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기억
여름 방학이 되어도 늦잠을 모르던 우리는 7시 전에는 모두 일어나 활동을 했다. 이블을 정리하고 마당을 쓸고 하는 변함없는 일상의 루틴이 끝나면 하루를 고민하는 시간이 된다. 요즘 아이들처럼 빼곡히 짜인 학원 일정이 아니라 완전히 자유로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고민을 하던 중 오늘은 강에서 통발을 놓기로 한다. 통발을 놓기 위해서는 또 준비가 필요했다.
바로 고무줄과 비닐이다. 요즘 같으면 통발을 만들 생각보다는 가게에서 바로 사 가지고 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통발을 산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만드는 것 자체로도 재미있는 놀이가 됐기에 만드는 재미부터 잡는 재미까지 일련의 과정을 즐기는 것이었다. 통발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용할 큰 그릇이 필수였다. 비닐 위에 그릇을 엎어놓고 묶을 여유를 3센티미터 정도 여유 있게 잘라낸다. 사용할 그릇 수만큼 비닐을 자르고 두 번 접어서 가운데 고기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구멍을 낸다. 그리고 그릇 크기에 적당하게 고무줄을 잘라 묶으면 준비는 모두 끝나는 것이다.
통발을 놓기 우해 그릇을 들고 강으로 간다. 강에는 물살이 센 곳과 물살이 거의 없는 곳이 있는데 우리는 물살이 센 곳과 물살이 없는 곳이 만나는 지점이 우리가 공략할 포인트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바로 포인트에 돌들을 모아 담을 쌓는 것이다. 물살이 있는 곳에 돌로 담을 쌓으면 담 뒤편에는 물살이 잔잔해지고 그곳으로 쉬리나 피라미 같은 고기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돌담을 미리 여러 곳에 쌓아놓은 다음 통발에 넣을 잠자리 유충을 잡는다. 물속에 돌을 들어 올리면 많은 곳에는 여러 마리가 있다. 그런 애벌레를 잡아 모으면 물고기를 유인할 먹기가 준비되는 것이다. 이제 통발을 준비한다. 가지고 간 그릇에 절반 정도를 모래로 채우고 그 위에 비닐을 덮어 고무줄로 고정을 한다. 비닐이 안 벗겨지도록 그릇에 물을 채우고 도담을 쌓아놓은 곳으로 가지고 가서 그릇 안에 공기방울을 모두 빼내고 잠자리 유충을 넣은 다음 자리를 잡아 놓는다. 그렇게 여러 번 오가면 준비한 통발을 모두 놓고 나면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은 것이다.
친구들과 수영을 하며 놀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됐다 싶으면 아까 놓았던 통발 놓은 자리로 수경을 가지고 간다. 흘러내리는 물살로 물이 흐려져 통발에 고기가 있는지 잘 안보이기 때문에 수경을 가지고 확인을 하기 위해서다. 통발 그릇을 들었다 놨다 하면 비닐이 벗겨지기도 쉽고 만가지기 쉬워서 가급적 손을 대지 않기 위한 잔머리를 쓰는 것이다.
수경을 쓰고 들여다본 통발에는 보통 4~5마리의 쉬리가 들어갔다. 더 많은 것도 있었고 한 두 마리만 있는 통발도 있었다. 어쨌든 한 두 마리가 있는 통발은 그대로 놔두고 많이 들어있는 통발만 가지고 밖으로 나온다. 가끔 퉁가리가 통발에 들어가면 그 통발은 실패다. 퉁가리가 애벌레를 다 잡아먹기 때문에 먹이가 없어 물고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통발을 보통 7개 정도 만들어 놓기 때문에 두세 번 작업을 하면 40~50마리 정도의 쉬리나 피라미를 잡을 수 있었다.
잡은 물고기를 들고 집으로 와서 내장을 정리하고 비늘을 벗겨내어 어머니께 드리면 어머니는 그 고기로 우리가 먹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신다. 보통 매운탕을 끓여 주기도 하고, 간장 조림 같은 것을 만들어 준다. 하지만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바로 튀김이다. 밀가루를 입혀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낸 쉬리는 그 맛이 정말 기가 막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것이 담백했다. 맛있게 만든 양념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많을 것 같았던 물고기가 어느새 바닥을 보여 아쉬웠다.
