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다니며 장난치고 싶어

세 번째 질문: 평범함을 벗어난 경험에 대하여...

by 나작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를 받은 조와 매그는 입고 갈 드레스를 상의한다. 난롯가에 서 있다가 태운 자국이 남은 조의 드레스를 걱정하는 매그에게, 조는 춤을 추지 않으면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It’s no fun to go sailing round. I like to fly about and cut capers.
(빙빙 도는 건 재미없어. 나는 날아다니며 장난치고 싶어)


예의를 갖추고 늘 하던 방식으로 똑같이 빙빙 돌며 추는 춤 따위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조처럼, 나도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활동은 극도로 꺼려하는 편이다. 매일 기계적이고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일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조만큼 발랄하진 않았지만 내 방식대로 표현하며 살아가고 싶은 열망은 항상 있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난 '원래 그런 것'들을 꾸준히 거부하며 살았다.


나는 스물아홉 살에 무계획으로 라오스에 갔었다. 무계획으로 여행을 간 것이 아니라, 살러 갔다. 그나마 있던 경험이라곤 1년 남짓의 봉사활동뿐, 일자리를 구한 것도, 그럴듯한 계획도, 심지어 돈도 없는 상태였다. 참, 그런 대책 없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는데 바로 남편이었다. 우리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봤었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평범하게 살 것인지, 도전을 해 볼 것인지. 우리는 우리가 만났던 라오스로 가서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보기로 했다. 그 '원하는 것'이 정확히 뭔지 몰라도,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운다면 분명히 하지 못하게 될 '무엇'이 있을 것 같았다. 젊은이들의 패기라고 포장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 당시 우리에게 '한국에서의 평범한 삶'이 훨씬 큰 도전으로 느껴졌었다.


봉사활동 경험이 있었던 터라, 나는 라오스에서 국제개발활동을 좀 더 경험해보고 싶었다. 처음엔 막상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빈둥거렸지만, 조금씩 움직이다 보니 할 일들이 생겨났다. 집에 있는 선풍기와 냉장고까지 싸 짊어지고 갔던 워크캠프를 시작으로 나중엔 NGO에 소속되어 프로젝트 관리를 하기도 했다. 대단히 성공한 경험을 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충분히 고민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것만은 맞다. 그러니, 얼마나 피곤했겠는가!


가장 그 열정이 빛났던 시기는 아무래도 워크캠프를 시작한 첫 한두 해였다. 30~40명의 단체 봉사활동팀이 엄청난 양의 프로그램 준비물들을 수십 개의 박스에 싣고 들어와 으리으리하게 잔치를 벌이고 떠나는 행태가 불만이었던 나는 한국에서 준비물을 최소한으로 가져올 것, 한국 사람이 아닌 라오스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활동을 만들 것, 참가자들은 가장 현지인과 가깝게 생활하고, 활동의 의미를 매일 성찰할 것 등의 원칙을 세우고 지키려고 애썼다.


라오스 현지인 집에서 라오스 사람들과 함께 살고, 질퍽거리는 진흙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새벽마다 장을 보러 다니고, 우물에 연결된 호스로 여러 명이 찬 물 샤워를 하고, 라오스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 불편함들이 익숙해지는 과정 속에서, 라오스 사람들이 도움받아야 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임을 알게 해주고 싶다는, 고상한 의도가 분명했기 때문에 나는 지금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것 같은 어려움들을 태연히 감내했다.


그 후 단체에 소속되어 일할 때에도 늘 하던 방식이 아닌 좀 더 의미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 누구도 시키지 않은 고민을 하느라 머리를 쥐어뜯으며 지냈다. 그 시절에는 내가 시도한 것들이 다 하찮게 느껴져서 또 괴로웠고,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절망도 많이 했다.


조는 파티에서 로리를 만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새로 배운 독일식 스텝을 밟으며 신나게 춤을 춘다. 드레스의 얼룩을 누가 볼까 신경 쓰지 않고. 라오스에서 보냈던 날들이 때로는 무척 부끄러웠고, 때로는 치유하기 힘든 상처였지만, 이렇게 한참이 지나 생각해 보니 그때가 내가 새로 배운 어설픈 스텝으로 "날아다니며 장난치던" 시절이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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