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수꾼 Aug 13. 2020

'패닉-UP', 마음이 부서지고 있다.

[마음의 시선] 전셋값을 올리는 마음, 올려주는 마음.

‘패닉-바잉’의 뒤를 이어 ‘패닉-UP’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매매 가격뿐만 아니라 전세 보증금 또한 급등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편의상 월세는 논외로 하기로 한다.) 5% 상한제를 만들어 임차인을 보호하겠다는 정부의 손길은 가장 아래에 있다는 임차인에게 닿기는커녕 허공만 휘젓고 있는 것 같다. 임차인은 하소연할 곳도 모른 채 삶의 안정을 위해 임대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5억 3천만 원에 전세 살고 있는데, 이번에 주인이 7천만 원을 올려달라네. 주변 시세가 6억 3천만 원이니 비싼 건 아닌데 뭔가 억울해.”

“5% 상한제 시행됐잖아요. 말씀해보셨어요?”

“응. 그런데 이번에 5% 올릴 거면 2년 후에는 나가 달래. 대신 7천만 원 올려주면 2년 후에 5%만 인상하는 조건으로 계약 갱신하겠대. 법을 피해 갈 수 있나 봐.”

“사실 계약자 이름을 배우자 등으로 바꾸는 식의 방법으로 피해 갈 수 있긴 해요.”

“아내랑 애들이 지금 집에 계속 살고 싶어 해. 결국 7천만 원 올려줘야 하네? 아니, 그럼 법은 도대체 왜 만든 거야? 괜히 억울해지게.”


성남시 분당구의 아파트에서 전세 사는 고향 선배와 퇴근길에 나눈 대화이다. 마음은 법보다 더 힘이 세다. 7천만 원을 올려주는 것과 5% 인상을 고집하는 것 중에 선배의 마음이 편안한 선택은 어떤 걸까? 법을 내세워 권리를 주장하며 싸움을 하기엔 삶이 너무 고달파진다. 그럼에도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고?


그럼 향후 4년 간 비용 총액을 계산해 따져보면 어떨까?



고향 선배가,


1) 7천만 원을 올려주는 걸 선택한 경우, 비용 총액은 1,020만 원이다.


3% 이율로 우선 7천만 원을 대출받고, 2년 후 6억 원의 5%인 3천만 원을 추가로 대출받아 총 대출금액은 1억 원이 된다. 4년 간 이자비용 총액은 1,020만 원(처음 2년 간 7천만 원에 대한 이자비용 420만 원 + 다음 2년 간 1억 원에 대한 이자비용 600만 원)이다.


2) 5%만 올린 뒤 2년 후 이사하는 경우, 비용 총액은 1,274만 원이다.


3% 이율로 대출을 받아 우선 5%인 2,650만 원을 올려준 뒤 2년 후 추가로 새로운 전셋집(6억 3천만 원)으로 이사하기 위해 7,350만 원을 추가로 대출받아 총 대출금액은 1억 원이 된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1,274만 원(처음 2년 간 2,650만 원에 대한 이자비용 159만 원 + 다음 2년 간 1억 원에 대한 이자비용 600만 원 + 중개수수료 315만 원+이사비 200만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1,020만 원 vs 1,274만 원. 어느 경우든 다음 2년 간은 1억 원에 대한 이자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게다가 이사비와 중개수수료는 일시불이다. 집을 알아보고 이사를 하는 수고로움까지 더하면 그 차이는 더 커질 것이다. 심지어 최근 은행의 대출이자는 2.5%도 채 되지 않는다. 더구나 지금 6억 3천만 원인 전세도 또한 5% 올라 6억 6천만 원은 돼 있을 거 아닌가.


고향 선배에게 선택권이 있을까?



이보다 앞서 수원시 영통구의 아파트에 전세 사는 후배의 아내에게도 비슷한 문의가 왔었다.


