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석할 수밖에 없었던 3일

번외

by 그래

원래는 7월 16일부터 7월 17일까지 일정이었다. 근데 하필 올라가는 날 전국적으로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처음 예약했던 기차는 대전까지만 운행하고, 그 뒤로는 운행을 안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출발 5분 전에 예약 취소를 했다. 기상 악화로 인한 취소라 수수료가 나오지 않았지만, 문제는 다음 기차가 없었다. 나야 어차피 학원에만 가는 사람이라 안 가도 되었지만, 출근하는 딸과 기숙사로 돌아가야 하는 아들 때문에 발만 동동 거리게 되었다. 그때 구제주 같은 남편이 일단 대전까지 오는 기차라도 타라고 연락이 왔다.


"내가 갈게. 대전까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건 서울도 매한가지였다. 그러니 기차가 대전밖에 못 가는 거였다. 그런데 고민없이 온다는 말에 우리는 다시 기차를 탔다. 다행히 고민하는 승객 덕에 기차는 출발하지 않았고, 자리에 앉아 그제야 기차는 출발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삼랑진 역에서 기차가 뒤로 후진하기 시작했다. 밀양 역 인근에 산사태가 일어나 철로가 막혀 상행선과 하행선 모두 막혔다는 것이다. 수습이 끝나면 KTX를 먼저 우리는 세 번째 정도 순으로 출발할 거라고 했다. 말과는 달리 시간은 한참 흘렀다. 벌써 1시간을 가뿐히 넘기고 있었으나 우린 제자리에서 1cm도 움직이지 못했다.


대전 인근까지 온 남편은 어디냐고 연락이 왔다. 우린 삼량진이라는 말과 함께 사정을 설명했다. 무전기로 소통하는 역무원은 역내를 돌다가 우리가 앉은 역에서 한숨 돌리고 있어서 궁금한 승객들의 질문 세례에 답을 주고 있은 덕에 현재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엄마, 기차가 후진했어."

"그래? 언제?"

"아까."


오랜만에 여행으로 많이 걸은 탓에 피곤했던 난 기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잠들었다. 반면 딸은 출근 걱정으로 깨어있던 탓에 기차 상황을 아주 잘 알았다. 후진하던 기차를 처음 본다는 딸은 오늘 안에 갈까? 회사에 전화해야 하나? 온갖 고민으로 작은 머리에서 연기가 나는 것처럼 보였다. 난 일단 사장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상황보고 연락드린다고 말하라 했다. 다행히 딸의 사장은 이 상황에서 딸 걱정을 해줄 만큼 좋은 분들이었다. 문제는 기차였다. 몇몇의 승객은 종착역이 밀양이라 택시를 탈 거라고 교통편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택시조차 지금은 불가하다는 답을 듣고, 가족과 지인에게 상황설명한다고 기차는 재난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난리도 아니었다. 하필 그 칸에 서울 가는 인원은 우리 셋이 전부였다. 어르신들이 다수였던 역내에서 다들 우릴 보며 혀끝을 차시며 걱정 한 마디씩 하시는데, 한 두 분이면 웃으며 받아줄 말이 열 마디가 되어가니 앉아 있는 게 고역이었다.


그렇게 다시 시간은 1시간을 더 넘기고 있었다.


"내려. 내가 갈게."


남편은 결국 잠시 나온 외출복으로 삼량진까지 달리기로 결정했다. 딱 할 말만 하고 끊는 남편이 참 멋있어 보였다. 역에서 내려 삼랑진 역으로 들어오자 가족을 찾아온 사람들과 환불 승객으로 정신없어 보였다. 남편의 연락을 받고, 먼저 아들 선생님께 연락했다. 선생님은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했지만, 최대한 아이에게 피해 가지 않게 처리하기 위해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기차 연착 소식과 상황을 첨부할 수 있는 자료를 말이다. 환불한 기차표는 연착 시간이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도착시간을 훨씬 넘겨 환불받은 환불기차표와 구매 기차표를 찍고, 현재 기차 시간 연착 시간이 나온 것을 캡처 보냈다. 그 사이 기차는 삼랑진을 출발한다는 안내문이 흘러나왔다. 취소한 몇 승객이 다시 표를 끊고 들어간 후 30분 후 기차는 삼랑진 다음 역에서 멈췄다. 운행 중지가 선언되었다.

