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오웰, 서점의 추억 중에서
소설 쓰기 강좌를 들은 적이 있다. 매주 소설 한 편을 읽고 주어진 과제를 쓰고, 소설가에게 강의를 듣는 형식이었다.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뒤풀이 자리에도 꼭 참석했는데 솔직히 강의내용이 소설 쓰기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주차에는 단편소설을 써서 합평을 했는데, 내 소설에 대한 감상평들을 종합하자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정도일 것 같다. 그 후로 내 소설은 고스란히 서랍 어딘가에 처박혔고, 다시 소설을 쓰지 못했다.
그때의 강의 중 유일하게 남은 것은 “고전을 많이 읽으세요”라는 소설가의 조언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는 네 고전, 읽어야죠. 너무 뻔한 소리 아닌가 싶긴 했다. 나도 고전은 꽤 읽었는걸, 하는 근자감이 있었던 이유는 어린 시절 아동용 세계문학전집과 백과사전을 열심히 읽었던 탓이다. 조지오웰은 서점에서 종업원으로 일한 경험을 쓴 ’서점의 추억‘이라는 에세이에 이렇게 썼다.
대여문고를 운영해 보면 사람들의 그런 척하는 취향 말고 진짜 취향을 알게 된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영국 ‘고전’ 소설가들의 인기가 완전히 끝났다는 점이다. 디킨스나 새커리, 제인 오스틴, 트롤로프 같은 이들은 일반 대여문고에 넣어보나 마나다. 아무도 고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19세기 소설은 보기만 해도 “어휴 그건 ‘옛날’ 거잖아요”라며 당장 피해버린다. 하지만 디킨스를 ‘파는’ 건 셰익스피어의 경우가 그렇듯 언제나 꽤 쉬운 일이다. 디킨스는 사람들이 언제나 읽을 ‘의향이 있는’ 작가 중 하나로, 성경과 마찬가지로 간접적으로만 안다.
그러니까, 나는 고전을 간접적으로 들어서 아는 것과 별다를 것이 없는 상태였다. 그 강의 이후로 소설은 안 썼지만 고전문학은 열심히 읽었다. 몇 년간 해외에 거주할 때는 책을 구하기 힘들어서 전자책으로 세계문학전집을 대량으로 구매해놓고 보니 구백 권이 넘었다. ‘고전 읽기’라는 EBS 라디오는 좋은 고전 가이드였다. 고 구본형 님이 진행하시던 1회부터 정주행을 마치고, 이후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팟캐스트로 명맥을 유지할 때에도 빼먹지 않고 들었다. 아직도 사놓은 전집의 반의 반도 못 읽었는데, 고전을 읽다 보니 왜 작가들이 그토록 읽으라고 잔소리를 해대는지 알 것도 같다.
요즘은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 또는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매일같이 접한다. 하지만 이게 진짜 요즘에 와서 일어난 일일까? ‘책’이라는 것은 ‘책’의 형태를 하고 있는 물건을 지칭하는 것일 뿐이다. 책의 가치는 쓰여있는 내용에 있다. 출판계가 활황이고, 동네마다 도서대여점이 성행이던 시절에도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수는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특히나 ‘고전’을 읽는 사람들의 수는 오웰의 시대에도 이미 없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영국과 미국이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오웰보다 100여 년 전의 시대를 살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쓴 ‘월든’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극소수의 몇 사람을 제외하면 우리가 읽고 쓸 수 있는 언어로 된 영문학에서조차 가장 훌륭한 작품들이나 그 버금가는 작품들을 흥미롭게 읽어보려는 사람이 없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고장에서는 대학물을 먹고 이른바 대학의 교양 교육을 받았다는 사람들조차 영문학 고전에 대해 거의 또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또한 인류의 기록된 예지인 옛 고전이나 경전들에 대해서 말인데, 알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음에도 이 작품들을 가까이하려는 노력은 어디를 보아도 미약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고전은 누가 읽었던 것일까. ‘요즘 사람들은 고전을 안 읽는다’는 말은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만큼이나 시대를 초월한 진리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좋은 책을 읽지 않는 현상은 스마트폰의 등장과는 무관해 보인다.
그럼에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들에게 있어 고전은 언제나 ‘독파 의지’를 불태우는 대상이다. 얼마 전 스레드에서 민음사 고전문학시리즈 트래커를 만든 사람을 봤다. 나도 만들어보고싶다.