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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순주 Apr 09. 2023

평범한 일상이 말해주는 것들

─서정아, 『이상한 과일』(산지니, 2014)


   서정아의 소설에는 외로운 사람이 늘 존재한다. 그녀의 첫 소설집 『이상한 과일』에 담긴 8편의 작품은 모두 고독에 붙들려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껴봄 직한 홀로 있음의 상태를 표현한다는 것은 그리 새삼스러울 것 없지만 그녀는 외로움을 직시하고 천착하면서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구축해 내고 있다. 외롭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냐마는 이를 빌미로 ‘인간은 누구나 외롭지’라는 식의 자기 위안을 삼거나 혹은 외면해 버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외로움에 사무쳐 몸부림치지도 않는다. 단지 외로움의 변주들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가면서 독자들 또한 그들의 고독과 조우한다. 이처럼 서정아의 소설은 외로움이라는 화두를 독자들에게 던짐으로써 독자들과 함께 있음의 상태를 자연스럽게 생성한다. 다시 말해 그녀는 존재와 관계를 보살피는 소설가이다. 그러나 그 관계가 온전하게 정립되지 못하는 것 또한 서정아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불안함, 두려움과 같은 감정들이 서로의 관계를 어그러트려 놓는다. 극단적으로는 스스로를 “박제”된 삶으로 가둬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둘 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풍뎅이가 지나간 자리」, 29쪽) ‘나’와 경의 불확실함은 관계의 끝을 예고하는 것이었으며, 이별은 박제된 경의 귓불로 확인되는 것과 같이 그로테스크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그들은 그저 외로움에 몸서리치지 않는다. 그 외로움은 어떤 흔적으로부터 발생한다. 「해산解産」에서는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가 ‘나’ 스스로를 외면하게 한다. 주인공 현주는 중학생 시절, 여느 하숙생들과 달리 ‘나’를 어른처럼 대해주던 하숙생 종현을 짝사랑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술에 취해 들어온 종현과 ‘나’의 엄마가 내 일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한순간의 욕망에 못 이겨 몸을 섞는 광경을 목격한 이후 ‘나’는 “모멸감”과 “상처”를 받고 가출하게 된다. 그날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현주는 사랑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두렵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엄마를 용서하지 못한 현주에게 사랑은 “어차피 내가 가질 수 없는 사람이니까 잃을 것도 없”(157쪽)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유부남인 재훈을 만나다 결별하고, 임신을 했지만 결국은 사산하게 된다. ‘나’는 해산하고 “오랜 미움과 원망을 털고” “다정한 친구 같은 모녀”(162쪽)가 되길 꿈꿨지만 “그런 생각마저도 이제 아무 의미 없는 게 돼 버렸다.”(144쪽) 이렇게 외로움은 두려움을 낳고 뒤틀린 관계들을 만들어낸다. 재훈과 현주의 관계가 정리되는 것뿐만 아니라, 현주와 엄마도 끝내 서로를 “모른 척”하고 떠나고 만다. 