Screenshot_20250717_182910.jpg 당시 운행중지 안내문


나 역시 난생처음 비 난리에 삼랑진 역에서 남편이 오길 기다렸다. 평소 운행이 끝나면 꺼지는 역사는 난데없는 폭우로 오갈 곳 잃은 몇 승객을 위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남편은 밤 12시가 되기 30분 전, 도착했다. 때마침 멈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동안 화장실 한번 들렸다던 남편은 집에서 입는 옷 그대로였다. 운동화도 아닌 슬리퍼 차림으로 잠시 나온 외출이 1박 2일 여행이 되고 말았다. 우린 근처에 숙소를 잡고 싶었지만, 우리 같은 사람이 많아 그런지 잘 곳이 없었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빈 방을 찾은 우린 난생처음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왔다. 침대가 8개씩 놓인 3개의 방과 세 개의 킹 사이즈 침대가 놓인 방이 하나, 화장실이 무려 3개나 있었다. 네 식구가 보내기에 무척 큰 방이었으나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했다. 사장은 원하면 집 앞에 마당 같은 옥상에서 고기 구워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너무 지친 우린 배달을 선택했다.


아귀찜을 주문한 남편은 생각보다 맛있는 아귀찜에 소주가 달다고 빗길에 집중한 머리와 가속과 브레이크를 오갔을 페달을 밟은 다리와 발에 고통을 잊었고, 밥 대용으로 주문한 떡볶이와 꼬마 김밥을 먹으며 푸짐한 저녁을 보냈다. 하나, 둘 젖은 옷을 넓은 거실에 벗어두고 씻었다. 아이들은 넓은 두 침대 방을 번갈아 오가며 어디서 잘지 고민하더니, 낯선 집이 무섭다며 한 방에서 나란히 1인용 침대가 푹신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누이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방에서 오늘 있었던 일담을 말하는 두 아이의 목소리는 웃음이 한가득이었다.


반면 남편은 식사 중 반주가 수면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이내 잠들었다. 넓은 침대에서 편히 자라고 그 옆에 있는 1인용 침대에 누워 불을 껐다. 막 자려는데 침대 출렁한다. 잠든 줄 알았던 남편이 굳이 좁은 내 옆으로 와서 나를 꼭 안고 잠든 척을 한다. 그리곤 빗길을 뚫고 데리러 온 자신을 칭찬해 달라며 칭얼대는 아이같아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생했다 말하니, 또 웃는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생기는 여유는 잊었던 연애세포도 깨우고 있었다.


다음날 딸의 출근을 위해 남편은 새벽부터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난생처음 와본 스위트룸에서 딱 8시간을 보내고, 그중에 7시간은 잤다. 다시 서울로 출발한 우린 점심때 출근하는 딸이 다니는 회사에서 멈춰 내려준 후 바로 아들의 기숙사로 출발했다. 짐을 가져와야 했기 때문이다. 방학을 맞은 기숙사는 조용했고, 약속한 오후 3시를 2시간이나 남기고, 아들은 기숙사에서 짐을 빼 차에 탔다. 190에 가까운 아들의 두 손에 이불이 든 가방 하나와 각종 짐이 든 커다란 가방 하나가 들려 있었다. 내가 겨울 이불을 정리하기 위해 산 특대형 부직포 가방은 아들이 방학 때마다 가져오는 잡다한 모든 짐이 들어가 좋다고 챙긴 거였다. 내가 들면 바닥에 끌리는 부직포 가방이 아들이 드니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치마폭에 숨던 작은 아이가 어느새 저리 컸다. 그만큼 나도 늙었다.


오후 3시, 드디어 우리 집으로 왔다. 남편은 약속을 지켰다. 집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날 반긴 건 바로 아디패드와 펜이었다. 먼저 포토샵을 열어 펜을 그어봤다. 잘 그어지는 펜을 보며 짐부터 풀었다. 그리고 바로 쉬는 3일 동안 무슨 수업을 했는지 다른 학생들의 게시글을 통해 간접 공부를 했다. 무테 일러스트와 색채까지 한 것을 보고 월요일에 가면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문득 걱정이 되었다. 일요일 저녁, 혼자라도 무테 일러스트를 그려보리라 다짐하고 길고 길었던 여행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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