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그 추억 한 조각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위험천만하고 무모한 어린날의 기억이 있다. 겨울에 접어들면 포수들이 총을 들고 산짐승이나 꿩 같은 동물을 사냥했다. 어린 마음에 총소리가 겁이 나기도 했지만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새들이 아래로 떨어지는 광경은 정말 신기했다. 포수는 사냥을 정말 쉽게 한다는 생각을 하고 나도 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이 깊어지면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말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참고로 이 글을 읽고 총을 만들어 보겠다고 따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총은 제작만으로도 위험하며, 총포 단속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음을 부디 잊지 말기를 바란다.)
포수가 총으로 꿩을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총을 갖고 싶은데 총을 살 수 없을 것 같고, 설사 살 수 있다고 해도 많이 비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민을 하다가 형들한테 총을 갖고 싶다고 말을 했다. 형들은 장난감 총으로 생각하고 웃으면서 사면되지 않느냐고 한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포수가 사용하는 총은 정말 비싼 것이고 우리는 총을 살 수도 없다는 말을 했다. 그럼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더니 돌아도는 대답은 핀잔과 바보 취급이었다.
나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형들이 안된다고 하니 오기가 발동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는지 모르겠다. 그러던 중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가 생각을 해도 정말 획기적인 방법인 것 같았다. 잘만하면 정말 총알이 날아가는 총이 만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잘 만들어서 형들한테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 집에는 여름에 강에 나가 고기를 잡는데 쓰는 작살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기다란 쇠 끝에 삼지창이 달리 작살을 주로 썼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작살은 다른 집의 작살과는 많이 달랐다. 고무줄을 손으로 당겨서 잡고 있다가 놓으면 발사되는 방식은 힘이 들고 손이 아팠기 때문에 우리는 판자를 장난감 총 모양으로 잘라서 윗면을 둥근 조각도로 홈을 파고 끝부분에 우산대를 올려 고정시키는 과정에 고무줄을 같이 고정시키고, 작살의 끝을 휘어 고기를 만들어 고무줄을 달았다. 판자의 뒤쪽 끝에 못을 박아 못 머리를 잘라낸 뒤 작살을 당겨 못에 걸었다가 필요할 때 살짝 밀면 작살이 발사되는 방법으로 사용을 했던 것이다.
나는 총 만드는 힌트를 여기서 얻을 수 있었다. 나무 판재를 총 모양으로 50cm 정도로 절단을 하고 직선인 윗부분에 둥근 조각도로 중심부에 홈을 끝까지 파냈다. 우산 대를 한 개는 20cm, 한 개는 50cm로 두 개 준비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총알을 만들기 위해 철물점에서 리어카 살을 몇 개 구입하고, 노란색 화약을 한 통을 구입했다. 그리고 우산 살을 고정시킬 검은 고무줄과 총을 발사할 때 사용할 노란 고무줄, 마지막으로 총알로 사용할 납을 구입했다. 이제 총을 만들기 위한 준비는 끝이 났다.
먼저 총 모양 판자의 앞쪽 끝에 긴 우산대를 7cm 정도로 겹쳐지게 해서 검은 고무줄로 촘촘하게 돌려 고정을 시키고 발사에 사용할 노란 고무줄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긴 우산대에서 3cm 정도 공간을 띄워서 짧은 우산대를 역시 검은 고무줄로 단단하게 고정을 시켰다. 리어카 살이 고무줄의 힘으로 발사되었을 때 우산대에 바로 맞으면 우산대가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되어 총몸체로 사용하는 나무판자의 손잡이 위쪽에 구멍을 뚫고 굵은 철사를 휘어 리어카 살이 발사되었을 때 걸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때 리어카 살은 짧은 우산대 안에서 움직여야 하기에 길이를 잘 조절해서 만들었고, 뒤쪽에 리어카 살을 걸어 고정시킬 수 있도록 작은 못을 박아 못 머리는 잘래 냈다. 이렇게 만드는데 하루가 걸렸다. 이제 남은 것은 총알을 어떻게 만드냐의 문제였다.
리어카 살 너트를 장착할 긴 우산대 시작점에 못 두 개를 박아 리어카 살 너트를 고정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리어카 살을 고정시키는 너트를 총알의 탄피로 사용한다는 계획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정말로 발사가 되는지가 관건이었다. 내 계산대로라면 발사가 될 것 같았다. 이제 정말로 발사가 가능한지 확일 할 차례가 되었다.