   「빙하로 가는 날엔」 역시 정환의 후배 커플과의 만남으로 인해 ‘나’의 과거가 밝혀져 두 사람은 이별하게 된다. 민선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한 연애”는 세희와의 만남으로 산산이 부서져 버린다. 민선은 부모님을 여의고 큰아버지댁에서 지내오던 중 술에 취한 큰아버지에게 겁탈당한 후로 “침묵”하며 살아간다. 큰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는 ‘나’를 외톨이로 만들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들을 참고 견뎌온 ‘나’는 고2 수학여행 때 술기운에 경미에게 이 사실을 발설하게 되는데, 그 고백은 “큰아빠랑 자는 걸레년 김민선”(177쪽)이라는 화장실 낙서로 되돌아온다. 온기 충만했던 경미와의 기억은 “비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렸고, ‘나’는 경미 손을 커터칼로 긋는 사건으로 자퇴하면서 그 시절을 끝맺는다. “그렇게 열여덟 살의 봄날에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179쪽) 깊숙이 묻어둔 상처의 기억은 동창 세희를 만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고, 그것이 정환에게 전해지면서 둘의 관계는 결국 끝이 난다. 오랜만에 찾아온 긴 휴가에 모레노 빙하로 떠나려던 민선과 정환의 계획은 갑자기 찾아온 이별과 함께 무산되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해산解産」과 「빙하로 가는 날엔」은 과거의 상처가 극복되지 못하고 어긋난 관계를 만들어낸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소설의 결말과는 정반대의 제목을 붙여 그들이 가닿지 못한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소설 속 인물들은 외로움의 상처를 안고 있는 이들이며, 그들의 삶의 양태는 불안정한 관계로 드러난다. 「이상한 과일」에서 ‘나’는 아내와의 관계나 대화가 끊어진 상황을 못 이기고 여진과의 만남으로 이를 해소시킨다. “집에서 혼자 우울함을 견디고 있을 아내를 떠올리니 죄책감이 들기도 하였지만 여진의 어지러운 방 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움직이니 그런 생각은 곧 사라졌다. 어그러짐의 크기가 커질수록, 여진과 만나는 횟수가 늘어 갈수록 죄책감은 줄었다. 이젠 아예 무감각해지는 것 같았다.”(49쪽) ‘나’는 아내와의 관계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는 알지 못한 채 여진과의 관계를 지속한다. 그러던 어느 날 몸살 기운이 심해져 조퇴를 하고 귀가하던 중 그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내의 교성”을 듣고 충격을 받은 뒤 ‘나’는 여진의 오피스텔로 향한다. 어쩌면 어그러진 아내와의 관계가 자신 때문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아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아내의 신음 소리는 다시금 두 사람을 멀어지게 만든다. 여기에 더해 결혼 후 5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했던 아내에게서 “임신 3개월째”라는 소식을 듣고 ‘나’는 더 착잡할 수밖에 없다. 누구의 아이인지 알지 못한 채 “모른 척 넘어가야할 일일 지도 모른다.”(59쪽)라는 ‘나’의 독백은 불안정한 관계가 빗어낸 씁쓸한 일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문득, 그들이 씹어 대고 있는 것은 성재와 민우일 테지만 불 속에서 타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뒤틀린 일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비롯하여 모두들, 자기를 대신해 불 속에 뛰어들어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무언가를 밟고 불태우고, 그럼으로써 조잡하게 뒤틀린 일상을 재생시키고, 그렇게 살아가고들 있는 것이다. (「이상한 과일」, 58쪽)     


