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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18. 2020

꼬리만 쫓다 산으로 간 '부동산 정책'

[마음의 마음] 규제 필패(必敗), 규제보단 배분에 집중할 때.

코로나-19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완전 종식’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코로나-19 감염자를 모두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종 숙주를 찾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사회적 동물의 숙명이다.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감염자들이 지나온 길만 추적해 그나마 감염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검사한 뒤 숙주를 솎아낼 뿐이다. 과거에만 집착하는 건데, 이 방법으론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또 다른 예로, 범죄자를 검거할 때는 어떨까? 경찰이 범죄자가 지나간 길만 따라간다면 잡을 수 있을까? 적어도 예상 도주로를 확인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예측해야만 검거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번 정부가 전과 다른 ‘부동산 정책’을 내세우면서, 일부 마음들을 바이러스 또는 범죄자와 같이 취급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주택자 또는 법인 등이 그렇다. 그리고 정부와 여당은 이들을 박멸 또는 검거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때마다 바이러스이자 범죄자로 지목받았다는 마음들은 생존을 위해 더욱 발버둥 치며 정부를 포위망을 따돌리고 있다. 그러면 정부는 이들의 흔적을 추적해 새로운 정책을 발표한다. 이런 소모적인 추격전은 집권 내내 계속됐다. 3년 동안 무려 23번의 각기 다른 정책을 쏟아 냈으니, 약 34일마다 한 번 꼴로 부동산 정책이 발표된 셈이다. 한 번 발표할 때마다 여러 개씩 발표했으니, 이틀에 한 번 꼴로 정책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들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쏟아낸 정책들이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부동산 시장 내 불확실성을 키웠고, 가격 급상승을 주도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책들이 애초에 실현 불가능하거나 현실적이지 못한 데다가, 효과도 뚜렷하지 않으며, 효율성도 떨어지고,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는 등의 지적도 나온다. 심지어 헌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상도의에 어긋나 도덕적이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까지 있다.


여당 유력 정치인들은 정책의 효과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정책 실패의 책임을 다주택자 또는 법인에게 돌리는 모순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책이 효과를 거두고 있으나 1% 부족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당대표 후보, 차기 유력 대통령 후보도 이 같은 취지의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부동산 가격은 여전히 집권 전보다 안정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권위의 전문가라는 사람들까지 동원돼 만든 정책일 텐데 이런 ‘개차반’ 신세를 면치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이 정도라면 예산, 행정력뿐만 아니라 정성도 많이 들였기에 마땅히 ‘차반’ 대우는 받아야 맞다. 최소한 본전 생각나진 말아야 하지 않나.


과거를 쫓고 있기 때문이다. ‘Evidence-based Policy'가 전 세계 정책학의 주된 기류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정책도 이를 추종하는 분위기다. 근거를 기반으로 만드는, 과거에만 의존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과거의 통계를 활용한다. 당연히 시장에선 이미 한물 간 내용들이다. 정책? 아~ 옛날이여. 이런 상황에서 바이러스나 범죄자라고 규정한 마음들을 박멸 또는 검거할 수 있을까?


응, 없다. 과거의 데이터로 만든 정책은, 지난주 로또 1등 당첨번호가 이번 주에도 1등 당첨 번호이길 바라는 것과 같다. 김포를 규제지역에서 제외한 뒤 뒤늦게 수습한 사건은 한 편의 코미디였다


23번의 정책 발표 순간마다 다주택자들은 정책 사이사이로 빠져나갔다. 이들이 잘못됐다고? 이들에겐 생존이 달린 문제이다. 더 많이 벌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이들에겐 일생이 걸린 문제였고, 잡히면 죽음 말곤 없다. 소멸한다.


사실 생존이 달린 문제는 애초에 규제 정책이 거의 불가능하다. 생존보다 덜하다는 마약이나 도박도 '완전 박멸'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정부의 정책이다. 하물며 생존의 문제에 규제정책이 유효하다고 믿는 게 한편으론 순진하게 느껴진다.


부동산은 생존이 달려있는 문제다. ‘의식주’ 중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주’에 해당한다. 오죽했으면 세계적인 석학들도 자신의 저서에 개인이 절대 허물 수 없는 마음속의 계정 중 가장 꼭대기에 부동산 자산이 위치한다고 적시하였을까.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을 마주해도 부동산은 가장 마지막까지 팔지 않고 소유하고 있는다.


오늘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 조선시대 때도 한양에 집을 가진 자가 평안감사로 임명되면, 한양에 있는 집을 팔지 않고 세를 줬다고 한다. 한 번 팔면 사실상 살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단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정부가 지목했다는 바이러스이자 범죄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쾌쾌 묵은 찐 화석 같은 존재인 모양이다.


부동산은 애초에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오직 혜택을 제공하는 정책만 가능할 뿐. 비슷한 예를 먼저 들어보자면,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는 상황에서 마스크가 있는 사람에게는 마스크를 주는 정책은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반면, 마스크가 없는 사람에게는 마스크를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마스크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빼앗아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는 정책을 발표했다고 해보자. 순순히 빼앗기겠는가. 이미 확보한 사람들은 맨틀까지 땅을 파서라도 빼앗기지 않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새롭게 공급하는 마스크에 한해 없는 사람에게 소량씩 먼저 나눠주는 경우 소동은 덜할 수 있다. 이미 가진 자도 소진될 경우, 순번에 의해 받으면 되기 때문에 혼란은 비교적 적다. 우리는 이미 같은 정권에서 이를 경험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이미 갖고 있는 사람들 것을 내놓으라는 건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갖고 있는 사람들 걸 없는 사람들 몫으로 내놓으라니. 누가 순순히 내놓고, 내놓는다 한들 손해보고 내놓겠는가. 본인이 지금까지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겪은 고초까지 모두 가격에 담아 내놓는 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정부의 정책에 순순히 따라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정책 입안을 위한 마음에 대한 공부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갖고 있는 사람들의 것을 빼앗기보다는 아직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새로 가질 수 있게 하는 정책이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거라면 하나라도 더 많이 가지려 싸우지도 않을 것이다.


마음을 살피면 방향을 정할 수 있다.

가지지 못한 마음을 굽어 살피려 시작한 정책이었다면, 방법이 완전히 잘못됐다.


"투기 필패"라고? 규제가 필패이다.


더 늦으면 안 된다. 부동산 정책은 생존이 달린 문제를 다루고 있다.

빼앗고 옥죄기보다는, 나눠주고 보살피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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