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기억
햇살이 따듯해지는 6월 중순이 되면 우리들 발길은 강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모여 수영을 하고, 물싸움을 하고, 장난치는 사이에 장난기 심한 행동으로 울음을 터트리는 여자아이들이 하나씩은 생기게 마련이었다. 그러면 여자아이들은 서로 한 편이 되어 울린 사내아이를 몰아붙여 혼을 내준다. 그래도 남자아이는 사과도 안 하고 쭈뼛대다 도앙치곤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때뿐 다음날이면 또다시 어울려 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물과 함께 성장한 우리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미 강을 수영으로 건널 수 있고, 자신의 키보다 훨씬 더 깊은 물속을 잠수할 줄 아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고학년으로 접어들면 그냥 하는 수영은 심심하고 재미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연의 바위가 어우러져 미끄럼틀처럼 매 근한 급류 쪽으로 이동해 물살의 힘으로 미끄럼을 타기도 하고, 급류에 몸을 싣고 떠내려가는 스릴을 즐기기도 했다.
어느 날, 중학교에 다니는 형이 두 개의 작살을 만들어 가지고 왔다. 바위가 많은 우리 동네 강은 3지 창을 사용하기보다는 외창을 이용해 바위틈의 고기를 주로 잡았다. 외창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고정시켜야 할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에 형은 판재를 잘라 권총 모양으로 만들고, 우산대를 검은 고무줄로 동여 고정을 시켰다. 노란 고무줄은 작살의 발사속도를 높이기 위해 몇 가닥을 묶어 작살의 뒷부분에 휘어진 곳에 걸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작살이 만들어지자 우리는 각자 수경과 작살을 가지고 강으로 갔다. 작살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거리를 두고 물질을 했다. 강의 이쪽 편은 물이 얕아서 큰 바위가 있어도 물고기들이 안보였다. 물이 깊은 반대쪽으로 수영을 해서 강을 건너갔다. 강 건너편에는 5명이 누워도 충분한 너른 바위가 있었다. 햇살 가득 받은 바위는 따뜻하다 못해 뜨겁기까지 하다. 6월 중순이면 아직 물이 차가워 입술이 파래질 만큼 체온이 떨어진다. 그래서 체온을 올리기 위해 그 너른 바위 위에 몸을 눕힌다.
따뜻한 햇살이 온몸을 감싸고, 익은 바위의 온기가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면 추위는 사라지고 나른함에 졸음이 몰려온다. 그렇게 한참 누워있으면 다시 몸이 더워지고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진다. 이제는 깊은 물에 잠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잠수할 준비를 한다. 참쑥을 한 움큼 잎만 뜯어와서 돌로 찧고, 손으로 비벼서 솜털처럼 부드럽게 만든다. 잘 다져진 쑥을 꽉 짜서 물기를 빼고 적당한 크기로 나누어 귀마개를 만들어 귀에 넣는다. 남은 쑥은 수경의 유리를 앞뒤로 깨끗하게 닦아 낸다. 그렇게 하면 수경에 습기가 차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잠수를 해도 시야가 깨끗해진다.
물 위를 이리저리 다니다가 고기가 있을만한 큰 바위 앞에 멈춰 선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물속으로 잠수를 해서 바위 밑을 살핀다. 뭔가 하얀색의 고기가 커다란 덩치를 살랑살랑 흔들며 숨어있는 것이 보였다. 깊은 물속이라 숨이 빨리 차가 때문에 일단 고기가 있는 것만 확인하고 물밖로 나온다. 심호흡을 하면서 작살을 당겨 장전을 하고 다시 물속으로 잠수를 한다. 이미 위치까지 파악해 놓고 올라왔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에 작살을 들이대며 다시 고기가 있는지 확인을 했다.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 고기를 아가미 주변에 겨냥해서 작살을 발사시켰다. 작살이 발사되기가 무섭게 전달되는 물고기의 발버둥에 혹시나 빠져나갈까 걱정이 되어 작살 끝쪽을 잡고 물 위로 떠오른다.
