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더럽히는 존재

조지 오웰, 에세이 ‘스파이크’ 중에서

by 나작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갈 곳이 없다,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 또는 할 일이 없다. 그런 느낌 속에서 방황하는 때가 있다. 지금이다.


며칠 동안은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겨보고 매일을 시간과 분단위로 쪼개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정보를 찾아보면서 지내다가도, 갑자기 손 안의 모래들이 스르르 흘러나가 버리듯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는 또다시 초조함과 불안이 그 자리를 채운다. 갑자기 언젠가 읽었던 조지 오웰의 글이 떠올라서 찾아 읽었다. ‘스파이크’라는 에세이로, ‘나는 왜 쓰는가’라는 책에서 읽었는데,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라는 책에도 실려 있는, 조지 오웰이 부랑자 생활을 할 때 경험한 스파이크라 불리는 수용소 생활을 쓴 글이다.


그 아래 풀밭에 흩어져 있는 우리는 도시의 거무죽죽한 쓰레기 같았다. 우리는 풍경을 더럽히는 존재였다. 바닷가에 흩어져 있는 정어리 통조림이나 종이봉투처럼.


면접을 보고 돌아오면서 나는 이 글을 반복해서 읽었다. 불쑥 내뱉게 되는 한숨에 섞인 이유를 알 수 없는 심난함을, 지저분하고 역한 냄새가 나는 부랑자들의 수용소 생활로 지울 수 있다는 듯이. 점심시간이 되어 골목골목에서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 사이를 걸어서, 북적거리는 전철을 타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대합실 한편에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나는 이 풍경에서 무엇을 담당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양털구름이 떠 있는 맑은 하늘 밑, 꽃이 흐드러진 밤나무 아래 누워 있는 거무죽죽한 부랑자들을 묘사한 이 문장을 자꾸만 읽고 또 읽었다.


한 달 정도 고민했다. 다시 일을 해야 할까, 아니면 새롭게 시작하기로 한 계획들을 밀고 나가야 할까. 서로가 서로를 확신하지 못하는 대화가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그들은 내가 정말 일하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했고, 나도 내가 정말 일하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졌다. 이야기는 겉돌았고, 나의 답변은 두서없이 쓸모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끝이 났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이번에도 망쳐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나는 형편없구나. 어딘가에서 도사리고 있던 지난 실패의 경험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비죽비죽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드디어 때가 되어 우리는 뜰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음산하고 악취 진동하는 스파이크에 있다 밖으로 나오니, 모든 게 어찌나 환하고 바람 냄새는 또 어찌나 향기롭던지! 부랑자 감독이 압수했던 소지품 꾸러미를 각자에게 돌려주고 점심으로 먹을 빵 한 덩이와 치즈를 나눠주자,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스파이크의 외관과 그 규율을 어서 벗어나려고 서둘러 떠났다. 한동안 자유를 누릴 때가 온 것이었다.


나는 다음 스파이크를 향하고 있었던 것일까. 구질구질하고 가혹한 스파이크를 벗어나 잠시의 자유를 누리고는 딱딱한 빵 한 덩이와 치즈를 위해 다음 스파이크로 길을 나서는. 이틀이 지났다. 아직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결과가 긍정이든 부정이든, 이제 다음 스파이크는 없어야겠다고, 내 안의 부랑자가 말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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