리어카 살 너트에 납을 잘라 3mm 정도의 두께로 넣고 빈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못을 넣어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노란색 화약을 그 앞쪽에 가득 채웠다. 그리고 공이로 사용할 못은 머리 부분은 남겨두고 뾰족한 끝을 잘라 리어카 살 너트에 끼워 화약이 빠지지 않도록 했다. 이제 총에 장착하고 발사를 하면 내 생각이 맞는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총알을 열개 정도 미리 만들어 놓았다.
이제 테스트를 해야 하지만 총이라는 게 사실 겁이 났다. 노란 화약 한 개만 해도 소리가 큰데 총알에는 3개 이상 들어가 있으니 어린 마음에 겁이 나기도 했다. 고민을 하다가 형을 불렀다. 형들은 총을 보고는 놀라면서 대단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큰형이 한 번 쏴보겠다며 가래나무에서 10미터는 떨어져서 조준을 했다. 옆에서 바라보는 나는 입에 침이 마르고 소리가 얼마나 크게 날지 걱정이 돼서 귀를 손으로 틀어막고 있었다.
"탕~~!!!"
"아~!!, 깜짝이야~"
"오~~, 죽이는데~"
"내 총 쏘는 실력 봤지? 정확히 명중했다. 야호~!!!"
총소리는 정말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들려왔고, 조준한 곳에 가까이 다가가니 가래나무가 총에 맞아 손톱 두 개만큼 껌질이 벗겨져 속살을 하얗게 드러내고 있었다. 대성공이었다. 실제로 총알이 날아가는 진짜 총을 내가 만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구성은 엉성하고 이게 총이 맞나 싶은 모양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듯 실제로 총알이 날아가 나무에 껍질을 뚫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총을 쏴본 형은 재미가 들렸는지 몇 번을 더 총을 쏴 보는 것이었다. 나도 총을 쏴보고 싶었지만, 사실은 총소리가 너무 커서 겁이 나서 쏴보지는 못했다.
다음 날 형이 아침에 일어나기가 무섭게 꿩 사냥을 가자고 했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낙엽 송이 우거진 숲이 있는데 그곳에 꿩들이 자주 날아들기 때문에 형은 그곳에 가보자는 것이었다. 눈 덮인 밭을 지나 낙엽송 숲에 다다르자 3명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살피며 숲으로 들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모이를 찾아 기웃거리는 꿩 한 마리를 발견했다. 큰형에게 신호를 주어 꿩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기다렸다. 형은 총을 들고 조용히 다가와 조준을 했다. 이어서 "탕~!!!"소리가 나자 꿩은 날아가지 않고 날갯짓만 '파드닥, 파드닥'거리며 달려가더니 나무뿌리 사이에 덤불 틈새로 머리를 쑤셔 넣었다.
나는 놓칠세라 달려가서 꿩을 잡아 들었다. 살펴보니 꿩은 아무 상처도 없고 그저 놀라서 근처 덤불에 머리만 처박고 숨었던 것이었다. 나는 어부지리로 꿩 한 마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날 우리 집 저녁은 꿩 볶음탕을 먹었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내가 잡은 꿩고기는 정말 맛이 있었다. 고기 맛을 본 우리는 다음에도 몇 번에 걸쳐 사냥을 나섰지만 번번이 허탕을 치고, 소리만 큰 뻥 총이 되어 재미를 잃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5학년 그 어린 나이에 총을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만들고 나서 발생할지도 모를 안전사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한 것이 참 아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낮에는 어머니가 집에 안 계셨기 때문에 그 위험한 행동이 어떠한 제약도 없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꿩을 잡았을 때도 우리는 놀라 도망가던 꿩이 덤불에 걸려 잡았다고만 했지 총을 쐈다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몇 번의 사냥이 실패한 후에는 총을 분해하여 버렸고 그 뒤에 다시는 총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라면 나처럼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본다. 그저 만들어진 멋진 장난감을 사달라고는 할지 몰라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아니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하면 다 들어주는 부모가 있는데 굳이 머리를 쥐어짜 내어 뭔가를 만들어 가진다는 생각은 아마도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뭔지 모르겠다. 갈 수만 있다면 그때로 다시 돌아가 그 시절을 다시 살아보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