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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터러시 멘토 Jul 21. 2022

딸 둘, 나 하나

함께 독서

서른이 훌쩍 넘어도 결혼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이왕에 태어난 김에 말이 통하는 예닐곱쯤 되는 딸의 친구 같은 엄마는 한 번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는 자신의 미래를 꿈꾸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건강한 20, 30대를 보내지 못해서인지, 저 멀찌감치 떨어진 ‘지혜로운 노인’은 꼭 될 거라고 자신에게 암시를 걸기를 좋아했습니다. 제 딴에는 다소 진지했던 ‘지혜로운 노인’과 견주어보면 ‘어린 딸의 친구 같은 엄마’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딸을 둘씩이나 갖게 되고, 그 예닐곱 되는 딸의 엄마가 두 번씩이나 되고 보니 스쳐갔던 생각을 다시 붙잡게 됩니다. 우리가 품고 있는 이미지 한 컷, 아니 길어봤자 몇 초짜리 이미지에 인생이 좌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봅니다. 물론 그 이미지 바깥에는 이미지로 치환될 수 없는 엄청난 현실이 잔뜩 도사리고 있지만 말입니다.


여하튼, 이미지적으로는 어린 딸의 친구 같은 엄마라는 꿈을 이룬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미지 바깥의 현실은 좀 달랐습니다. 현실은 친구 같은 엄마가 되기에는 일단 나이가 너무 많았고, 가용할 수 있는 시간과 물질도 턱없이 부족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체력이 너무 바닥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친구 같은 멋진 여유를 가진 생활은커녕 하루하루를 겨우 이어가는 힘든 엄마의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쁜 남편과 더 바쁘시거나 투병 중이신 조부모의 빈자리를 혼자 채워야 했고, 산후풍을 오랜 시간 동안 겪으며 육아 이외에도 해야 할 많은 일들에 신경을 쓰고 마음을 써야 했습니다.


시간이 더 흘러 남은 옛날 사진 속에서 딸 둘, 나 하나의 관계를 생각해봅니다. 이제는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미안한 마음도 옆으로 살짝 밀어놓고, 우리들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만일 친구가 ‘이해’와 ‘함께 함’으로 정의 내려진다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아이들의 눈물과 웃음, 한숨의 의미를 알고 조금은 나눈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한가운데 딸들과 함께 나눈 '책'이 있었습니다.    





한글을 다 깨치고 나서도 아이들은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어달라고 졸라댔습니다. 첫째와는 잠자리 독서로 친구 같은 엄마가 되었다면, 둘째는 낮에도 혹은 저녁에도 친구 같은 엄마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책을 읽어 달라고 졸라댔습니다. 잠자리 독서는 첫째에게 맞춰져 있어서 세 살 터울의 둘째는 꼽사리였던 것입니다. 둘째는 언니가 없는 낮 시간 독서로 엄마와 책을 둘 다 독차지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그 결과 때문인지 둘째는 첫째에 비해 한글도 늦게 떼고, 자립 독서도 첫째에 비해 훨씬 늦어졌습니다.


저는 한글을 늦게 떼어도 책 속의 풍부한 의미를 음미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있기는커녕 글자에 사로잡히지 않고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에게 오랫동안 스트레스나 부담감 주지 않고 줄기차게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낮 독서에 아이들이 '엄마'를 써먹는 것을 보며, 잠자리 독서에 익숙한 아이들은 엄마를 ‘책 읽어주는 사람’으로 여기고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잠자리 독서가 늦은 시간, 어두운 방, 이불과 베개에 둘러 싸여 듣는 포근함이 있다면, 함께 읽는 낮 독서는 나란히 앉기도 하고, 나란히 눕기도 하고, 함께 과자를 나눠 먹기도 하고, 장난도 치는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이 있습니다. 그림책은 함께 그림도 보면서 읽으니 들을 맛에 볼 맛이 더해집니다. 아무래도 밤보다 에너지가 많은 엄마는 한 권을 읽더라도 요리조리 재미난 궁리도 해보고 여러 가지 순발력을 발휘합니다. 목소리도 바꿔보고, 말투도 이상하게 만들어봅니다. 그러다 아이가 좀 자라 함께 읽기가 가능할 때면, 엄마는 다른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합니다.  


“네가 따옴표 안에 있는 대사 읽을래? 엄마가 나머지 읽을게.”

 

“네가 이쪽, 엄마가 이쪽 어때?”

 

“이번에는 그림만 보고 상상해 보자.”

 

“숨은 그림 찾기는 어때?”

 

목을 아끼느라 생각한 잔머리가 꽤나 다양한 독서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결국은 책을 평소대로 읽어달라고 하는 아이. 목을 아끼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함께 읽기를 하며 책과 친해지는 것을 여러 아이들의 한글책 선생님, 영어책 선생님이 되고 나서도 계속 활용해 왔습니다. 아이들이 책 읽기를 즐거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책의 저자와 대화하는 ‘진짜 독서’를 하기까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 많은 훈련, 적절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두 딸과 나 하나의 독서 시간은 물론이고, 여러 아이들과 나눈 '함께 독서'를 통해 절감했고, 지금도 체감하고 있습니다.  

 

책을 함께 나눠 읽다 보면 저절로 아이를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어떤 것을 가장 좋아하는지, 어떤 것은 싫어하는지, 또 어떤 것에는 마음이 그렇게 넓을 수가 없고, 어떤 것은 대놓고 무조건 혐오하는지, 어떤 것을 무서워하는지, 어떤 표현을 특별히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등등. 함께 읽으며, 일상에서는 나눌 수 없는 다양한 이야기들, 수많은 인물들, 다채로운 사물들에 반응하는 아이를 보게 되고, 아이와 가까운 친구가 됩니다.


딸 둘, 나 하나의 친구 관계는 이렇게 책들을 통해 풍부해지고 깊어져 갔습니다. 어른들의 세계에 익숙해왔던 지난 시간들, 옛날 아이 시절의 흐릿한 기억을 가지고 있던 엄마가 요즘 아이들의 세계로 뛰어 들어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밥 해주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공부시키고, 건강 돌보고, 학교 준비물 챙기고 등등 엄마의 역할은 매일매일 끝도 없이 반복됩니다. 이런 반복되는 일들 속에 엄마는 아이들을 책임져야 할 과제로, 때에 맞춰 자라야 할 생명체로만 볼 수 있는 함정이 놓여 있습니다. 어른인 나는 이렇게 감정적이고, 생각도 많고, 뭐가 딱 부러지게 정답이 잘 안 나오는 데 아이들은 나와는 다를 것이라 설정합니다.


책을 함께 읽으면 우리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이렇게나 복잡하고, 우리의 정신적 성장이 이렇게 대단한 것이고, 우리의 지식도 어느 것 하나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구나를 비로소 알게 됩니다. 아이들의 삶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구나, 우주에 단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구나를 깨달으며 비로소 아이들의 하루하루의 삶과 성장에 '인간적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현실의 여러 한계를 넘어 딸 둘과 나 하나 친구가 되게 한 어린이책들을 그래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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