임대인 측에게 전화가 왔는데, 대뜸 보증금을 1억 원 올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현재 보증금은 1억 4,500만 원이었다. 이 후배 부부도 결국 1억 원을 추가로 대출받기로 했다. 최근 전셋값이 너무 올라 2억 4,500만 원으로도 구할 수 있는 전셋집이 많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지만, 가장 큰 이유로 집을 알아보고 이사할 삶의 여유가 없다는 점을 꼽았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데다 세 살배기 딸아이를 키우기에도 힘이 들고 벅차기 때문이란다.



“법? 얼어 죽을 법은 무슨 법. 그거 공부해서 임대인이랑 싸울 시간에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해서 이자비용을 마련하는 게 낫다.”는 사람들. 정부가 임대인과 임차인의 상생관계를 깨버리자 나타난 인재(人災)의 피해자들. 이들의 마음을 풀어줄 창구는 현실세계에 있긴 한 걸까.


임대인의 마음은 어떠할까? 법을 어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라면 불법이 아닌 범위 내에서, 편법으로라도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하는게 나약한 인간이지 않을까.


임대인들은 최근 ‘지금이 올리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더 못 올릴 수 있다’는 공포심에 한껏 예민해져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듯하다. 규제가 없는 상황이라면 시장 상황에 따라 언제든 올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바쁜 사정이 있다면 지금 당장 전세보중금 인상을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나중에 한꺼번에 올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임차인의 조건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5% 상한제로 인해 지금 올리지 않으면 앞으로는 매 계약 때마다 남들보다 손해 보는 상황에 직면해야 한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세금 등 정부의 규제로 인해 그나마 있는 재산도 모두 날릴 판이다. 갑작스럽게 임대사업자의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화됐듯 어떤 규제가 어떻게 또 나올지 모른다. 그렇다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전세 보증금을 올려야 한다. ‘패닉-UP'!!


더구나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선 임대인도 잘 알고 있다. 이자비용, 중개수수료, 이사비용 등 계산을 안 해보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임대인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시장 상황도 좋지 않다. ‘전세 주고 싶은 마음’보다 ‘전세 살고 싶은 마음’이 훨씬 많다. 실거주자를 양성하는 정책 기조도 한몫했다. 임대인들은 실거주하지 않는 주택에 한해 전세를 준다. 실거주 목적이 아닌 주택 소유자를 두드려패는 정책 기조로 냉각 효과로가 나타나 전세가 가능한 주택의 수가 점점더 줄어들고 있다. 아직 자가가 없는 임차인들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해 주택을 살 엄두도 내지 못한다. 주택이 없는 사람들은 전세를 선호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임대인은 임차인보다 우위에 있다.


시간도 임대인 편이다. 5%보다 더 올린 경우 행정조치 또는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이는 절차가 필요하다. 임차인이 위법한 임대인을 신고하고, 행정관청이 위법여부를 솎아내고, 행정조치를 내리고, 임대인이 불복해 재판까지 간다면 2년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았다. 임차인은 그 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까? 이정도라면 임대인의 ‘패닉-UP'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다.


마음에 닿지 못하는 정책들이 되레 마음을 부수고 있다. 임대인의 마음도, 임차인의 마음도 모두 부서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만 봤을 때 전에도 있을 법한 상황임에도 억울함을 느끼게끔 만들고 있다는 점이 뼈아프다.


한 친구가 말해준 비유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 사회는 중력을 지니고 있는데,

중력의 힘이 더 강해지면,

'위에 있는 사람'은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겠지만,

'아래에 있는 사람'은 깔려 죽는 고통을 느낀다고.

그래서 정부가 '위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리려 중력을 높이면 높일수록,

'아래에 있는 사람'은 고통만 더 커질뿐 행복해지지 않는다고.

'고(高) 중력 사회'의 피해자 또한 결국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고.


임대인과 임차인으로만 양분했을 때,

임대인이 우위에 선 상황이라면,

임차인이 '아래에 있는 사람' 아닐까?


겨울이 채 오기도 전부터 시린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패닉-바잉’보다 더 아픈 ‘패닉-UP'이 불러일으키는 바람이다.


마음이 부서지고 있다.

이전 08화 명품 브랜드 '테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