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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터러시 멘토 Aug 14. 2022

함께 읽는다는 것

문해력의 비밀


4학년, 글밥 많은 두꺼운 책도 뚝딱 읽어내는 둘째 아이가 여전히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아이는 분위기를 봐서 오늘은 엄마를 좀 오래 부려먹어도 되겠다 싶은 날에는 책을 더 많이 꺼내옵니다. 좋아하던 그림책들,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 등등. 엄마는 아이의 마음이 궁금합니다.

 

“엄마가 읽어주면 왜 좋아?”  

 

“엄마가 읽어주면 더 실감 나거든.”

 

“솔직히 말해봐.”

 

“진짜야... 그리고 편해.”


대답 한 번 시원합니다.

실감 난다... 편하다... 아이의 말을 곱씹어 봅니다.


얼마 전 중학교 3학년인 첫째와 아빠가 체질을 알아보러 한의원에 다녀왔습니다. 유독 몸에 열이 많아 더위도 많이 타고, 한 번 뻗친 열은 좀처럼 가라앉질 않아 밤에도 뒤척이길 잘하는 부녀가 열을 내리는 방법을 찾으러 간 것입니다. 그 김에 건강에 관련된 걱정거리를 다 펼쳐 놓았나 봅니다. 딸은 자기가 왜 숨이 자주 차는지, 왜 금방 피곤해지는지, 왜 더위뿐 아니라 추위에도 약한지 물어보았습니다. 한의사 선생님께서 아이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신 내용은 제가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문제의 원인이 ‘애기 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3년 정도 더 자라 어른 몸이 되면 지금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된다는 진단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뇌 발달도 전두엽이 완성되는 것은 25세 이후라고 했는데, 신체 발달은 겉만 보고, 그중에서 특히 키만 보고 다 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춘기의 뇌가 폭풍성장 중임을 알 때, 사춘기 아이들의 말도 안 되는 말과 행동에 대해 부모는 여유를 가지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처럼, 신체도 폭풍 성장 중이라고 하니 다시 한번 아이를 키우는 인내심을 장착한 착한 엄마, 아빠로 돌아옵니다. 아니 ‘옛날 같았으면 결혼도 할 나이’라고 하는 말은 이제 땅 속에 고이 묻어야 하나 봅니다.


책 읽기에 있어서도 아이의 성장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부모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많이 달라집니다. 한글을 쉽게 혹은 조금 어렵게 떼고 난 다음 부모들은 아이들이 이제 책을 마구마구 읽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해 버립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제 막 한글 글자의 발음과 글자 모양을 익혔을 뿐, 인간과 세상, 사고와 사물까지 모든 것을 담는 그릇인 책 읽기로 나아가기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 읽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글도 영어도 그 기초인 그림책, 어린이책 읽기를 오래 하면 오래 할수록 한 사람의 뿌리가 더 깊이 단단하게 성장한다는 것에 더 확신을 갖게 됩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인내심이 더 길면 길수록 아이들의 성장이 더 건강한 것처럼, 문해력에 있어서도 그 기다림의 시간은 가장 좋은 보약입니다.  


