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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내리던 날

엄청난 폭설이 내리던 날의 추억

by 소향

시골의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온도계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듯 무심하게 떨어져 내리고, 거리에 고인 물은 하얗게 얼어붙었으며, 흙길에 발자국은 그 모양대로 얼어붙어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이 되었다. 계곡마저 얼어붙어 흐르지 못한 물이 얼음을 넘으면 또다시 얼음이 되는 과정이 반복되어 얼음이 범람하는 모습을 만든다. 뉴스에서는 100년 만에 찾아온 한파라며 호들갑을 떨어대지만, 사람들은 추위와 무료함에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소일거리로 시간을 때우는 헐렁한 계절이다.


매섭던 날씨가 갑자기 포근해지는 날이면 약속이나 한 듯 아이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있다. 바로 집에서 살짝 떨어진 강이다. 동장군의 으름장에 강물은 어느새 차도 지나다닐 정도로 단단하게 얼어있다. 따뜻한 햇살이 내려도 기분만 따뜻할 뿐 보이는 물은 모두 얼음이 되고 마는 혹독한 추위다. 이런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썰매를 챙겨 강으로 모여든다.

사진:Pixabay

한바탕 얼음을 지치며 신나게 썰매를 탄다. 썰매로 경주를 하기도 하고, 묘기를 부린다며 회전하며 썰매 한쪽 발로 서다가 넘어진 일수다. 때로는 장애물을 만들고, 코스를 만들어 달리는 재미 외에도 썰매의 재미를 만끽한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싫증이 나게 마련이다. 싫증 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 편 가르기를 한다. 얼음 위에서 할 수 있는 축구경기, 바로 '빙구'를 하기 위해 서다. 빙구는 짝만 맞으면 편을 나눠 경기를 할 수 있다. 큰 돌 두 개로 골대를 만들고 아이스하키의 '퍽'처럼 납작한 돌을 구해 준비를 한다.


빙구는 얼음에서 하는 축구기 때문에 다른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발만 사용한다. 경기의 룰은 발만 사용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은 없다. 다만 돌을 공대신 사용하기 대문에 얼음 위로 미끄러지게만 차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다치기 때문에 돌이 얼음 위에서 뜨는 것은 반칙이라는 게 국룰이다. 빙구는 시간을 재지 않고 지칠 때까지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한쪽이 포기를 외칠 때까지 경기는 계속되었다.


왠지 포근해지는 기분에 하늘을 본다. 하늘에는 회색빛의 수많은 점들이 보였다. 점차 가까워지는 점들은 회색이 흰색으로 바뀌고 있었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사뿐히 내려와 대지위에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많은 눈들이 내리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머리엔 금세 하얀 모자가 나타났다. 바람도 없이 고요한 세상에 사르르 사르르 내려앉는 눈들, 그 위를 걷는 아이들의 발자국은 '뽀드득, 뽀드득' 그들만의 표현으로 세상에 존재함을 표현하는 듯하다.

사진:Pixabay

그것이 시작이었다. 일요일 오후 시작된 눈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쌓여만 갔다. 밤이 되면서부터는 눈이 무서워졌다. 쌓이는 눈을 치워도 돌아서면 쌓이는 눈의 속도를 더는 감당할 수 없었고, 이미 마당은 1m 이상의 눈이 차오르고 있었다. 눈 치우기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 손 놓고 바라만 봐야 할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이대로 밤새 눈이 계속된다면 그 무게를 지붕이 감당할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몸이 가벼우면서도 눈을 치울 수 있는 큰 형이 지붕 위로 올라가 눈을 아래로 밀어냈다. 지붕에서 밀려 떨어지는 눈의 양은 정말 엄청났던 것 같다. 떨어질 때마다 대형 눈사람이 위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은 아침을 지나 오후가 돼서야 그쳤다. 그 사이에 눈은 처마 밑에까지 쌓였다. 처마 안쪽을 제외하고는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다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삽으로 눈을 두드려 눈 속에 터널을 만들었다. 꼭 다녀야 할 김칫독과 장독들이 늘어선 곳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만들어 다녔다. 우리들은 그 터널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뛰어다니며 놀이터 삼아 깔깔대며 웃고 떠들기에 바쁜 일상이 된다.

사진:Pixabay

깊은 눈 속에 빠진 월요일은 학교를 안 가도 되는 날이다. 결석을 해도 결석이 안 되는 참으로 기기 막히게 기분 좋은 날이고, 맘껏 놀아도 부담이 없는 날이다. 어머니는 이런 날에도 쉬지 않고 뭔가를 하셨다. 아궁이가 미어지게 장작을 밀어 넣고 뭔가 열심히 젓고 계시는 어머니는 이마에 땀방울이 그렁그렁 맺힌다. 수건으로 연신 훔쳐대며 왼쪽 오른쪽 번갈아 나무주걱을 옮겨가며 갈색의 뭔가를 휘휘 저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 저어대던 어머니는 넓은 쟁반에 죽처럼 생긴 그것을 퍼담고 얇게 펴시고는 마루에 올려놓고 식기를 기다린다. 우리는 꼴깍 침을 삼키며 때를 기다려야 했다.


그날은 시간이 거북이처럼 늦장을 부리고 있었다. 이쪽저쪽 한 바퀴 돌고 와도 여전히 김이 무럭무럭 나는 그것은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목구멍은 바싹 마르고, 입에는 침이 흥건히 고인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우셨는지 어머니는 솥에 조금 남은 그것을 그릇에 떠 가지고 나오신다. 숟가락과 함께 가져다가 한 입씩 떠 넣어주시고는 이제 기다리라고 하신다. 입안으로 들어온 그것은 어찌나 달콤하던지, 어떤 사탕보다도 맛있었고 꼭꼭 씹어도 계속 씹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입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침만 덩그러니 남는다.


쟁반에 넓게 펴져 찬바람 맞으며 식어 단단해진 그것은 바로 '엿'이다. 옥수수와 엿기름으로 만든 수제 엿은 추운 날 군것질할 것 없는 우리들 최고의 간식이 되었다. 배가 고파도 옥수수엿 한 조각 입에 물면 배고픈 줄 모르고 놀 수 있었다.


그해 폭설로 일주일은 학교에 가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긴 시간 동안 토끼 같은 아이들이 집안에서만 북적이며 제비 새끼처럼 입만 벌리고 있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밖으로도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서 변변한 장난감도 없이 지내야 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 만들기 힘든 엿을 직접 만들어 먹일 마음을 먹을 정도로 우리가 귀찮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코로나가 유행할 때 아이들이 일주일씩 건너 학교에 다녔다. 아이들이 집에 있을 때 아내는 아이들 세끼 밥과 간식 만들어 주는 것이 그렇게도 힘들더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수다를 떨고 하던 생활에서 아이들을 위해 오롯이 집에만 있어야 하니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사진:소향

날이 추워지면서 마당 한 귀퉁이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되었다. 점등을 하고 가만히 바라보는 크리스마스트리에서 폭설이 내리던 그날이 살며시 떠오른다. 그때만 해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세상은 온통 겨울왕국처럼 눈으로 덮여 있었으니 이렇게 폭설에 대한 추억이 겹쳐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구름 짙게 끼인 하늘이 뭔가 곧 내릴 것만 같다. 깊어가는 밤사이 하늘에서 하얀 눈이 살며시 내려와 거리를 덮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로 돌아가 눈싸움이라도 한 번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가만히 깊어가는 밤 크리스마스트리에 빛나는 불빛이 왠지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오늘 밤은 바람마저 잔잔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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