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세상은 온통 백설기를 빚어 놓은 듯 때 묻지 않은 순백의 세상이 펼쳐져 있다. 이른 조반을 먹고 형들과 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이미 쌓인 눈이 정강이를 지나 무릎에 다다르고 있었고, 일렁이는 바람 따라 눈꽃이 날려 얼굴을 따갑게 때리고 있다. 볼 빨간 아이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귀마개와 모자를 쓰고 벙어리장갑으로 무장을 한 채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형들의 발자국을 쫓아가는 내 걸음은 버겁기는 해도 지칠 줄 모르고 형들이 밟아 놓은 발자국을 따라간다. 우리가 산으로 향하는 이유는 한겨울의 또 다른 재미를 위해서다. 바로 멧토끼 사냥이다. 대부분의 많은 야생동물들이 그렇듯 멧토끼도 자신들이 다니는 길이 있다. 산을 놀이터 삼아 다니는 우리들은 동물들이 다니는 길은 웬만큼 짐작을 하고 있기에 사냥도 가능하다.
푹푹 빠지는 눈 속을 지나 산 능선을 넘어 양지바른 산으로 접어들면 눈마저 쌓이는 높이가 다르다. 소나무가 잎으로 떨어지는 눈을 붙잡아 바닥에는 눈이 없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양지바른 곳에 도착하면 이제부터 멧토끼 잡이가 시작된다. 그동안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빽빽한 나무로 길이 좁아지는 곳이 나타난다. 토끼 한 마리 겨우 지나다닐 공간이 있는 곳에 우리는 올무를 만들어 설치를 한다. 올무는 철사로 만드는데 구멍의 크기는 주먹 하나 반 정도로 동그랗게 만들고, 토끼의 힘을 버틸만한 굵기의 나무를 선택해 올무를 묶는다. 올무의 높이도 바닥에서 15cm 정도 띄워 토끼가 뛰어다니는 높이에 맞게 설치했다. 하나의 올무를 설치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산의 형세와 크기를 고려해 적당한 규모로 올무를 설치했다.
올무의 설치가 끝이 나면 이제는 토끼를 몰아올 차례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은 토끼들이 산 아래쪽에 내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 구역을 나누어 토끼몰이를 시작한다. 어차피 사람이 토끼의 속도를 따라가기는 힘들기 때문에 굳이 쫒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손에 몽둥이 하나를 들고 나무를 두드려 소리를 내고, 때로는 소리를 크게 지르며 산 아래에서 위로 토끼를 몰아간다. 산 애래서 위로 토끼를 모는 이유는 토끼는 앞발이 짧고 뒷발이 길기 때문에 내리막길보다는 오르막길에 특화된 다리라서 몰리게 되면 산 위로 올라가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산꼭대기에 미리 올무를 만들어 놓는 이유도 산 아래쪽에 올무를 놓으면 어차피 토끼는 산 위로 뛰기 때문에 잡힐 가능성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소리를 소리를 지르며 나무를 두드리며 포위망을 좁혀 가다 보면 때로는 토끼가 눈에 보이기도 한다. 음지의 깊이 쌓인 눈 위로 몰리면 토끼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눈에 푹푹 빠진다. 토끼가 깊은 눈에 갇히게 되면 우리는 신호를 주어 사방에서 모여 토끼를 에워싼다. 기다란 뒷다리가 깊이 빠진 토끼는 제대로 도망도 치지 못하고 우리들 손에 잡히고 만다.
순하디 순한 토끼도 잡히면 발악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지어 단단한 이빨로 사람을 깨물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붙잡힌 토끼는 우리 손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내 목덜미를 붙잡혀 마대자루 속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붙잡히는 토끼는 어쩌다 한 번의 경우다. 그날은 우리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잡은 토끼는 들고 다닐 수 없어 산 능선의 소나무 위에 잘 매달아 놓고 다음 목표를 향해 또 뛰어갔다.