하얀 비늘에 둘러 쌓여 입만 뻐끔거리는 누치가 내 손에 이끌리어 물 밖으로 나왔다. 크기는 40cm 정도다. 형에게 소리 질러 받으러 오라고 했다. 형은 내가 잡은 누치를 보더니 정확히 잘 찔렀다고 칭찬을 하며 버드나무 가지를 하나 꺾어 누치를 꿰었다. 내가 먼저 고기 잡는 데 성공하자 형이 경쟁심이 생겼는지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해 잠수를 했다. 나는 생각보다 큰 사이즈의 고기를 잡은 것도 있고, 차가운 물로 한기가 느껴져 너른 바위로 올라가 바닥에 엎드려 체온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그사이 갑자기 형이 환호를 지르는 소리가 났다.
"야~호~!!!"
"어, 왜? 뭔데?"
"야, 이거 봐라. 한 방에 두 마리 잡았다."
"두 번 찔러서 잡은 거 아냐?"
"봐라. 내가 지금 나오는 중이잖아. 작살에 두 마리 찔려 있잖아."
그랬다. 형의 작살에 누치가 두 마리가 나란히 관통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형은 득의양양하게 내가 있는 바위로 올라와 자신이 잡은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 바위 밑을 살필 때는 한 마리만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작살을 준비해서 내려가니 총 3마리가 보였다고 한다. 두 마리가 나란히 서 있는 사이를 한 마리가 왔다 갔다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3마리를 다 잡을 욕심에 3마리가 일렬로 설 때까지 기다렸지만 가운데 한 마리가 계속 왔다 갔다 해서 가운데 올 때쯤 작살을 쐈는데 결국에는 한 마리가 도망을 쳤다고 했다.
형의 말을 들으면서 나도 두 마리 한 번에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다시 물속 바위를 살피며 자맥질을 했지만 꺽지 20cm 정도 한 마리와 쏘가리 30cm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더는 수확이 없었다. 그 사이에 형은 누치만 다섯 마리 정도 더 잡았다. 이제 고기는 충분히 잡았으니 작살질은 그만 하자고 했다.
한나절을 물속에서 놀면 허기가 빨리 온다. 찾아온 허기를 달래기는 물고기만 한 먹을거리도 없다. 작살로 잡은 큼지막한 물고기는 먹을 수 없는 살이 많아 배가 두둑해지기도 한다. 너른 바위 옆에 강물에 떠내려온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피웠다. 마른 가지는 금세 불이 붙었고, 굵은 나무 몇 개를 올려 화력을 키운다. 형은 준비해온 칼로 누치를 손질한다. 칼집을 내고 소금을 뿌려 간이 적당하게 배도록 한 후 기다란 꼬챙이에 입을 끼워 불위로 기울여 고기를 굽는다. 타지 않도록 익어가는 정도에 따라 살살 돌려주면 고기에서 나오는 기름으로 자글자글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껍질이 노릇노릇 군침도는 색깔로 물들어 간다.
누치가 익어갈 때쯤 칡넝쿨 잎을 여러 장 뜯어가지고 와서 너른 바위 가운데 깔아 맛있게 먹을 준비를 한다. 나무젓가락은 버드나무를 꺾어 껍질을 벗기고, 칼로 다듬어 만들면 그만이다. 누치가 다 익으면 형은 너른 바위 칡잎 위에 먹음직스럽게 올려놓는다. 군침이 넘어가는 순간 형은 누치의 꼬리를 잡고 뼈를 발골해서 먹기 좋게 만들어준다. 누치는 잔뼈가 많아 조심해서 먹으라는 형의 말과 함 게 맛있는 둘만의 식사를 시작한다.
여름의 길목을 지나는 햇살은 마냥 따뜻하게 내려 쬐고 있다. 지나는 뭉게구름이 잠시 그늘을 만들면 심술궂은 바람이 물 위의 찬기운을 한 아름 안고 달려든다. 우리는 맘대로 하라는 듯 너른 바위에 엎드려 배부름과 따뜻한 바위의 온기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구름이 걷히고 다시 강한 햇살이 비치면 우리 등은 빨갛게 익어 쓰라린 아픔이 찾아온다. 그 고통에 또 며칠은 옷 입는 것조차 거부하고 싶은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살들이 까맣게 물들어가도록 건강한 여름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