초등 고학년을 앞둔 4학년 아이도 저학년들에 비해 자기 힘으로 읽고 이해하는 범위가 많이 넓어졌지만, 글자를 해독하고, 뜻을 음미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데까지 집중할 힘과 능력이 어른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합니다. 글밥의 양으로 치면 거의 어른들 수준들의 책이니 그 책이 담고 있는 의미의 세계로 스스로 나아오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뇌 발달로 따지자면 어릴수록 언어발달을 주관하는 측두엽의 발달이 완성되지 않았으니 누군가 문자의 해독을 도와준다면 이해로 넘어오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또 초등학교 중학년인 3, 4학년 시기가 되면 그림책을 떼고 글밥 많은 책으로 넘어오는 시기라, 그림책을 통해 얼마나 많은 훈련이 되었나, 또 어떤 배경지식과 관심이 있느냐에 따라 개인차가 엄청 벌어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둘째가 엄마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오랫동안 졸라댔던 건 엄마와 함께 나눈 그림책도 좋고, 그 분위기도 좋아서 다시 어린아이가 되고 싶다는 마음 반, 읽어야 할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을 엄마의 목소리의 도움으로 편하게 들으면서 읽고 싶은 마음 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어른이 읽어주는 책은 문자해독이 자동인 것뿐 아니라, 그 어른의 목소리에 글의 맥락과 의미의 전달력까지 결합되어 아이들은 자기 힘으로 글의 뉘앙스와 상징을 즐길 여유, 저자의 생각과 논리까지 닿을 여유를 가지게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더 실감 나기도 하고, 더 편하기도 한가 봅니다. 판소리에서의 변사와 같은 역할, 미술관에서 도슨트의 역할까지도 책 읽어주는 사람이 담당할 수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책 읽기 풍경을 보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책을 실컷 읽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글밥 많이 없는 그림책이나 만화책만 보면 좋겠는데, 점점 재미없는 책으로, 온통 글자밖에 없는 책으로 자기를 떠미는 것만 같습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는 재미난 콘텐츠가 넘쳐나는데, 왜 재미없는 책을 읽어야 하는지 납득도 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무조건 해야 하는 아침 독서시간, 독서록 쓰기, 필독도서 읽기 등도 일기 쓰기만큼이나 제일 하기 싫은 활동입니다. 학원 숙제하기도 바쁜데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학년 올라가서 공부를 잘한다는 지식을 갖춘 부모님들, 선생님들의 잔소리가 듣기가 싫습니다.


그나마 이야기책은 재미가 있으니 무슨 내용이 전개될까 힘을 내어 읽을 마음이 듭니다. 내 마음과 닿아 있는 이야기이거나 황당무계해서 너무나 재미난 이야기에 아이들은 잘 빠져듭니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마음을 뺏고 있는 만화책 <흔한 남매>, 이야기책 <전천당>, <엉덩이 탐정> 시리즈를 보면 분명한 캐릭터, 기상천외한 설정, 흥미 위주의 빠른 전개를 특징적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책들을 끼고 낄낄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저렇게 놔둬도 되나 하는 고민에 빠진 어머니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좀 더 이야기 구조가 잘 짜여 있고, 주제와 내용에 더 깊이가 있어 생각할 여지가 많고, 모국어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책으로 아이들을 끌고 올 수 있는 책들도 많이 있습니다. <만복이네 떡집> 시리즈, <수상한 학교> 시리즈, 비룡소, 문학동네 수상작들. <몽실언니>,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처럼 오래된 우리 명작, 세계 명작도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함께 읽고, 또 엄마가 추천하는 책을 함께 읽어주는 함께 읽기로 사춘기에 들어가기 전 아이들과 사람 구경, 세상 구경을 하면 좋겠습니다. 이야기책에 몰두하는 아이들이라도 지식책 읽기는 어렵습니다. 또 거꾸로 지식책은 마구 읽히는데, 이야기책이 싫은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야기책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잠재력을 높여서 우리 마음을 키우고, 스토리 속에 들어있는 은유와 표현력을 누리는 것이라면, 지식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입니다. 지식책 읽기로 넘어가기 힘든 아이들, 혹은 지식책을 큰 구조나 맥락에서 보지 않고 파편적으로 먹는 아이들에게 지식책 읽어주기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높이는 것을 돕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단어에서 문장으로, 문장에서 문단으로 의미가 확장되는 책 읽기. 대사와 지문이 서로 협응 하며 넘나드는 이야기책, 개념과 개념이 서로 연결되어 설명되고 있는 지식책. 함께 읽다 보면 어떻게 나눠 읽으면 재미가 있는지 서로 찾게 됩니다. 어쩌면 가장 좋은 국어 선생님, 역사 선생님, 사회 선생님, 과학선생님도 됩니다. 물론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아이의 좋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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