여전히 올무를 설치해 놓은 곳이 멀리 있기 때문에 어차피 올무가 있는데 까지는 올라가야 했다. 더 잡지는 못하더라도 올무를 회수해야 토끼나 다른 동물들이 밤에 다니다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차피 가야 할 길 토끼몰이를 계속하며 올라가는 것이다. 설치해 놓은 올무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고 숨이 턱에 차 오를 때쯤 우리는 또 다른 토끼를 발견하게 된다.
이번에는 올무에 걸린 토끼가 우리를 보자 놀라 달아나려 버둥거리고 있는 모습이다. 재빨리 달려가 올무에 걸린 토끼를 잡으니 빽빽 소리를 지른다. 서둘러 목에 걸린 올무를 풀어 다른 마대자루에 넣는다. 오늘은 운이 좋았는지 두 마리를 잡았다. 서둘러 나머지 올무들을 확인하여 걸리지 않은 올무들을 회수하고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멧토끼 두 마리를 잡은 오늘은 정말 운수 좋은 날이다. 토끼를 잡으러 산으로 간다고 해서 매번 잡히지도 않고 지나가는 토끼조차 구경도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끼를 잡기 위해 눈이 많이 내린 날을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마대 안에 들어있는 토끼를 형들이 사이좋게 한 마리씩 나누어 메고는 산을 내려온다. 많은 눈 때문에 발이 미끄러져 산으로 올라올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어렵다.
미끄러지며 산을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옷은 다 젖어 있었다. 그래도 토끼를 잡아 기분 좋은 나는 추위도 젖은 옷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산을 데굴데굴 굴러 내려오더라도 집에만 잘 오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꾸중을 하신다. 옷이 다 젖어 감기 걸리도록 돌아다닌다며 그렇게 한참 동안 야단을 치신다.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 잡아온 토끼를 철망으로 짜인 토끼장에 집어넣는다. 좁은 자루를 부리나케 빠져나오는 토끼는 이내 자신이 달아날 공간이 없음을 깨닫는 것 같다. 이내 다른 토끼도 마저 토끼작으로 밀어 넣고 가만히 지켜본다.
이미 잡혀온 멧토끼는 이러지도 저러 지도 못하고 한쪽 구석으로 숨어 바들바들 떨고 있다. 추워서 떠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생전 처음 당하는 구속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라. 나는 어머니 몰래 무 구덩이 입구를 막고 있는 비닐과 덮개를 걷어내고 배추 한 포기를 꺼내어 토끼장에 넣어놓고 입구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시선이 토끼를 불안에 떨개 할 것 같아 철망으로 보이게 만들어진 한쪽면을 거적으로 덮어줬다. 아마 한동안 불안에 떨기는 하겠지만 전에도 그랬듯이 적응을 하고 나면 먹이도 먹고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무릎까지 쌓였던 눈은 한낮의 따뜻한 햇살로 어느새 발목 위까지 녹아내렸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는 하얀 달이 일찌감치 마실을 나왔다. 계수나무 아래 방아 찧던 토끼가 사라져 찾으러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가만히 숨겨놓은 멧 토기를 가만히 바라본다.
옷이 다 젖도록 눈밭을 구른다며 꾸중하시던 어머니는 어느새 우리가 벗어놓은 옷가지를 들고 시냇가로 빨래를 가셨다. 보일러도 세탁기도 없던 그 시절 어머니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시냇물에 빨래를 하고 계셨다. 시린 손 녹일 가마솥에 따뜻한 물 한 양동이 들고 간 것이 손을 녹이는 전부였던 시절 어머니는 말은 안 해도 우리가 몹시도 미웠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우리들 노는데 정신이 팔려 어머니의 수고는 생각도 못한 유년의 모습이 참으로 어리석어 보인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에 빨래를 하시다 시린 손을 뜨거운 양동이 물에 넣고 가만히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빨래를 빨랫줄에 널어놓으시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저녁 준비를 하시던 어머니는 어느새 두 손 가득 거친 주름만 남아 앙상한 뼈마디만 덮고 있다. 그때 우리가 시린 냇물에 손을 덜 담그게 해 드렸다면 지금의 거친 손이 조금이라도 부드럽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