어머니가 튀겨주신 고기를 먹고 나면 어느새 시간은 저녁을 향해 달리고 있다. 어스름 내리는 저녁이 되면 마당 한편에 불을 피우고 밤을 맞이 할 준비를 했다. 나무가 잘 타오르면 빨갛게 익은 숯불이 펼쳐지고 그 순간이면 우리는 옥수수 밭으로 들어가 잘 익은 옥수수를 몇 개 따 가지고 나왔다. 바로 옥수수를 구워 먹기 위해서였다. 껍질을 하나하나 벗길 때마다 짙은 초록의 옥수수 껍질은 점점 옅은 색으로 변해가고 결국에는 투명하게 빛나는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속살에 붙은 수염을 말끔히 제거하고 숯을 한데 모아 그 위에 옥수수를 구워낸다. 너무 오래 두면 금방 까맣게 타기 때문에 적절한 속도로 계속 돌려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옥수수가 그 특유의 노릇노릇한 맛있는 향기를 품고 익어간다.
오수수를 굽고 나면 아직도 잘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 위에 낮에 베어다 놓은 참쑥을 한 아름 올려놓는다. 사실 불을 피우는 이유는 바로 모기를 퇴치하기 위한 일종의 민간요법(?)을 시전 하기 위함이었다. 옥수수는 남는 불씨를 이용해 군것질을 하기 위한 일종의 덤이었던 것이다. 잘 타고 있는 모닥불에 참쑥을 올리면 가운데부터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져 나간다. 흡사 화생방 실습을 방불케 하지만 생각보다 그리 맵지는 않은 연기가 집 주변을 자욱하게 덮으면 이내 모기는 사라져 가고, 모기 없는 조용한 마루 위에서 우리는 아까 구워놓은 옥수수를 맛있게 먹었다.
모깃불을 피우고 구운 옥수수를 먹다 보면 저 멀리 반짝반짝 빛을 내며 춤을 추는 아이들이 있다. 바로 한 여름밤의 시원함을 틈타 날아오르는 개똥벌레들이다. 나는 옥수수를 먹으며 그들의 움직임을 잘 관찰한다. 위아래로 파도치듯 나는 개똥벌레는 집 주변으로 날아오기도 한다. 그러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쫓아가 손으로 개똥벌레를 잡는다. 손 안에서 빛을 발하는 개똥벌레는 꼬물대는 느낌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꼬리에서 빛나는 그 빛이 신기해서 가만히 살펴본다.
개똥벌레의 꼬리는 갈색의 빛을 띠고 있고, 배 쪽 방향에 LED 모듈과 흡사한 모양으로 두줄의 빛나는 선이 있다. 그 선에서 환하게 빛이 났다. 어떤 친구들은 양파자루에 개똥벌레를 잡아서 모은 다음 등처럼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듣기는 했지만 나는 차마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꼬리에 불을 달고 나는 개똥벌레를 잡는 재미는 쏠쏠했기에 저녁이면 가끔씩 잡아서 놀곤 했었다.
지루하고 무덥기만 할 것 같았던 여름방학은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가 지나갔다. 요즘같이 재미있는 게임도 없고, 신나게 여행을 다니지도 않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추억이 되고 즐거운 시간이 되어갔다. 한 달, 길게만 생각됐던 여름 방학은 이상하게도 너무 빨리 끝나곤 했다. 늘 아쉬움을 간직한 채 말이다.
이제는 쉬리를 잡던 그 강에도 물고기는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낚시를 던져도 입질조차 없고, 수경을 쓰고 들어가 봐도 보이는 물고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자연을 너무도 심하게 훼손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그 시절의 모습으로 통발을 놓는다면 아마도 빈 그릇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쉬움만 남는다. 생태계가 인간으로 인해 심하게 왜곡되는 현상이 보일 때면 유년의 추억이 더욱 아련해 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