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곳에]를 쓰면서
가족
가족이란 사전적 의미는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 사이를 말한다. 하지만 꼭 등본상에 함께 있는 것만 가족일까?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작가가 생각하는 가족이란 함께 밥을 먹고 안부를 묻고, 희로애락을 함께 할 수 있는 사이가 바로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미소는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의 사망으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잃었다. 그런 미소에게 가족이 되어 줄 누군가를 만들고 주고 싶었다.
미소
미소는 세상과 단절된 체 홀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녀가 세상에 나온 이유는 오랜 은둔생활에서 가져온 외로움 때문이었다. 외롭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긴 시간 홀로 있으면서 시간, 계절 모든 것에서 동떨어진 채 나온 세상은 겨울이었다. 지독히 추운 날씨였음에도 짝이 다른 슬리퍼, 맨발, 철이 다른 옷까지 그녀는 세상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없는 것 같다. 그런 그녀에게 명호는 작은 변화였다. 그가 자기 삶의 동아줄인 걸 알면서도 거부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녀 자신도 모를 것이다. 사랑을 알아가기엔 현실이 버거운 삶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변화는 명호의 지속적인 사랑도 있지만, 그녀 역시도 다시 세상에 나오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명호
명호는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남자다. 번듯한 직장을 다니고 있고, 두 누나와 부모님 아래 행복하게만 자랐을 것 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미소에게 호감을 느끼고, 선의를 보이자 미소는 그를 거부한다. 명호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평범한 삶을 가진 이를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남부러운 것 없는 명호에게도 숨은 어둠이 있었고, 그 어둠을 꺼내기까지 미소의 헌신적인 믿음이 필요했다. 명호는 어둠 속으로 뛰어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그 용기를 준 사람이 미소인 것이다.
명호의 母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명호의 어릴 적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어야 했던 엄마의 입장에서 미소는 다시 불행을 가져올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어쩌면 미소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어떤 이라도 아마 100%로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또다시 그런 일이 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진정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보이는 것이다. 명호와 명호 母 사이에 오해와 감정의 골을 풀고 나고서 비로소 보였을 것이다. 미소라는 아이에 대해서 말이다.
용서와 화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미소는 세상에 홀로 버리고 간 어머니를 향한 원망을 하고 있었고, 차마 놓을 수 없음에 그림자를 붙잡고 살고 있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긴 세월 동안 그녀의 삶은 멈춰버렸다. 그러나 아무도 두드리지 않은 문을 명호가 자꾸만 두드린다. 무시하려고 할수록 더욱 또렷하게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미소는 결국 문을 열었다. 그 이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겁도 나고, 다시 문을 닫았을 때 느낄 외로움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명호는 완벽하게 자신의 역할을 소화해 냈다. 미소 또한 어둠을 마주하기로 한 명호에게 든든하게 있어 줌으로 그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세상에 모든 사람에게는 어둠과 빛이 존재한다. 항상 빛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내면에는 어둠이 있다. 누구에게는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크고 풀기 어려운 수학 문제처럼 남아 괴롭힌다. 보고 싶지 않아서 안 보는 것이 아니라 차마 다시 그 힘들고 아팠던 순간을 마주하는 것이 겁이 나서 못 하는 것이다. 미소에게 명호가 명호에게 미소가 그랬던 것처럼 그 둘은 서로의 어둠을 마주했을 때 쓰러지지 않게 다시 뒷걸음치지 않게 곁에 있어 주었다. 신뢰를 넘은 믿음으로 지켜주었다.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는 신뢰와 믿음으로 다져진 가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