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질문, 먼저 말을 거는 것에 대하여...
훔쳐보지만 말고, 그냥 와서 우리랑 놀자
I just wish, though, instead of peeping, you’d come over and see us.
창문으로 옆 집의 네 자매를 지켜보곤 했던 로리에게 조는 집으로 직접 찾아와 함께 놀자고 말한다. 다른 친구들이 놀고 있을 때 쭈뼛거리며 다가가지 못하는 아이였던 나는 누군가 조처럼 다가와 벽을 허물어주지 않으면 쉽사리 끼어들지 못했다. 그 성향은 성인 되어 많이 개선된 듯 보이지만, 마음속의 거리낌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막연히 '언젠가 글을 써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요즘 진지하게 글쓰기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제는 나 혼자 끄적거리지 말고, 내가 쓴 글로 사람들과 소통해야지. 그러자 따라오는 질문이 있었다. '누구랑, 무엇으로 소통할 건데?' 다른 사람들이 글을 쓰고 서로 소통하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지, 그 안으로 들어가 경험해 보지는 못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새 학년이 되어 반 친구들이 모두 바뀌면 3월 한 달을 거의 묵언수행하듯 지내야 했다. 언제 벌써 친해져서 쉬는 시간이면 시끌시끌 떠들며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기만 하다가,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그 아이와 친구가 되었다. 지금까지 편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나에게 먼저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한 친구, 집에 놀러 오라고 한 친구들이다.
그 이후엔 대여섯 명의 친구들이 무리 지어 깔깔대며 돌아다니는 여느 여자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엄마도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 내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고 증언(?)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 인간관계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나는 언제나 수동적인 입장이었다.
소심한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부족한 탓도 있었다. 여전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차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가 생각해 보면 부끄럽고 미안하다. 다른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알게 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신경 쓰였다. 대화를 할 때, 글을 쓸 때 상대를 위한 말 보다 그 순간에 무난히 넘어갈 수 있는 말들을 찾았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말이 무엇인지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나라는 사람에 대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무엇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어떤 이야기를 가진 사람인지.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신나게 놀고 있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버리는 아이를 발견한다. 나는 여전히 그 아이인 채로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하려 한다. 이리 와서 나랑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