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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동준비

유년시절의 추억

by 소향

자리끼가 얼음으로 바뀌는 매서운 추위에 더 깊숙이 이불속을 파고드는 시간, '똑', '똑, '또독' 가느다랗게 들려오는 나무 부러지는 소리에 움츠러드는 몸이 저절로 녹아내린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바닥의 냉기에 어머니는 찬바람 품에 안고 부엌에 앉아 아궁이에 불을 지피시는가 보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아랫목에선 따뜻한 어머니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질 것이다. 아직 어두운 세상을 뚫고 조용히 내리는 눈이 마당에 다다르며 '사그락', '사그락' 귓속말을 나눌 때, 굴뚝에 피어나는 연기 따라 따뜻한 아침을 맞이 할 것이다.


시골의 겨울은 유난히도 매서웠다. 방문 앞에 놓은 자리끼가 얼어붙어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추위가 몰려온다. 그런 겨울을 나기 위해서 사람들은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다. 그 당시만 해도 산에 땔감을 하러 가는 것에 누구 하나 제지를 하지 않았다. 지금 그 당시처럼 나무를 베어내면 아마도 단속으로 과태료를 물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마땅한 난방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나무를 베어내는 것이 당연시되었던 것 같다.


지름 20~30cm 정도 굵기의 나무를 베어 가지를 모아 단을 묶으면 지게로 한 가득 땔감이 모인다. 그런 나무를 서너 개 족히 베어내고, 가지를 잘라 단을 묶어 쌓아 놓고 지게로 몇 번씩 나른다. 마지막에 남은 통나무는 밑동을 끈으로 묶어 어깨에 걸쳐 끌고 내려온다. 지게로 나른 땔감은 마당 한 귀퉁이에 높게 쌓이고, 힘들여 끌어 온 통나무는 넓은 자리에 가지런히 싸여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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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되는 겨울 날씨에 코끝이 빨갛게 익어 갈 때쯤, 톱에 날을 세워 한쪽 눈 질끈 감고 사열을 받는다. 모난 돌처럼 튀어나온 톱날은 줄을 대어 바로 잡고, 군대 사열받듯 반듯한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통나무는 긴장할 것이다. 한 50cm 정도 크기로 잘려나가는 통나무를 한데 모아 둔다. 통나무 그대로는 불이 잘 안 붙기 때문에 도끼로 쪼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나무도 잘 건조되니 불도 잘 붙고 화력이 좋다.


이번엔 숫돌로 도끼를 간다. 서슬 시퍼런 날을 세워 한방에 두 조각으로 나눌 수 있는 날카로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끼날이 무디면 나무에서 도끼가 튀어 사람이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날을 잘 갈아야 한다. 준비가 되면 이제 장작을 팰 차례가 된다. (어렸을 때 장작을 쪼개는 것을 장작을 팬다고 했다.) 사람들은 장작을 세워놓고 팬다. 그런데 우리 집은 장작을 눕혀놓고 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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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을 패는 것도 요령이 필요한다. 그냥 아무 데나 내려 찍으면 갈라지는 것이 아니다. TV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장작을 세워놓고 도끼로 아무렇게나 내려 찍는다. 그렇게 장작을 패는 것은 하수다. 우리는 장작을 눕혀놓고 패는데, 그냥 패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살펴서 잘 쪼개지는 방향에 도끼질을 한다. 잘 쪼개지는 방향이라는 것이 사실 따로 있다. 옹이가 있으면 큰 옹이 가운데를 중심으로 갈라야 잘 쪼개진다. 옹이가 없다면 나무의 나이테를 본다. 나이테가 조밀하게 뭉쳐있는 쪽이 그 방향이다.


나무를 쪼개는 방법에도 어른들의 지혜가 있다. 나무의 옹이가 있는 곳은 조직의 밀도가 높아 도끼날이 들어가면 그 힘에 밀려 더 쉽게 쪼개진다. 옹이가 없는 나무도 나이테가 조밀한 부분이 밀도가 높기 때문에 그쪽을 공략하는 것이다. 강도가 약한 철사는 구부릴 때 휘어지고, 강도가 강한 철사를 구부리면 부러지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렇게 장작을 패면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장작이 쌓인다. 쌓인 장작은 다시 해가 잘 들고, 눈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 밑에 차곡차곡 쌓아 둔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거의 대부분의 처마 밑을 장작으로 쌓아야 했다. 어찌 보면 쌓은 장작이 집의 단열효과도 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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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을 한 땀 한 땀 주워 벽에 쌓아 놓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올 겨울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는 생각과 눈비가 와도 추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큰 일을 해 낸 것이다. 이렇게 쌓아 놓은 장작은 추운 겨울 어머니의 수고로 따듯한 방안에 온기가 된다. 장작의 화력으로 따끈한 밥을 짓고, 구수한 냄새로 입맛 돋우는 된장을 끓이고, 소우리에서 떨고 있는 소들을 위해 따끈한 쇠죽을 끓인다.


장작 패는 날 저녁은 아궁이 한 가득 불을 지펴 숯을 만든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참으로 감자와 고구마를 구워 먹고, 가을에 주워 놓은 밤을 구워 먹는 날이 된다. 장작 패는 날은 그렇게 마음 풍성한 하루가 된다. 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는 힘이 된다. 장작을 가득 쌓아 놓은 날 하늘에서는 굵은 함박눈이 춤을 추며 내려오곤 했다. 오늘부터는 맘 놓고 내려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더 많이 내렸나 보다. 그렇게 겨울은 깊어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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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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