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질문, 어린 시절의 결핍에 대하여...
선물도 없는 크리스마스가 무슨 크리스마스람!(Christmas won't be Christmas without any present!)
작은아씨들은 '조'의 투덜거림으로 시작된다. 가난 때문에 크리스마스 선물조차 기대할 수 없는 자매들의 푸념이 이어지고, 각자 갖고 싶은 것들을 떠올린다. 매그는 예쁜 옷을, 조는 책을, 베스는 악보를, 에이미는 그림연필을...
나는 이 문장에서 여덟 살이 끝나가던 해의 크리스마스날을 떠올렸다. 산타할아버지의 실체를 알아버린 날이었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머리맡에 마법처럼 선물이 놓여 있던 순간은 지금 떠올려도 설레는 기억이다. '분명히' 자기 전엔 없었는데 어떻게 머리맡에 선물이 놓여있을 수가 있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산타할아버지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았던 순진한 시절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여섯 살과 일곱 살의 크리스마스는 꽤 신났었다. 생일선물도 제대로 받은 기억이 없으니 그 두 해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 해에는 동화책 두 권을 선물로 받았다. '혹부리영감'과 '효녀심청'이었는데, 가난한 살림살이에 흔한 동화책 전집 하나 없던 터라 나는 그 두 권의 책을 읽고 또 읽고 보물처럼 여겼다. 또 한 해에는 작은 인형놀이세트를 받았다. 제대로 포장도 안된 채로 비닐봉지에 담겨 문고리에 걸려 있었는데, 그 모습이 수십 년이 지난 아직도 기억난다.
그 해 크리스마스이브에 부모님은 나를 이모네 집에 맡겼다.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친하게 지내던 사촌언니들과 종일 같이 놀고, 잠도 같이 잘 수 있어서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 우리 셋은 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서 양말에 넣을 편지를 쓴 후에, 나란히 누워 산타가 올 때까지 잠을 자지 말자고 킬킬거리며 장난을 쳤다. 편지에는 아마 인형의 집이 갖고 싶다고 적었던 것 같다. 산타에게 편지를 쓰는 건 그때가 처음이라 선물을 쓰면서도 과연 정말 주실까 싶었다. 졸음에 못 이겨 잠이 들기 전까지 두근거리며 설레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음 날 아침에 언니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편지에 쓴 바로 그 선물을 받았으니까. 내 머리맡에도 선물이 있었다. 그 당시 슈퍼마켓에서 흔히 팔던, 빨간 산타부츠에 여러 가지 과자들을 담아놓은 선물세트였다. 나는 이건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라는 표현을 하지도 못했다. 실망스럽게 플라스틱 빨간 부츠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제일 큰 언니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근데 사실, 산타는 없어! 엄마 아빠가 주는 거래."
그럼 이 과자세트는 이모와 이모부가 주신거구나. 그래서 그런 거구나. 그렇게 나는 산타가 없다는 것을 조금 씁쓸한 기분으로 알게 되었다.
여덟 살 크리스마스 선물 이후로 산타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기대가 어긋나도 실망조차 하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좋은 것은 나에게 오지 않아'라는 믿음이 점점 굳어졌다. 사춘기를 지나면서는 기대대신 냉소로 스스로를 지켰다. 어차피 할 수 없는 것은 필요 없는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스스로 할 수 있었을 노력들도 형편 때문에 못한다고 믿어버렸다. 그날의 실망은 그렇게 극복하기 힘든 결핍으로 남았다.
작은아씨들 첫 장의 제목은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 놀이'다. 가난해서 크리스마스 선물도 받을 수 없던 자매들은, 자신이 갖고 싶던 걸 잠시 내려놓고 엄마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아침 식사는 가난한 이웃에게 나눈다. 갖지 못한 것을 탓하기보다 누군가와 나누는 마음으로 바꾸어 간다. 어린 시절부터 삶의 지침이 되어준 '천로역정'을 떠올리면서.
역경 속에서 느끼는 절망과 슬픔, 그리고 냉소와 불평을 감내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가르침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내 어린 시절의 결핍은 갖지 못한 선물이 아니라 과자세트에 감사하지 못한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이것은 여담이지만, 난 어릴 때도 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