만 양이 많아지면 가끔은 어머니가 딸기잼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기에 재미 삼아 딸기를 따서 집으로 가져오곤 했었다. 바가지가 없는 날이면 커다란 칡잎이나 뽕나무 잎을 따서 그 위에 딸기를 담아 가지고 오기도 했다. 그런데 칡잎이나 뽕나무 잎은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담는데 한계가 있었고, 양이 많다 싶으면 오동나무 잎을 따서 그릇으로 만들어 쓰기도 했다.
딸기가 익어가는 시간이 되면 우리에게 또 다른 먹거리가 생기기도 했다. 바로 뽕나무에 까맣게 익어가는 오디열매다. 오디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열매가 작은 뽕나무가 당도도 더 높고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달콤한 맛은 좋지만 오디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오디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보랏빛 물이 들었던 것이다. 열매는 까맣게 보이지만 실제로 물이 들어 보이는 것은 보랏빛이다. 그래서 오디를 한참 따먹고 나면 손과 입 주위가 진한 보랏빛으로 물들어 누가 봐도 오디를 따먹은 티가 났다. 친구들과 오디를 따먹고 나면 하나같이 보랏빛 손과 잎이 너무 웃겨 웃다 보면 웃는 입이 보라색 물이 들어 더 우습게 보이기도 하는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것 같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같은 동네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을이 시끄러워졌다. 어떤 아저씨가 친구를 업고 달려오고 있었고, 곧이어 자동차 한 대가 두 사람을 태우고 비상등을 켠 채 급하게 도로를 질주했다. 그 친구와 함께 있던 친구들 중 한 친구가 걱정이 되어 따라왔으나 차를 타고 간 친구를 따라갈 수 없어 학교 운동장으로 왔다.
그 친구의 이야기는 대충 이러했다. 학교가 끝나고 같은 동네에 있던 친구들끼리 모여서 놀면서 가던 중 커다란 뽕나무에 오디가 많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오디를 따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쳤던 친구는 덩치가 좀 작아서 손이 잘 안 닫자 뽕나무로 올라갔다고 한다. 오디를 따먹는데 신경 쓰던 친구는 오디가 더 많은 가지를 보게 되었고, 그 가지를 잡다가 그만 뽕나무 가지가 부러져 아래로 떨어졌다고 했다.
다친 친구는 뽕나무에서 거꾸로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혔지만 다행히도 다른 가지를 잡고 있어 심하게 떨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머리에서는 피가 많이 흘렀고, 다행히 근처 밭에서 일하던 아저씨가 그 상황을 보고 달려와 상처에 지형을 급하게 하고는 업고 뛰어왔다는 것이다.
낙상사고가 발생하고 며칠이 지나자 그 친구가 머리에 하얀 붕대를 감고 학교에 나왔다. 모두들 걱정을 하고 면회를 가자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던 차에 친구가 학교에 나왔던 것이다.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만한 게 다행이었다. 그 뒤로 우리는 뽕나무를 보면 그 친구를 생각했다. 그 친구가 떨어졌다는 뽕나무에도 가서 확인을 해봤다. 뽕나무래는 바위들이 몇 개가 얽혀있어서 잘못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던 장소였다.
시간이 지나 상처가 다 낫은 후에 그 친구가 머리에 난 상처를 보여줬다.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더 큰 상처가 나있었고, 그 상처 자리에는 머리카락조차 나지 않아 하얀 살이 드러나 있었다. 한 번의 사고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커다란 흉터를 만들어 놓았다. 그 친구는 몸이 많이 허약해서 결석도 자주 했고, 집에서도 늘 불안해하던 친구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 사고 이후에 친구는 오히려 몸이 더 건강해진 것 같았다. 스스로 운동도 했고, 태권도 학원도 다니기 시작했다. 결국 그 친구는 군대 갈 나이가 되자 해병대로 지원할 정도로 체력적으로 무척 좋아졌다. 그 사건이 친구에게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 친구의 낙상사고가 발생한 지 얼마 안 있어 또 다른 사고가 터졌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강에는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친구들도 하나 둘 사람들과 함께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주로 수영하던 장소는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커다란 바위를 지나면서 물살이 잔잔해지는 곳이었다. 대신 그곳은 물이 깊어 바닥이 보이지 않는 짙은 초록빛 물이었다. 물이 깊다 보니 혹시나 형들이 없을 때에는 깊은 물 때문에 그곳에 잘 가지 않게 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날도 동네 형들이 없어 친구는 동네 동생들과 강물이 얕은 곳으로 수영을 갔다고 한다. 물이 깊지 않아 마음 놓고 수영을 하고 놀았는데 얕은 물 중간쯤 갑자기 물이 깊어지는 곳이 있어 한 사람이 그곳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었고, 친구는 그런 동생을 구해 데리고 나왔다고 한다. 동생을 밖으로 먼저 보내고 물이 얕은 곳에 와서 일어서는데 모래들 사이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고 한다.
친구는 돌이 반짝이는 줄 알고 그 옆을 지나 밖으로 걸어 나오는데 감자기 발바닥이 아팠다고 한다. 발을 들어 올리는 순간 주변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고, 발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고 한다. 살펴보니 유리병 조각이 발바닥에 박혀있었고, 그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고 한다. 같이 갔던 동생들이 주변에 있는 어른들 한테 알렸고, 이 친구도 동네 다른 아저씨 등에 업혀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 발바닥을 20 바늘 정도 꿰맨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 친구는 목발을 짚고 학교에 나왔지만 그해 수영은 하지 못하고 더위를 참고 지내야 했다.
나는 다행히도 그 두 사고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 현장의 이야기는 친구들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내가 그 자리에 없었지만 꼭 같이 있었던 것처럼 상상되는 끔찍한 이야기였다. 두 번의 대형 사고로 인하여 우리는 더 조심하는 계기가 되었고, 괜한 모험보다는 안전을 중시하는 생각이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래가 많은 곳에서는 깨진 유리병이 있지는 않은지 미리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고, 동생들과 같이 수영을 할 때면 그 친구의 사건을 이야기해주면서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참 이상한 것은 친구들이 그 많은 시간들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는 그 해에 다 몰려있었다는 것이다. 힘든 시기는 또 다른 성장의 시작이 되는 것 같다. 많은 것을 깨닫고, 느끼고, 헤쳐나가는 새로운 도전이 된다고 생각해 본다. 크고 작은 사고들이 연이어 일어났던 내 유년, 탈 많던 그해의 기억이 지금 떠 오르는 것은 아마도 세계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해를 지금 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나가지 않을 것 같았던 유년의 힘들었던 시간도 견디고, 무리 없이 잘 성장해 왔듯이 힘들었던 올 한 해도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새로운 힘을 얻고 일어서 나갈 수 있는 전환의 시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고난은 또 우리를 성장시키는 또 다른 힘을 만들어 줄 것이다. 합심하여 성장할 수 있는 지혜를 모을 것이다. 새로운 생각과 변화를 이끌어내 줄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