   표제작 「이상한 과일」에서 ‘나’의 집에 세 들어 살던 성재와 민우가 게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들이 떠나고, 그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모두 불태우면서 문득 떠올린 생각을 통해 일상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매일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은 사실상, ‘흑인’, ‘게이’, ‘기형의 고양이’ 등속의 소수자의 삶과 같은 “무언가를 밟고 불태우”면서 유지된다는 사실을 ‘나’는 자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그것들을 불결하다고 하지만, 사실 그들의 삶 또한 ‘뒤틀린 일상’일 뿐이다. 이 소설은 우리가 자명하다고 여겨온 인식 체계 또한 허상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워진 삶이나 관계 역시 쉽사리 허물어지거나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또다른 소설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를, 알아?」에서 미수는 류 책상에 꽂혀 있는 산체스 피뇰의 『차가운 피부』를 보고 그에게 호감을 갖고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자 “이미지”일 뿐이었다. 그 책을 보고 “적어도 류와 나의 문학적 코드가 비슷할 거라는 추측은 빗나가 버렸다.”(93쪽)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실제의 괴리에서부터 시작된 관계가 빚어낸 에피소드를 통해 알 수 있듯, 사소한 사건 하나로 그 관계는 손쉽게 끝나버린다. 오해는 잘못된 판단을 낳게 되고, 서로를 잘 안다는 건 착각일 뿐이다. “세상에 분명한 건 아무것도 없어.”(109쪽) ‘나’도 ‘류’도 우리는 그 사람의 어떤 한 부분만을 알고 있었으며, 그것이 전부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허울에 직면하는 순간 서로에게서 등을 돌리는 모습을 통해 관계의 나약함을 확인할 수 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지 못하는 오래된 연인 역시도 관계를 지속시킬 수 없다. 「꿀벌의 비행」에서 명과 하진은 오랫동안 만나며 곁에 있지만,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틈” 때문에 하진은 여전히 외롭다. 페이스북 사진을 통해 남들에게 보여지는 이들은 특별한 갈등 없이 잘 지내는 “행복한 커플”(129쪽)이다. 은지라는 대학 후배의 등장이 두 사람의 관계를 갈라놓은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녀의 오른쪽 어깨에 있는 흉터, 즉 하진의 어릴 적 트라우마를 계속적으로 외면하는 명의 태도 때문에 그들은 헤어진다. “명은 끝까지 그녀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녀 역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명이 무엇에 최선을 다했는지, 그 감정은 의무감과 책임감이었는지 아니면 사랑이었는지, 명이 망설이고 피해 왔던 것 무엇이었는지, 그녀 역시 끝까지 알지 못했다.”(137쪽)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그들은 다시금 혼자만의 방에 스스로를 가두려고도 하지만, 이를 방해하는 낯선 것들의 침입으로 인해 유폐되기는 어렵다. 「내 방에는 달팽이가 산다」에서 ‘나’는 “이미 인간관계라는 것에는 싫증이 나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다시 멀어질까 하는 두려운 조바심을 가슴속에 새기는 일이다. (…) 정말이지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무엇하러, 맘 편히 지낼 수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벗어나겠느냐 말이다. 외로움만 가슴속 깊이 묻어 두면 될 일을.”(71쪽) 관계의 두려움 때문에 가급적 어느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는 ‘나’에게 김선주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건네온다. 또한 그것은 내 집에 민달팽이가 자꾸만 기어들어오는 상황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가슴속 깊이 묻어둔 외로움이 일시에 해소될 수는 없다. 끝내 ‘나’는 선주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녀 역시 사표를 내고 사라진다. “내 공간을 침범할 무언가를 두려워할 일”은 이제 없지만 홀가분하지만은 않다. 사라진 김선주의 책상에 “달팽이의 점액처럼 하얀 것이 살짝 묻어”있는 것이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그녀의 흔적이 남아 아른거린다. 그 흔적은 단절된 관계와는 또 다른 관계 맺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해산解産」에서 현주는 재훈과 헤어져 연인관계는 끝냈지만 제임스에게 기대보기로 한 것이나, 「빙하로 가는 날엔」에서 민선과 은영 모두 사랑은 끝냈으나 둘이서 빙하를 보러 가자고 한 것, 「나를, 알아?」에서 세상과 단절된 오빠 곁에 고양이가 있다는 것은 새로운 관계 맺음의 희미한 희망을 보여주고 있으며, 앞으로 이어질 서정아 소설에서 기대를 걸어봄 직한 대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거대한 세계 속에 압도될 수밖에 없는 불안한 개인의 미미한 삶이 묘사되기도 한다. “일상은 이렇게 변해 가고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새로움을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일상의 변화는 딱딱한 빵처럼 굳어 가는 게 전부였다.”(30-31쪽) 등단작 「풍뎅이가 지나간 자리」에서처럼 변해가는 일상이 ‘새로움’보다는 경직된 삶을 더욱 견고하게 구축해갈 뿐임을, 그리하여 그 세상에 압도될 수밖에 없음을 「잎이 삼킨 것들」을 통해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설탕을 쏟은 탓에 생겨난 개미떼를 없애기 위해 ‘나’는 식충식물인 파리지옥을 키우게 된다. 덕분에 개미는 모두 퇴치하였으나 급속도로 자라난 파리지옥은 ‘휴지’마저 삼키고 내 검지손가락을 삼키려 든다. 꽃가게 주인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하지만 알려주지 않고 결국 ‘나’는 파리지옥을 내다버리게 된다. 가로등 옆에 뿌리를 내린 파리지옥은 이제 사람들도 집어삼키게 된다. “잎은 이렇게 거대해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삼킨 것일까.”(214쪽) 벌레나 사람이 분간 없이 모두 식충식물의 먹이가 된 사태는 변화 없는 경직된 삶이 점점 커져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파리지옥이 거대해질수록 우리는 그것에 부/적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현실 비판 의식이 충만하던 우현선배가 ‘학습지 회사의 직원’으로 살아가기도 하고, ‘나’는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학원 강사 일을 결국 그만두면서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부/적응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나갈 뿐이다. 커져가는 파리지옥이라는 비유는 섬뜩하지만, 서정아 소설은 그럼에도 그 속에서 살아나가는 우리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러나 치밀하게 묘사해 나간다. 거기서 생성한 옅은 희망이, 지옥과 다를 바 없는 세상과 분투하는 개인의 삶들이 조금은 덜 외롭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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