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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터러시 멘토 Aug 12. 2022

엄마의 '동심'


어린 시절 나란히 붙어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코앞에 둔 2층 집에서 살았습니다. 2층 주방의 쪽창을 열면 학교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집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집이 가장 가까운 학생 중 하나였지만, 등교는 가장 늦었습니다. 일찌감치 준비해서 멀리서부터 부지런히 오는 친구들과 있는 여유, 없는 여유 다 부리며 천천히 쉬엄쉬엄 가는 자신을 비교하며 초등학생이지만 삶의 역설 하나를 배웠던 것 같습니다. 빠른 토끼가 느린 거북이한테 지듯이, 집이 학교에서 가까울수록 지각할 위험이 높다는 것, 시간과 거리의 역설을 말입니다.


학교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집은 다른 집들과 조금 다릅니다. 아이들의 등굣길, 하굣길, 하루에 몇 차례씩 시끌벅적합니다. 그리고 평일에도, 휴일에도 학교 일정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가 시간에 맞추어 들려옵니다. 어머니는 학교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삼 남매가 지금쯤 뭘 하고 있겠구나 짐작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의 소리를 좋아하셨습니다. 초등학교 학교 운동장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낮은 재잘거림이 참 아름답지 않냐고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아이들이 모여 있으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유심히 듣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조금 거리를 두고 아이들의 소리는 들어보면 어른들의 소리와 달리 경쾌한 작은 주파수로 모아져서 정말 말 그대로 ‘재잘재잘’ 거립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생동감 속의 평화가 느껴집니다.  


학교 근처에 살면 학교 담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계절마다 개나리, 장미가 피었습니다. 어머니는 가끔 꽃을 보고 시를 짓기도, 아이들을 보며 동요나 가곡을 흥얼거리기도 하셨습니다. 다소 무뚝뚝하신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마음속에 어린 시절을 품고 계셨고, 어릴 적 누렸던 동심을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엄마의 껌딱지로 삼 남매 중에 가장 어머니의 ‘동심’에 영향을 받고 자랐습니다.


요즘 여러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어머니’의 ‘동심’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롭게 발견합니다. 아이들의 세계로 한 발 들어와 계신 부모님 아래에서 크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한결 여유가 있습니다. 요즘 어른들 편에서는 아이를 키우기가 너무 어렵고, 아이들 입장에서는 ‘어린 시절’을 천천히 여유롭게 향유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뒤처지면 평생 뒤처지는 인생을 살 것 같은 경쟁의식이 우리에게 오랫동안 내면화되어 있습니다. 교육열이 높은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가진 것이 사람밖에 없는 작은 나라가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어린 시절의 의미는 점점 좁아져 갔습니다. ‘성장’의 시간으로만 바라보는 부모님, 선생님, 어른들의 가정과 학교와 사회 안에서 보내는 아이들에겐 세상이 노 키즈존일지도 모릅니다.


아파트촌에 둘러싸여 지내는 것. 대형 마트에서 대형 장난감들을 사는 것. 큰 모니터, 작은 모니터 할 것 없이 감각을 자극하며 몰두하며 노는 것. 도시 아이들의 삶은 ‘어린 시절’이라는 의미를 생각해볼 때 각박함 그 자체입니다. 도시에서 학원을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낸 다 큰 아이들과 시나 소설을 공부할 때면 작가들의 자연에 대한 찬미,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 대해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것을 발견합니다. 틀에 짜인  생활 너머, 자연으로, 과거로, 사람으로 ‘생각’의 물꼬를 트기가 어려운 현실입니다. 아이들은 디지털 세상이 훨씬 더 친숙하고 재미가 있습니다. 생활은 짜여 있지만 디지털 세상에는 자신의 생활에는 없는 생생함과 활력, 자유가 있으니까요.


짜인 생활 가운데 부모와의 대화도 아이들의 일상, 눈에 보이는 행동에서 끝이 납니다.


“학교에서 별일 없었어?”

 

“학원 다녀왔어?”

 

“학원 몇 시에 가?”

 

“학원 숙제 다 했어?”


이러다 미안해진 부모님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으로 대화를 옮겨가기도 합니다. 함께 게임도 해보고, 함께 덕질도 해 줍니다. 그러다 다시 아이가 해야 할 공부 이야기로 돌아오고 맙니다. 그러니 아이에게 부모는 인기가 없습니다. 아이가 만나는 풍부한 세계와 달리 부모는 너무 단순하고 삭막합니다. 사실 부모는 본인들이 세계가 복잡해서 아이들의 세계는 단순하며, 또 단순하길 바랍니다. 아이들의 복잡한 세계에 발을 내밀 여유가 없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몸으로 때우기도 잘했는데, 커가면서 점점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다시 엄마의 ‘동심’으로 돌아옵니다. ‘동심’의 다른 이름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음악을 즐기고, 자연을 음미하고, 복잡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은 세상사에 모든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조금은 아이처럼 마음껏 웃고, 울고, 떠드는 순수함일 것입니다. 얼마 전 이제 50대 중반인 어른들이 시골의 여름이 만연한 자연 속에서 비를 맞으며 ‘너무 행복하다’ 시며 열심히 뛰어다니고 돌아와서 보여주신 말개진 얼굴빛이 떠오릅니다. 어릴 적 누렸던 자연 속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도시가 줄 수 없는 행복을 만끽한 기운이 저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 자연을 모르는데, 이 행복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잠깐 동안 답답해하다가, 그 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에 별들을 보고 너무 행복해하던 아이, 또 그 속에서 요즘 SNS에서 유행한다는 플래시 사진을 열심히 찍어대는 아이를 통해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 이런 여유를 찾을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좀 더 자주, 가까운 일상에서 ‘동심’이 깃든 행복을 발견하면 좋겠습니다. 생활 곳곳에 시가 ‘광고 문구’에도 있고, 음악이 ‘랩’과 ‘k-pop’에 있고, 이야기가 ‘웹툰’에 있습니다. 아파트 곳곳에 아름다운 나무와 새와 꽃이 있고, 비와 무지개도 있습니다. 내가 먼저 우리의 일상 곳곳을 ‘동심’이 있는 눈으로 살펴 누린다면, 아이들에게 할 말도, 들을 말도 많을 것 같습니다. 경쟁과 자본의 논리가 녹아 있지만 세상에 좀 더 닳고 닳은 면도 많지만, 조금만 찌꺼기를 걷어내고 그 속에 숨거나 가라앉아 있은 우리의 ‘해맑음’을 누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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