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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에서 즐기는, 놀이동산

유년시절의 추억

by 소향

내가 살던 집은 뒤쪽 산은 좀 멀리 있었고, 오른쪽에 있는 나지막한 산이 그나마 좀 가까웠다. 나지막한 산이라지만 다른 산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경사는 60~70도 정도 되지 않았을까 추측되고, 아래에서 능선까지의 거리는 150m 정도 된다. 그런데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능선에서 아래까지 길처럼 산사태가 나 있었다. 폭도 2~3미터 정도로 시작돼서 바닥까지 쓸려 내려와서 나무도 없이 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겨울 방학을 할 때면 이미 눈은 몇 번 내렸고, 날씨는 많이 추웠던 기억이 난다. 양지에는 눈이 녹아 맨땅이 드러나 있었지만, 음지에는 추운 날씨로 눈이 녹지 못해 항상 쌓여 있었다. 특히 오른쪽에 있는 산은 우리가 바라보는 쪽이 북향이라 항상 눈이 있었다. 더구나 산사태가 난 곳은 나무가 없어 산임에도 불구하고 눈이 더 많이 쌓여 있었다. 덕분에 우리에게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좋은 놀이동산이 됐다.


12월 이면 이미 월동준비로 땔감과 장작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지만, 마르지 않은 생나무들이 많아 불이 잘 안 붙었기 때문에 불 피우기 쉽도록 소나무 검불(검불: 나뭇잎이 마구 떨어져 헝클어져 있는 그런 것)을 모아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가끔씩 형들과 소나무 검불을 모아 오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실 우리가 재미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삼한사온의 날씨 중 따뜻한 날이면 형들과 같이 낫과 대형 마대자루 몇 개를 준비하고 산으로 갔다. 옆산은 눈이 쌓여 있기는 하지만 능선부터 뒤쪽은 따뜻한 양지로 항상 온기가 넘치기에 마른 소나무 검불이 무척 많았다. 갈퀴로 소나무 검불을 긁어모으면 금방 대형 마대자루로 한 가득 차 오른다. 그렇게 서너 개의 자루를 채우고 나서 산사태가 났던 자리로 소나무 검불이 가득 든 자루를 옮긴다. 형들은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고는 낫을 챙겨가지고 움직인다. 그렇다고 내가 기다리고 있을 사람은 아니었다. 바로 뒤따라가서 구경을 한다.


큰형은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에서 가지가 넓고 굵은 것을 확인하고는 소나무를 오른다. 내가 봐도 신기하게 손잡이도 없이 매끈한 소나무를 큰형은 잘만 오른다. 소나무 껍질 사이의 빈 틈에 손가락을 넣고 양다리로는 소나무를 통째로 끌어안듯이 하면서 오른다. 다람쥐가 나무에 오르는 것처럼 금세 저만큼 올라간다. 그러다 껍질도 가지도 없는 상황과 마주치면 낫 끝을 나무에 깊숙이 찍어 넣고 그것을 잡고 오르기를 반복한다. 결국 승리는 큰형의 몫이다. 굵은 나뭇가지에 오른 큰형은 주저함도 없이 낫으로 가지를 잘라 아래로 떨어뜨린다. 그리고는 낫을 나무 아래로 던져놓고서는 소나무를 썰매 타듯 타고 내려온다.


소나무 가지 하나만 잘랐는데도 나무 한 그루를 벤 것처럼 크다. 셋은 밧줄을 묶어 끌고 자루를 모아 놓은 곳으로 가지고 와서 그 위에 자루를 묶는다. 큰 충격에 풀리지 않도록 꼼꼼하게 묶어주고, 엉성한 자리가 보이면 다른 나무를 잘라와서 보충을 해 준다. 마지막으로 마대자루에 앉아 떨어지지 않도록 잡을 손잡이를 만들어 주고 나면 이제는 즐길 일만 남아 있는 것이다. 두 명은 자루 위에 타고 큰형이 탈 자리를 만들어 놓으면, 큰형은 소나무 가지를 당겨 산사태가 난 경사지로 끌어내린다. 더 이상 힘을 주지 않아도 미끄러질 정도가 되면 큰형도 마대자루 위로 올라탔다.


"얘들아. 안떨어지게 꽉잡아~!!"

"야호~~!!!!"

"우와~~!!!"

"으~악~~~!!!"


놀이동산에서 청룡열차를 타며 괴성을 지르듯 마음껏 소리를 질러본다. 미끄러져 나가는 속도와 스릴을 느끼는 것은 청룡열차 못지않은 짜릿함이 있다. 소나무 가지는 우리를 싣고 눈 덮인 급경사를 쏜살같이 달려 나간다. 그런데 압권인 것은 산사태 중간쯤 깊이 파인 곳이 한 곳 있었다. 그곳을 넘어가는 순간은 마치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잠깐이지만 하늘을 날다가 추락하는 기분에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가 싶으면 어느새 바닥에 "쿵"하고 떨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알기에 소나무 검불을 담은 마대자루를 소나무 가지에 묶어 준비를 했던 것이다.


떨어지는 순간 나뭇가지의 잔가지는 부러지고 대형 자루에 매달려 미끄러져가던 우리는 자루 속에 있는 소나무 검불의 완충작용으로 충격이 흡수되어 최고의 스릴을 즐길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 갈길이 멀었다. 산사태의 아랫부분은 상대적으로 폭이 넓어 가야 할 방향을 잘 잡아줘야 했다. 잘못해서 가시넝쿨이 있는 쪽으로 간다면 가시에 찔려 피를 봐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역시나 방향 컨트롤은 큰형이 잘했다. 빠른 속도에도 소나무 가지에 체중을 싣고 몸으로 방향을 바꾸어 나갔다. 큰형이 몇 번 움직이는 사이에 산아래까지 부드럽고 안전하게 도작하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가끔 사고가 났다. 사고 장소는 중간에 움푹 페인 곳이 주범이었다. 그때는 소나무 가지를 작은 것 몇 개를 묶어서 타고 내려왔었다. 작은 가지로 만든 것은 충격에 그만 두 동강이 나기 일쑤고, 방향을 컨트롤하기도 힘들었다. 페인 곳을 넘어 떨어지면서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밀려 내려가기도 하고, 마대자루와 같이 데굴데굴 굴러가기도 했다.


그렇다고 다치는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곳에는 눈이 쌓여 있었고, 소나무 검불을 담은 자루가 우리 안전의 보루였기에 항상 충격은 그 자루가 다 책임져 줬던 것이다. 그래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큰 소나무 가지를 이용하면 충격도 덜하고 부러지지 않아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을 확인 한 뒤로는 온통 우리들 세상이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경사진 밭에서 비료포대에 짚단을 하나씩 넣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눈썰매를 타고 놀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소나무 썰매를 탔다. 사전 준비가 좀 힘들고 과정이 길기는 했지만, 비료포대를 타는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짜릿한 재미가 있었기 때문에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산에서 타는 썰매를 택했을 것이다.


일주일에 몇 번은 산에 올라가 미끄럼을 타고 내려왔으니 겨우내 어머니가 사용하실 소나무 검불은 마르지 않았다. 어머니는 항상 우리에게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씀과 걱정이 늘어지지만, 우리는 걱정보다는 재미를 찾아 겨울 방학을 그렇게 즐기고 있었다. 어머니를 돕는다는 핑계도 되고 스릴과 재미도 얻을 수 있는 자연이 만들어준 놀이동산은 겨울방학의 꽃이었던 것 같다.


썰매.jpg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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